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야
시시덕 거리며 나갔다가 20여분쯤 지나면 돌아온다. 여전히 재밌는 무언가를, 알 수 없는 어떤 말들을 주고받는다. 어제도 재미있는 회식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동료들은 언제 또 모이자는 둥, 스크린을 치러 가자는 둥 다음을 기약한다. 이젠 올 거냐고 묻지도 않는다. 매우 높은 확률로 나는 안 갈 것이라고 대답할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이미 충-분히 학습되어 있다.
술을 끊은 지는 5년 정도 되었다. 쌍둥이가 태어난 지도 5년이 되었다. 아이가 넷인데 내가 술을 먹고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명분도 좋고 건강에도 좋으니 스스로를 위로하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식 다음날을 마주하는 것은 분명 이물감이 다. 어쩌면 내가 그들의 이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기라도 하면, 술, 한 잔 땡기는 건 어쩔 수 없다.
담배를 피우는 이들은 한 시간에 한 번씩 모여 흡연을 가고, 술 마시는 이들은 일주일에도 몇 번이고 모여 몇 시간씩 시간을 보낸다. 거기에서 격리된 나는 그들 사이에 어떤 라포와 정보로부터도 몇 걸음 떨어져 있다. 내가 모르는 대화, 내가 모르는 상황,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약점으로 작용한다.
결혼 후 내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는 언제나 가정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퇴근 후 아이들이 달려드는 아빠가 되었다. 아이들이 무언가 함 하고 싶은 아빠가 되었다. 대부분 기러기가 된 그들과는 조금 다르게 (군인들은 40을 전후로 기러기가 된다. 이사가 너무 잦기 때문일까.) 언제나 가족과 함께 이사를 다니고 정시 퇴근을 위해 2배속으로 하루를 재생한다. 일도 중요하고 삶도 중요하며 일과 삶 사이를 매일 출퇴근하는 내 자아도 중요하다.
독신일 때는 부대에서 지내는 걸 좋아했다. 야근도 회식도 언제나 반겼다. 20대가 지나고 삶의 방향과 중심이 바뀌었고, 특히 아이들이 늘어가면서 방향성과 중심축은 더 선명해졌다. 삶에는 정답이 없고, 그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나는 나의 방식으로 살아갈 테니 맞고 틀리다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 입장에서 내가 틀렸을 순 있다.)
다만 내가 가고 있는 길에 후회가 없으며 오늘도 작은 성공이었다고 스스로에게 격려를 전한다.
괜찮아, 그 작은 회식 정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