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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소중한 그 시간 사용법

by 아빠 민구



얼마 만에 글을 쓰는지.


이래 바쁘다 저래 바쁘다- 라는 핑계로 참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반가워 컴퓨터야)


이제 쌍둥이들이 태어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한 뼘의 자유도 사그라들겠지- 하루에 네 명을 목욕시켜야 하고, 네 명의 용변을- 네 명의 식사를- 네 명의 옷을 갈아 입히고 네 명의 빨래와 양치와 책 읽어주기와 눈 마주치기와 대화와 재우기와 깨우기를 반복해야 한다.


과연 그 틈바구니 속에서 아내를 챙길 수 있을 것인가. 또 나의 존엄성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자유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시간도 걱정이 되었다. 지금은 날씨도 좋고 당직도 없으니 주말이면 무엇이든 하며 놀아줄 수 있는데, 쌍둥이들이 태어나면 첫째와 둘째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챙겨주기 어려울 것 같았고. 아무렇게나 방치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내는 어떤 마음일까. 태아 둘 다 머리를 아래로 두고 있어야 자연분만이 가능한데, 아직은 그리 순조롭지 않다. 걱정은 출산으로부터 시작해서 어떤 육아용품을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살지- 앞으로 경제적인 부분은 어떻게 감당을 할지- 다음 부대는 어디로 가게 될 것이며 어떤 유치원과 어린이집과 병원을 알아봐야 할지 끝도 없이 고민을 이어나가고 있을 것이다.



제한적으로나마 앞을 내어다 볼 수 있는 인간의 능력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추격자를 뒤에 달고 다닌다. 복이고 독이다.


지난주에는 큰 시험을 치렀다. 평소 공부보다 가정에 집중을 하고 있는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무기로 많이 집중해서 공부했고 시험을 보았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복이 되었다. 하지만 때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가족들을 재촉하거나 일을 급하게 진행하기도 한다. 그래서 독이 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지금은 얼마 남지 않은 자유시간을 최대로 활용하고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주말 내내 뻔질나게 놀아주니 아이들이 일찍 잠들었다. 아내도 비교적 일찍 잠들었다. 집도 치우고 겨울옷-여름옷 치환도 하고 출근 준비도 하고 인터넷 뉴스도 보고 연구과제 자료조사도 하고 얼마 뒤에 있을 청약신청 준비도 하고- 뭐 이것저것 하다 보니 두 시가 되었다. 출근 전까지 얼마 남지 않았고, 기상 전 까지는 더 얼마 남지 않았다.


글을 쓸 것인가. 잘 것인가를 고민하다-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 물었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값을 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 사이 시간은 더 흘러,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골프 연습을 가고 싶다. 최소 네 시간은 자고 싶다. 그렇다면 이미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은 게 아니라 부족하게 되었다. 늘 그렇다. 자원은 부족하고 용처는 넘처난다. 통장 잔고도 그렇고 할 일도 그렇고 시간도 그렇다.


몸이 한 개이고 공무원 월급은 한계이고 시간은 지나가는데 한 게 없는 이 순간. 그래도 시험은 하나 끝났으니 다음 시험을 기점으로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얼마 없다- 얼마 없다-' 반복하니 효율은 올라가는데 시한부 삶인 것 같아서 그렇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는 방법은.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라며 허세를 부리고 내 페이스대로 떠벅떠벅 걸어가는 것이다. 어차피 일이 줄지도 않고, 월급이 늘지도 않고, 시간이 천천히 가지도 않는다. 얼마 남지 않은 건 내 여유와 내 태도이지- 싶다.


뭐야, 글을 다 썼는데 아직 시간이 좀 남았잖아? 이나 닦고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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