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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Jun 11. 2024

청소도 해봤는데 뭘 못하겠어?

뉴질랜드에서 청소 일을 하다니(3)

원래부터 청소 일은 오래 할 생각이 아니었다. 임시직으로 짧게 일하고 다른 일을 구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이직하기도 쉽지 않아서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하는 상태가 이어졌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던 11월에, 뉴질랜드에 좀 더 버티기로 결정했지만 청소는 그만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12월 중순에 7박 8일로 선교여행을 가는 일정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일을 구하는 게 애매해서 청소 일을 좀 더 하되, 저녁에 하는 오피스클리닝은 그만두고 홈클리닝만 한 달 더 하기로 했다. 그래서 주 6일 근무에서 시간을 줄이고 낮에만 하는 주 5일 청소로 바꾸기로 했다.      




중간에 꿈같았던 일주일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근무를 시작했다. 한 달만 일하고 그만둔다는 것이 결정되고 나서 한동안 새로운 일을 알아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미치도록 출근하기 싫은 마음이 공존했다. 일주일 만에 출근했더니 부부 사장님과 직원분이 나를 어찌나 반겨주시던지. 그 와중에 여행을 다녀올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고 내가 원하는 날짜까지 근무할 수 있도록 맞춰주셨던 사장님께 감사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마지막 근무 날이 되었다. 그날은 유독 청소가 힘든 집이 모여있는 날이어서 ‘하필 마지막날까지 청소가 이렇게 힘들다니.’ 하면서 속으로 불평이 나왔다. 그중에 특히 마지막은 공사 중인 집이었다. 시끄러운 공사판 속에서 청소해야 하는 환경이어서 그 집을 갈 때마다 싫었다. 그래도 별수 없으니 묵묵히 땀 흘리며 청소하는 중이었는데 집주인이


“Grace, 오늘 마지막이라고 들었어. 그동안 고마웠어.”


라고 말해주는 거 아닌가(내 영어 이름은 Grace였다). 고생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서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보람을 느꼈다.




청소를 마치고 나오는데 사장님 편에 작은 카드를 전달받았다. 그 집주인이 크리스마스 카드라며 전해줬다고 했다. 말만 들은 것도 고마웠는데 카드까지 적어주다니 하면서 가방 속에 넣고 집에 오는 길에 열어보는데 깜짝 놀랐다. 카드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 안에 50불까지 같이 들어있었다. 손님에게 난생처음 받아보는 손편지와 팁이었다.     

3개월 동안 청소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이 힘들었는데, 마지막 날 생각지 못한 선물에 그간 내가 힘들게 버텨온 것이 보상받는 기분이어서 감동이 벅차올랐다. 나에게 카드와 50불의 팁은 단순한 의미 그 이상이었다. 그래서 50불은 뉴질랜드를 떠나는 때까지 쓰지 않고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마지막에 쓰긴 했다만. 


집에서 화장실 청소도 제대로 하기 싫어했던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청소를 시작했던 이 경험은 나에게 인생 교육이었다. 3개월 고되게 청소를 하면서 어떤 일도 쉬운 일이 없다는 것을 배운 동시에 앞으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인생에서 밑바닥까지 내려간다면 무엇이든 새로 시작할 수 있지 않겠나. 돈 주고 배울 수 없는 삶의 자세를 배웠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두려움이 든다면, 이때의 시간을 기억하고 나에게 말해줘야겠다.


‘청소도 해봤는데 뭘 못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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