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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Jan 23. 2024

태권도 스티커가 멈춘 곳

일곱 개의 어린이집과 두 개의 초등학교

아이는 공부도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좋아할지도 모르지만 부모가 아이에게 많은 기회와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그렇게 몇 년이었다. 만으로 두 돌이 되기 전에 동생이 태어났고 줄줄이 소시지처럼 동생에 동생이 줄을 이었다. 뭔가 하려고 해도 동생들로 인해 우리의 행동반경은 넓어지지 못했다.  


뭐라도 시켜야겠다고 생각이 들어 등을 떠민 곳은 태권도 학원이었다. 다녀오면 좀 피곤해 보였고,  꽤 자주 "오늘은 안 가면 안 되냐"라고 물었다. 아이는 어릴 적 나처럼 집에 머무는 게 좋은 것 같았다. 하지만 태권도에서 배웠던 것들을 회상하며 재잘거리는 모습을 보면 은근히 즐거운 시간인 것 같았다.  


태권도를 다녀오면 작은 손등에 붙여 온 출석 겸 칭찬 스티커를 넓은 스티커판에 옮겨 붙이며 한 줄- 한 줄 채워나갔다. 스티커가 채워지며 아이의 태권도 띠 색이 바뀌어나갔고, 이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는 것 같은 기미도 짙어졌다. 새로 이사 온 이곳에서 그렇게 태권도도 오래 다니고 친구들도 깊이 사귀며 지내길 바랐다.  


전셋집 계약은 기본 2년이었지만, 입주하면서 집주인에게는 "여기서 4, 5년쯤 지내고 싶다"라고 속내를 비췄다. 해외로 떠나며 집을 내준 집주인도 내심 반기는 눈치였다. 좋은 동네에서 아이들을 안정적으로 키우려고 무리를 좀 해서 들어간 집이었다. 학교도 가깝고 숲도 가깝고 뛰어도 문제없는 마당 있는 1층 집이었다.  


하지만 바람은 언제나처럼 바람과 같이 지나갔다. 집을 계약한 지 6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나의 근무지는 또 새로운 저 먼 지역으로 결정되었다. 이사에 수반된 많은 것들이 'To-Do List'에 들어가는 것은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았다. 36년 살면서 서른여섯 번도 더 한 이사였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단 한 가지. 첫째 아이였다.


이제 초등학교 일 학년인데, 일곱 개의 어린이집을 거쳐 초등학교에 진학한 터였다. 그리고 곧 두 번째 초등학교에 전학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8살에게 참 가혹하고 모질었다. 아이가 꾸준하지 못하고 자주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이런 상황에서 기인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죽죽 해졌다.  



아이들에게 이사에 대한 소식을 알렸다. 동생들이야 아직 그런 개념이 덜하기 때문에 그럭저럭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첫째의 표정을 살폈다. 애써 실망하지 않은 것 같은, 태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그 덤덤함 뒤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사까지 몇 개월이 남았냐고 물어보길래 "어, 이제 곧. 그래도 1학년은 마치고 갈 수 있도록 해보자" 라며 답해주었다.


아이는 열심히 모으던 태권도 스티커를 모으지 않았다. 집에 돌아마자 손등에서 냉장고에 자석으로 붙어있는 스티커 판으로 옮겨 붙이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제 곧 승단 심사도 있었지만 안 따도 괜찮다며 무관심했다. 그게 아닐 텐데. 흰띠에서 하나하나 올라갈 때마다 동생들에게 그렇게 자랑하며 빨간색까지 올라왔는데, 안 따도 괜찮다는 건 이 아이의 퍽퍽한 단념일 것이었다.  


몇 번을 설명하고 설득했지만, 태권도 스티커가 멈춘 그곳에서 아이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았다. 나는 멈춰있는 그 스티커판을 보는 나의 마음은 자주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 12월, 언제나처럼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어느 날 우리는 또 이사했다. 매년 있는 일이었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니 어때보다 마음이 좋지 못한 이사였다.


며칠 밤을 새워서 거의 다 준비해 놓은 이삿날 아침, 역시나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은 걸리적거리는 것 없이 편하게 짐을 옮겼다. 냉장고와 그 위에 붙어있는 태권도 스티커판도 고스란히 새로운 집으로 옮겨졌다. 더는 의미가 없는 것일진대 왠지 떼버리고 싶지가 않았다. 미안함을 되새기려고 일지 모르겠다. 다른 것이라도 잘해주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좀 어리광 부리고 불안해하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주고 싶다는 작은 다짐처럼 스티커판을 그대로 붙여놓았다.  


초등학교 2학년에게 일곱 개의 어린이집과 두 개의 초등학교를 다니게 한 나는 부족한 아빠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라는데, 나라는커녕 가정은 잘 지키는 건지 모르겠다. 나 스스로는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태권도 스티커가 멈춘 그곳에서 내 아이가 다시 힘차게 시작하길.  


부디 초등학교는 네 군데를 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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