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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Nov 28. 2022

난 땅이 꺼지는 줄 알았잖아

이젠 활화산이 멈출 시간



어쩌면 이 아니고, 정말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아이들 말이다.


나야 위로 누나가 하나 있지만, 터울이 커서 누나와의 관계는 '이모'같은 느낌이었다. 느지막이 얻은 아들이라 시대적으로도 상황적으로도 많은 관심과 애정을 집중받으며 자랐다. 이래라저래라 하는 소리 한 번, 공부하라는 소리 한 번, 꾸짖음 한 번 듣지 않고 자라왔다.

 

러니 싸가지 없고 이기적인 모습이 있을 것이다. 다만, 단체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조금 연마된 부분이 있을 뿐이고. 어찌 됐든, 결론적으로 나는 지금 비빔밥처럼 뒤섞여 지내는 나의 아이들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큰 게 아니고 그럴 것이다.


며칠 전에는 둘째가 하도 울어 눈물이 범람하고 , 싱크홀이 생겨 땅이 꺼져- 우리 가족 모두 그 구멍 안으로. 빠져버리는 줄 알았다. 서럽다고 한다. 뭐라고 하는지는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서럽다고 하는 표현인 것은 확실했다.


"아빠는 맨날 나만 !@(!##*$^(@#$*@ 으엉, 형은 맨날 !@@#$%^%#!#$%# 으엉" 이렇게 반복하기를 두 시간.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고, 한 밤중에 그렇게 두 시간을 우는 게 이해되지도 않았다. 때론 아이들에게서 합리와 이성을 발견할 수 없어 가슴이 참 답답한데, 이날이 딱 그 짝이었다.


촉발은 별거 아니었다. 그 흔하디 흔한 포켓몬 카드.


형이 소풍 가면서 차에 놓고 내린 포켓몬 카드를 둘째가 가지고 놀고 있었다. 처음 가져보는 카드라 재밌고 신기했는지, 태권도장에서 선물로 받아온 카드 다섯 장을 하루 종일 가지고 놀았다. 형이 있을 때는 기회가 많이 없었는데, 형이 소풍을 가서 저녁 늦게 오게 되니 쪼물딱 쪼물딱 카드가 하루 새 구깃하고 찐덕해졌다.


형이 소풍에서 돌아오자 카드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언쟁이 생겼고, 내가 그걸 야단치며 카드를 형에게 돌려주라고 하자 울음이 터져버렸다. 촉발은 정말 별거 아니었다. 검색해보니 고작해야 포켓몬 카드 몇 장에 천 원 밖에 안 하는 것이었는데- 이 난리가 난 것이다.


"야, 아빠가 사줄게! 포켓몬 카드 둘 다 가지고 싶은 만큼 사주면 될 거 아냐!!" (호통+1)


아이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우는 샤인 머스켓, 그거 한 번만 안 사줘도 그까짓 카드 백 장은 사줄 수 있는 것이었다. 1인 1샤인 하는 녀석들에게 못 사줄 것도 아니었다.


둘째의 통곡이 계속되자 아내가 안고 들어갔지만, 이불속에서도 흐느낌은 멈추지 않았다.


얼마 전 일이 떠올랐다. 첫째의 신발이 작아져서 신발가게에 갔다. 디자인도 이쁘고 기능도 좋은 신발을 고르다 보니 가격이 상당했지만 첫째라는 이유로 주저 없이 사주었다. 새 신을 신고 펄쩍 뛰는 첫째와, 자기도 신발이 가지고 싶다며 쭈뼛거리는 둘째.


하지만 네 명의 아이에게 모두 새 신발을 사줄 수는 없는 법이다. 때문에 둘째는 여섯 살이 되도록 새것으로 가져본 적이 거의 없었다. 비교적 터울이 있는 동생들에 비해, 둘째는 연년생 형에게 물려 신기에 너무 적절한 터울이었다. 그렇게 옷도, 신도, 장난감도- 모든 것들을 형에게 물려받으며 서러움이 쌓여왔던 것일까.


자정 가까이 이어지는 둘째의 흐느낌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다음날, "여보, 우리 의준이 신발 새로 사주자"라고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아내는 반대했다. 서러움은 무엇을 사준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서러울 때마다 새것을 사줄 수도 없다고 했다. 차라리 버럭+1을 하지 말고 더 다정하게 대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아직 둘째의 신발은 지저분해서 그렇지 쓸만하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버럭을 멈추기로 했다. 활화산에서 용암 분출이 바로 멈출 순 없겠지만, 앞으로도 당분간은 가스와 화산재가 나오겠지만, 이제는 정말 휴화산을 지나 사화산이 되기로 했다. 아이들 옆에 그냥 항상 놀러 갈 수 있는 푸른 산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나무가 있고 새가 짖고 바위에 이끼가 낀 그냥 평범한 산이 되기로 했다.


둘째의 서러움을 다 이해할 수도 없고, 포켓몬 카드와 새 신발을 사주는 것도 답이 아니라는 말에 설득도 되었으니. 자주 하는 다짐이고, 그만큼 자주 실패하는 목표지만- 다시 한번 노력해보려고 한다. 상 아이들 덕분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고, 아내 덕에 하나씩 배운다.


아이들을 온전히 다 키워내면 정말 좋은 사람에 가까워져 있을 것만 같다. 세상 초연하고 관대하고 이해심 많은 사람. 내가 아니었던 사람 말이다. 참, 육아는 정말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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