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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가 필요한 우리

불나방 한 살이

by 아빠 민구

불나방이 불을 보고 뛰어들지.

죽어도 좋은 거야. 불이. 그 밝고 따듯한 기운이 좋아서, 미쳐가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이겠지.


아이들을 키워보니, 내가 딱 그 짝이야.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고 하는데 무진장 힘들고 경제적으로도 쉽지 않지만, 그 맛을 알아버린 거지. 불나방처럼 말이야.


단순히 생각해봐도 지금 또 셋째를 가지면 도대체 어떻게 그 수많은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몸에 사리 나올 때까지 헤쳐나갈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말이야, 지금이 아니면 우리에게 더 이상 기회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불나방처럼 살다 가는 인생! image from shutterstock


우선은 여보와 나를 중심에 놓고 생각해보자고.


여보도 지금을 놓치면 '노산'이 돼. 숫자가 뭐가 중요하겠느냐마는, 분명히 특정 나이를 넘어가면 어렵거나 위험한 것들이 많으니까 의학박사 선생님들께서 정해놓으신 나이일 거야. 확실히 검사도 많이 하고 뭐 여러 가지 데이터가 증명하고 있으니까.


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야. 어쩌면 첫째 때처럼 무한정 잠을 줄여가며, 무작정 들고뛰고 목마 태우며 다니지 못할 수도 있어. 나도 노화가 진행 중이거든. 부하들하고 한 바탕 같이 뛰고 나면, 회복이 예전 같지 않더라고.


그러니, 우리를 위해서라도 아이를 낳겠다면 최대한 빨리 준비하는 게 좋겠어.


다음으로 준돌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분명의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새로운 멤버를 받아들여야 하니까. 첫째 녀석이야 충격이 좀 덜할 수도 있어. 이미 둘째 때 '사랑은 독식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았고, 이미 꽤나 철이 들어서 동생도 잘 챙기고 하니까.


물론 50%의 사랑을 33%로 낮추면 충격이야 다소 있겠지만, 첫째 둘째 50% 수준을 유지하고, 셋째한테 추가 50%의 사랑을 주면 되지 않을까? 무슨 소리냐고? 더 열심히 살자는 소리지 ㅋ 원래 사랑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옛날 어느 광고에서 본 것 같아.


사랑할 대상이 늘었다고 해서 사랑이 산술적으로 나눠 분배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오히려 시간이 조금 더 지날수록, 우리가 아이들에게 부어주는 사랑은 더해지고 곱해지면서 더 풍요로운 사랑의 가정으로 공고 해지는 것이지.(논리가 부족한지 말이 장황하네...)


마지막으로 태어날 당사자의 입장도 생각해봐야 해. "아니 이거 뭐야. 타의에 의해서 태어났는데, 위에 기득권 세력도 둘이나 있고. 집은 코딱지만 하고. 차도 코딱지만 하고(차는 바꿀 테지만?^^), 아빠 벌이도 시원찮아서 먹고 싶은 거나 사교육도 제대로 못 시켜 줄 거면서. 왜 낳았어!" 이런 싹수없는 생각이나 말을 할 수도 있는데, 우리가 그렇게 싹수없지 않게 키우면 되는 거 아니겠어?


어찌 처음부터 저런 생각을 하겠어. 다 보고 듣고 배운 거 말하는 거지. 그러니까. 뭐 저런 생각하지 않게, 조금 더 삶의 질도 끌어올리면서 싸가지 교육을 잘 시키면 해결될 수 있을 문제라고 생각해. 또한, 뒤집어서 생각하면 형들(혹은 오빠들)이 있어서 더 든든하고 재미있을 수 도 있어. 첫째 아이는 태어났는데 놀아주는 사람이 부모뿐이었다면, 얘는 태어나자마자 놀이 상대가 부모형제 해서 넷인 거야. 얼마나 좋아


뭐, 이런 그림 너무 보기 좋지 않아?


뭐 대충 관계자들의 입장은 두루 살펴보았는데, 그렇다면 왜 아이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당위성이나 가치판단, 이유 같은 것들도 필요하니까 생각을 좀 해봤어.


첫째는 완성도야. 여보 어렸을 때 많이 봤지? 후레시맨, 바이오맨, 독수리 오형제, H.O.T, 원더걸스 등등 수많은 히어로물과 그룹 연예인들은 5명을 그 구성원으로 하고 있어. 왜냐하면 다섯은 되어야 구도가 안정적이기도 하고, 상호 관계성이 단조롭지 않거든.


삼각형이나 사각형을 기저로 삼은 구조물은 다소 불안정하다고 해(맞나?) 그러니 방패 모양이나 미 국방부 펜타곤의 모양, 별의 모양 등이 다 오각형이나 오각형에서 차용되는 것 아니겠어? 우리 가정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오인 구도가 더 최적이야.

이것 봐. 다섯이잖아

두 번째로 혹시 50%의 확률로 딸이 나온다면! 여보의 영원한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 거야. 사실, 여보 너무 외롭잖아. 맨날 산책 나가도 나랑 준돌이들은 벌레나 물고기 잡으러 다니고, 공룡 이야기나 하고, 로보트 이야기나 하고, 달리기 시합하고. 여보 외롭잖아. 딸은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싶다. 평생의 친구가 생긴다니까?


사실 딸이 나올 확률은 50%보다 훨씬 높아. 왜냐. 아들/딸이 나올 확률은 각 50%인데, 우리 첫째 때 이야기이고, 둘째 때는 두 번째에도 아들이 나올 확률, 즉 50%*50% 해서 25%. 세 번째까지 아들이 나올 확률 50%*50%*50%=12.5%가 된다고 생각해야지. 반대로, 이번에는 딸이 나올 확률은 87.5%가 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사실, 그냥 매번 독립적인 50%의 확률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ㅋ)


혹시, 아들이라고 하더라도 괜찮아. 아들 셋이 연속으로 나왔을 때의 그 경제적 효율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지. 셋째는 거저 키우는 거야. 옷 다 물려 입히고, 장난감 그대로 나 물려주고, 책이며 유모차며, 킥보드며 뭐 죄다 형들 것 그대로 쓰니까, 기저귀 값만 든다고 생각하면 되지. 경제적으로 부담될게 하나 없어.


세 번째로 이건 너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가 아니야. 아이들을 위해서야. 아이가 혼자일 때는 부모와의 단조로운 인간관계밖에 형성할 수 없어. 수평적인 관계 형성이 만들어질 수 없지. 물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다르겠지만, 결국 사회생활도 가정에서 인성이나 사회성이 잘 형성된 아이들이 더 잘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그런 경험이나 능력 하나 없이 덩그러니 학교에다가 데려다 놓는다고 해서 그 아이가 갑자기 사회성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아이가 둘이면 양자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되는 거야. 그러니 외동으로 난 아이들보다는 좀 더 단조롭지만 한 단계 나아간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사회생활의 기초를 닦을 수 있는 것이지. 요즘 우리 아이들만 봐도 그렇잖아. 코로나로 어린이집도 안 가는데, 지들끼리 뭐가 좋은 그렇게 잘 놀잖아. 여보가 잘 가르쳐서 서로 우애도 좋고. 챙겨주고. 가끔 싸우고 하면서 운동도 하고.


그런데 말이야. 셋째가 태어나면! 그때부터는 부모와의 관계를 포함해서 하나의 세계가 형성되는 거야. 사회가 만들어지고 그 구성원으로서 아이들이 자라기 때문에, 양보, 협조, 협력, 타협, 거래, 갈등, 경쟁, 배려 같이 훨씬 더 고차원 적인 사회인지적 지능 형성에 자생적 바탕을 갖게 되는 것이지.


그러니까 쉽게 말해 내버려두어도 지들끼리 알아서 치고받고 놀면서 큰다는 거야. 얼마나 좋아.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성격도 좋고 우애도 하면서 자라면 말이야. 만약에 나도 형이나 누나가 더 있었으면, 성격이 지금 이모양이진 않을 거야. 그만큼 형제자매가 중요한 거라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어제 친한 브런치 작가님이 댓글 달아주신 것처럼, '하고 싶으면 하고, 가고 싶으면 가야' 나중에 후회가 없는 거야. 여보도 속으로는 원하고 있잖아. 걱정이 앞서서 그렇지. 셋째를 안 낳고 나중에 후회하느니, 지금 낳고 나중에 후회하는 게 훨씬 지혜로운 편 아니겠어?


어쨌거나 저쨌거나 인간은 온전한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실수나 오류가 뒤따를 수밖에 없어. 그렇다면, 후회의 영역은 사실 정신적인 영역에서 컨트롤할 수 있는 거야. 즉, 후회는 하는 사람의 몫이고, 안 하는 놈은(나) 평생 후회 같은 거 잘 안 하면서 사는 거지. 즉, 하고 싶은 일이니까 하고, 후회는 안 하면 장땡이다 이거야.


여차 저차 해서, 상기의 이유와 각 관계관의 입장들을 살펴보았고. 저는 건강관리를 잘할 테니 앞으로 우리 셋째를 한 번 가져봅시다. 겸사겸사해서 차도 바꾸고.

필수재

우린 할 수 있습니다. 원래 할 수 있다고 말하면 할 수 있는 거야. 못한다고 하면 못하는 거고(내가 첫째한테 매일 하는 말)


사랑해!


KakaoTalk_20210831_104452006.jpg 미래 아이 셋을 기대하며! image from 일러스트레읻_허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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