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번 달 까지 안 생기면 그냥 여보도 묶을 생각 해. 더 나이 먹고나면 낳아 기르기 힘들 테니까."
그렇게 노력한 지 한 달여, 아내가 임신한 것 같다며 말했고, 임신테스트기로 확인하니 분홍색 두 줄이 선명하게 나타났다.(오-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서는 아내와 달리, 나는 쾌재를 부르며 기뻐했다. 앞에 글에서 말한 것처럼 고생이야 하겠지만, 그 잠깐의 고생 뒤에 평생 풍족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세 번째라서 그런지 그래도 아내는 나름대로 여유 있게 임신 초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아내의 입덧이 심하게 올라왔다. 임신-출산-육아는 모든 게 케.바.케. 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보통은 출산할수록 입덧이 덜하다는데, 아내는 입에 아무것도 대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입덧이 너무 심해졌고, 마침 6주가 되어 아이 심장소리 나 들을 겸 해서 병원을 찾았다.
"남편분은 잠시 뒤에 들어오세요"
잠시 뒤, 나를 부르겠다던 의사 선생님은 호출 대신 "어! 이거 쌍둥이네!" 라며 탄성을 쏟아냈다.
놀라 뛰어들어간 내 눈에는 초음파 화면 속 선명한 아기집 두 개가 보였다. 누가 봐도 쌍둥이가 확실했다. 다... 다... 다둥이... 아빠가 된 것이다. (오-오-예)
아내는 무척 놀라 충격을 받았는지, "어머 어떻게 해 어머 어머 어떻게 해"라는 말을 반복했다. 벌써부터 걱정이 뚝뚝 흘러넘치는 목소리였고, 놀란 기색이 옅어질 기미가 안보였다.
아랫집 윗집으로 자리잡은 우리 쌍댕이들
신기하게도 2주 전, 아내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나는 왠지 모르게 '쌍둥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전혀 근거 없는 생각이었지만, 그런 생각이 반복적으로 들었기 때문에 이번 진료를 받기 직전에도 아내에게 얘기했다.
"여보, 혹시 쌍둥이 아닐까?"
아내는 당황해하며 '무슨 근거냐'라고 물었지만 딱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곧이어 아내가 진료를 받았다. 그렇게 내 말이 떨어지고 3분 만에 쌍둥이 여부를 확인한 것이다.
이렇게. 셋째 아이가 필요하다던 우리에게 넷째까지 생겨버린 '겹경사'가 생겼다. 이란성쌍둥이라니!
원래는 2주 전, 단순히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내가 겪고 있는 [남편의 입덧 : 쿠바드 증후군]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었다. 나도 나름 입덧이 심해 복통과 두통과 울렁거림이 동반되었다. 하지만 쌍둥이 소식을 듣고 나서 나의 입덧은 자취를 감춰 버렸다.
입덧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아내. 그리고 아내가 안쓰러워하면서도 도저히 밥을 차려 먹일 수 없는 아이들. 그들을 보면서 나까지 입덧을 하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인가 보다.
그리고 연속으로 몇 주째 훈련을 하고 있지마는 아내와 아이들 케어는 기본이고, 출근 전과 퇴근 후에 집안일을 전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당연히 자정을 넘어서까지 집안일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피곤은 벌써부터 내 등에 업혀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뒷목으로 뻐근함이 밀물처럼 밀려들어왔다. 출근해서는 밖에서 떨며 훈련을 했고, 집에 와서는 전투화 끈을 풀면서부터 집안일을 시작했다.
어제는 집안일을 다 하고 나니 보일러의 뜨듯한 기운이 몸을 노곤노곤- 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자정이 넘어 소파에 잠시 앉았다. 잠시 멍-을 때리고 있었는데 문득 스친 장면이 있었다.
아이들이 머리를 땅에 박고 엉덩이를 치켜들면 동생을 본다는 말이 있던데, 서너 달 때쯤 전인가? 아이들이 목욕 후에 아주 신나 가지고 침대에서 그런 짓을 했었다.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이 녀석들이 쌍으로 쌍둥이 동생을 예고했었던 것이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 불쌍한 준돌이 들은 이제 급속으로 철이 들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들 출산 전까지 양치, 목욕, 옷 입기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게 훈련시켜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 출산으로 생각하며, "태백산맥 같은 한 번의 고생만 넘어가면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던 내 앞에 [히말라야]가 나타났다. 뭔가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해서 소파에 앉아 한참을 키키 킥-하고 웃다가 사진을 찾아보니 마침 사진이 남아있었다.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돌파했는데, 그럼 6 식구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3만 불(3600만 원)*6명 = 18만 불(2억 800만 원)은 매년 벌어야 평균적인 소득으로 가정을 꾸릴 수 있는데, 큰일이라는 생각이 엄습했다. 큰일이다.
image from 동아일보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작년 기준 합계 출산율은 0.84을 기록했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저출산율을 보이고 있으며, 코로나 발생 이후 더 감소했단다. 최근엔 서울시의 분기 출산율이 0.6까지급강하했다고 하는데, 나는 [네 자녀]를 갖게 된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묵직한 괴리감과 일말의 쾌감이 밀려왔다.(크-)
분명 어떤 조건들이 자녀를 낳아 기르는데 맞지 않으니 출산율이 낮을 텐데, 내가 그런 악조건 속에서 이 아이들을 넷이나 낳아 기르는 게 맞는 일인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다른 면을 보자 하면 베이비 부머 세대가 가졌었던 단점들이 내 자녀들에게는 이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비교적 소수인 세대이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혜택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대로 나라가 쪼그라 들어서 없어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나라 걱정...) 배움도, 취업도 비교적 수월한 세대에서 자기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그건 나중 문제고 당장에 잘 키워야 하는데, 아파트 청약 넣으면 당첨은 쉬워지겠구나.. 생각하니 그건 또 부담을 한 결 낮춰주는 요소였다.
넷째라니. 쌍둥이라니. 설마 아들 넷은 아니겠지.
어떻게 넷 중에 한 명도 y염색체를 안 받았겠어?
아무튼 이제 충분한 것 같다. 결혼 전에 아내에게 "난 아들-아들-딸-딸-아들-딸 가지고 싶어"라고 이야기했다가, 첫 째아이 낳고 나서 육아가 너무 힘들어 [아들-아들-딸-딸]로 목표를 수정했었는데, 그 뜻대로 이루어지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성별이야 사실 뭐가 됐든 다 좋긴 하지만, 아내를 위해서는 그래도 딸이 더 좋지 않을까. 목욕탕 갈 때도 셋-셋 찢어져서 들어가고 말이다.
뭐 어찌 됐든 차는 확실히 바꿔야겠다.
(자동차 회사에서 여섯 가족 탈 수 있는 차 협찬받습니다. 연락 주세요. 하하. 하.)
당장 시작하려 했었던 골프도, 테니스도 일단 3년 더 미루고, 육아-가사 마스터 클래스 수강신청을 해야겠다. 아이들아 건강하게 자라다-오! 아빠가 연봉 2억을 벌어볼게.(연봉 협찬도 받습니다. 하하. 하하.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