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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지도를 그리다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by 이세현

행복의 장소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매일 같은 길을 오가며 익숙한 공간 속에서 살아간다. 아침에 눈을 뜨면 부지런히 출근 준비를 하고, 늘 보던 풍경을 지나 사무실 혹은 학교로 향한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반복된 일상 속에서 문득 “과연 나는 어떤 공간에서 가장 행복함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막상 답하기가 쉽지 않음을 깨닫는다. 행복의 장소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을 움직이는 ‘공간의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Proshansky, 1983).


예를 들어, 어떤 이에게는 북적이는 도시 한가운데서 들리는 자동차 소리와 사람들의 활기찬 움직임이 오히려 에너지를 불어넣어준다. 오색 불빛이 번쩍이는 거리에서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삶이 움직이고 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도심 곳곳에 자리 잡은 트렌디한 카페나 문화 공간에서 지친 몸을 쉬어갈 수 있으며, 이 순간에 작은 행복을 누리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도시의 활력’이 곧 행복의 원천이 되는 셈이다.


반면, 또 다른 사람들은 조용한 시골이나 숲속 오솔길에서 진정한 안식을 찾는다. 새소리와 바람 소리만 들리는 한적한 시골길을 걸으며, 걱정과 스트레스가 눈 녹듯 사라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마을 입구의 작은 개울을 건너, 오래된 돌다리를 밟아갈 때의 정취는 도시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평화감을 선사한다. 이를테면,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숨 고르기 할 수 있는 공간”이야말로 이들에게는 최고의 행복 장소가 된다(Tuan, 1977).


‘행복의 장소’가 단지 지리적 위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공간에서 나 자신을 얼마나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다시 말해, 고급 리조트나 유명 관광지라 할지라도 내면에 진정한 행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그곳은 ‘진짜 나’를 마주하기 어려운 공간이다. 반면 작은 골목길 끝에 있는 단골 서점이나 동네 카페에서 오랫동안 서가를 뒤적이고, 좋아하는 커피 한 잔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순간이 더 큰 만족을 줄 수도 있다(Csikszentmihalyi, 1990).


예컨대, 어느 카페 한편에 앉아 나만의 책을 읽는 순간에 느끼는 포근함이나, 창문 너머 산책로가 내다보이는 서재에서의 몰입감은 우리의 감정을 깨우고 삶의 활력을 되찾게 해준다. 이때, 머릿속에서 불현듯 아이디어가 샘솟거나, 긴 시간 동안 곱씹어 왔던 고민이 한순간에 정리될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만의 공간’을 찾는 과정이란, 단순히 장소를 물리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넘어 내면의 가치와 취향을 재발견하고, 일상의 무의미 속에서 의미를 되찾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Seligman, 2002).


조금 더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보자. 직장 생활에 치여 매일 늦은 밤 퇴근을 하는 30대 초반의 사람을 상상해보자. 그는 끊임없이 울리는 스마트폰 알람과 업무 요구 사항에 시달리다가, 문득 “나는 왜 이렇게 지쳐만 가는 걸까?”라는 의문을 품는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방문한 작은 공방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목공 작업을 즐기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시끄러운 기계 소음 대신 나무가 깎이는 소리와 은은하게 풍겨오는 톱밥 향이 그를 한없이 편안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이 공방에서 그는 비로소 ‘나다움’을 잃지 않고 오래도록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주말에는 일부러 그 공방을 찾아가 짧은 시간이지만 나무를 깎고 소품을 만드는 활동을 즐긴다. 그에게 있어 이 목공방은 ‘행복의 장소’일 뿐 아니라, 자기 삶을 재정비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심리적 쉼터’가 되었다.


이처럼 행복의 장소는 누구에게나 달라 보이지만, 그 본질은 “공간이 주는 경험과 감정”에 있다. 스스로에게 “내가 진정 좋아하고, 가장 나답게 존재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를 물어보는 일은 사소해 보이지만 강력한 변화를 이끌어낸다.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가 잊고 지낸 취향과 가치관이 되살아나고, 나아가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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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우선순위를 재배치하라"는 조언


행복한 공간을 찾기 위한 첫걸음은 의외로 내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점검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 인간관계, 취미, 건강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시간을 쪼개며 살아가지만, 정작 "어디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가?"를 돌아보면, 본래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와 전혀 다른 곳에 힘을 쓰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불일치는 피로감과 무력감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찾아가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많은 자기계발서나 상담 전문가들은 “인생의 우선순위를 재배치하라”고 조언한다. 이는 단순히 ‘하고 싶은 일’을 늘어놓는 차원을 넘어, ‘무엇이 내게 진짜 중요한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과정이다. 예컨대, 일이 최우선이라면 어떻게 시간을 배분하고, 취미나 여가를 우선순위로 두려면 또 어떻게 삶을 구조화할 것인지부터 구체적으로 따져보는 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숙고와 조정은 당장은 번거롭고 복잡해 보일 수 있으나, 결국엔 ‘나만의 행복 지도’를 그리는 근간'이 된다.


“내가 진정 소중히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할 수 있다면, 이미 내 삶의 목적지와 경로를 절반쯤 그려놓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Seligman, 2002). 그러나 솔직하고 냉정한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이 늘 주변의 시선과 기대, 그리고 사회적 성공 기준에 의해 흔들려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가 ‘성공’이라는 깃발 아래 달려온 시간들 속에는 가족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선택, 혹은 사회가 부여한 ‘정상 경로’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한 타협 등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삶의 어느 시점에서든, “지금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이를 위해 앞으로 어떤 목표와 계획이 필요한가?”를 물어볼 수 있다면, 그 순간부터 인생의 우선순위를 재배치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이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단순히 스케줄러에 일정을 적어두는 수준을 넘어,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을 나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내게 의미 있는 활동과 그렇지 않은 활동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등 보다 구체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우선순위를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도전과 성장

예를 들어, 40대 중반의 직장인 민수 씨를 떠올려보자. 그는 오랜 시간 한 회사에서 일하며 안정적인 삶을 유지해왔지만, 점점 지쳐가고 있음을 느꼈다. 사실 민수 씨는 오랫동안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싶었고, 주말에는 음악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지만, 바쁜 일정과 주변의 기대 속에서 늘 미루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있고,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이 고민 끝에 민수 씨는 직장에 대한 집착을 조금 내려놓기로 결심했고, 주말마다 음악 관련 수업을 듣기로 했다. 이 선택은 자신에게 ‘음악’이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는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기존의 생활 패턴을 바꾸고 주변의 우려를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랐다. 하지만 이러한 우선순위 재정립 과정을 거치며 민수 씨는 더 깊은 자아실현과 행복감을 느끼게 되었다.


반대로, 전일제 근무를 유지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일과 음악 활동을 어떻게 균형 있게 배분할 것인지 고민해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평일 저녁 중 하루를 비워 음악을 공부하거나, 휴가를 짧게라도 활용해 관련 워크숍에 다녀오는 등의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이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숙고하는 과정은, 곧 내 인생에서의 행복의 장소—내가 온전히 몰입하고, 나 자신을 잃지 않고, 삶의 기쁨을 되찾을 수 있는 곳—를 찾는 길잡이가 된다.


집 안의 작은 서재가 될 수도 있고, 회사 건물 옥상의 작은 화단이 될 수도 있으며, 혹은 완전히 새로운 도시로 이주하는 극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결정의 기반에 “무엇이 나를 truly(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이 놓여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무조건 높은 연봉이나 화려한 업무 타이틀만을 좇는다면, 결국 내가 설정한 우선순위가 실제로는 ‘타인의 기대’였음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인생의 우선순위를 재배치하는 일은 끊임없는 자기 점검과 용기 있는 선택을 요구한다. 매일 조금씩 긴장을 풀고, ‘오늘은 어떤 일에 내 시간과 마음을 쏟을까?’를 진지하게 자문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렇게 방향을 정하다 보면, 어느새 ‘나’를 더욱 아끼고 존중하며, 정말 가고 싶은 길을 설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행복의 장소”를 찾는 일은 한결 더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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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린 지도는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행복을 향한 지도는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물리적 공간의 좌표만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 공간에서 우리가 어떤 감정과 경험을 얻게 될지, 그리고 그로 인해 새롭게 형성될 정체성이 어떻게 바뀌어나갈지까지 담아내는 일종의 내면 여행 안내서에 가깝다. 예컨대, 어린 시절 뛰놀던 골목길은 단순한 놀이 장소가 아니라 그 시절에 느낀 자유로움과 호기심, 그리고 순수했던 감정들이 오롯이 녹아 있는 ‘심리적 장소’가 된다(Bartlett, 1932).


이렇게 ‘지리적 장소’를 넘어 삶의 전환과 성장을 상징하는 ‘심리적 장소’는 어쩌면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기억해낼 수 있는 ‘나만의 보물 지도’일지도 모른다. 낯선 도시를 여행하다가 문득 어릴 적 동네의 골목 풍경이 떠오르기도 하고, 몇 해 전 이사 온 아파트 앞 정원이 어느새 나만의 비밀 정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온 기억과 정서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도의 좌표’를 이어 붙여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탄생한 내면의 지도는 끊임없이 현재와 미래를 향해 확장된다. 우리는 매일같이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낯선 곳을 여행하거나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면서도, 동시에 나만의 ‘좌표 축’을 조금씩 수정해나간다. 혹자는 여행을 통해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문화와 사람을 만나고, 그 속에서 ‘나다움’을 새롭게 재발견하게 된다. 또 다른 이는 오랫동안 살아온 동네에서 이어지는 추억과 인연을 통해 내적 평온과 안정감을 얻는다.


“그렇다면 이 지도는 결국 나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이는 단순한 호기심에 그치는 물음이 아니라, 인생의 우선순위를 재정비하고, 더 구체적으로 행복의 장소를 찾는 데 핵심적인 단서가 된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나는 무엇을 원하고, 어디에서 나답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해답이 이 지도 위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유학 시절, 낯선 해외 도시에서 어리둥절한 시간을 보냈던 사람이 어느 날 아침, 동네 커피숍에서 마주한 청명한 하늘과 느긋한 사람들의 표정을 본 순간, 그 공간을 자신만의 ‘안식처’로 인식하게 될 수 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과제와 연구, 언어 장벽으로 힘들었지만 그곳에 앉아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짧은 시간만큼은 진정으로 나 자신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도시의 특정 거리나 카페는 ‘지리적 장소’를 넘어 향후 그의 삶 전체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공급하는 기억으로 남는다.

이렇듯 한 장소가 사람의 삶에 깊이 각인되는 이유는, “공간에서 비롯되는 경험과 그로 인한 감정”이 우리의 정체성 형성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기억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덧붙이며, 우리를 ‘다음 단계’로 이끌 준비를 한다. 실제로 어떤 장소에 대한 인상이 긍정적으로 새겨지면, 우리는 그곳과 유사한 경험을 찾아 다시 떠나거나, 혹은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행동에 더 많이 참여하게 된다.


결국, 내가 그린 지도는 과거 되돌아보게 하면서도 미래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같이 제시해준다. 과거의 기억을 통해 “나는 이런 순간에 행복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앞으로 더 많이 행복해지기 위해 이와 유사한 경험이나 연결 지점을 탐색할 것이다. 이를 통해 구체적인 인생 계획—예를 들어, 새로운 도시에서의 생활을 꿈꾸거나, 지금 사는 곳에서 나만의 쉼터를 꾸미기 위한 취미 활동—을 세우게 된다.


이는 바로 내면의 ‘창(窓)’과 같은 역할을 한다(Csikszentmihalyi, 1990). 아무리 주변 환경이 화려하거나 자극적이라 해도, 내가 직접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 없다면 진정한 만족이나 성장은 일어나기 어렵다. 내가 그린 지도는 그 창을 활짝 열어젖혀, 자기 자신을 더욱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마음껏 풍경을 구경하고 바람을 느끼듯, 그 지도에 적힌 좌표들과 마주하다 보면 우리는 우리의 취향과 가치관을 다시금 확인하고, 세상에 한 발 더 내디딜 용기를 얻게 된다.


더 나아가, 이 지도를 계속해서 업데이트하는 것은 ‘평생의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가치관이 변하거나, 외부 환경이 달라지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기회나 인연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다시금 자신이 그려놓은 지도를 펼쳐들고, 새로운 좌표를 추가하거나,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고 판단되는 길이나 장소를 과감히 지워낼 수도 있다. 이 지속적인 과정이 곧 “자기 성장과 행복”의 핵심이며, 동시에 “인생의 다채로운 풍경”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비결이다.


내가 그린 지도는 결국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가장 구체적이고도 아름답게 보여주는 도구가 된다. 그것은 내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망하는 ‘미래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 이 지도를 들고 세상이라는 무대 위를 자유롭게 거닐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익숙한 풍경 속에서도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낯선 환경에서도 두려움 대신 호기심을 품게 될 것이다.


나아가, 이 지도가 이끄는 곳은 결코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언젠가 돌아갈 ‘고향’이 되기도 하고, 평생 동경하던 도시가 되기도 하며, 지금 이 순간 다니고 있는 직장이나 학교를 ‘성장의 터전’으로 바꿔놓기도 한다. 결국, 행복의 공간이란 “지도에 적힌 좌표” 그 자체가 아니라, 그곳에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며 무엇을 느끼고 배우는가에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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