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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이성

( emotion and reason)

by 보뚜

사람은 누구나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그 상처들 중 대부분은 사람에게서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생채기같이 작은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아물 수 있겠지만 큰 상처는 세월이 흘러도 치유가 되지 않거나 치유가 된다고 하더라도 흉터로 남게 되어 심한 경우에는 트라우마(trauma)가 되기도 한다.

살면서 남에게 상처를 받지 않을 수는 없다. 특히나 사람과 관계를 하지 않고는 살기 힘든 현실을 감안할 때 그 사실은 더욱더 부정하기 어렵다. 우리에게 기억을 지우는 장치나 초능력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렇지 못한 우리로서는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단련하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필자의 지인 중에 3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열 번 가까이 이직을 한 사람이 있다. 평균적으로 한 회사에서 3년 정도만을 근무한 것인데 매번 이직을 할 때마다 전 직장보다 좋은 처우를 받아서 주변에서는 그를 능력자라고 불렀다. 어느 날 내가 퇴사를 결심하고 조언을 구하고자 그분을 만났는데 대화 도중에 생각지도 못한 얘기를 듣게 됐다.


그는 평소 친하게 지냈던 직장 동료가 본인에게 짜증을 내거나 무시하는 행동을 하게 되면 그 이유를 불문하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분노의 정도가 너무 심해서 조절하기가 어려울 정도였고 그럴 때마다 이직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나는 평소 그분을 항상 이성적이고 침착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기에 그분이 하는 말을 믿기가 어려웠다.


“형님, 지금 하신 얘기가 사실이세요? 저는 형님이 그런 성향을 갖고 계신지 몰랐어요. 본인의 몸값을 높이려고 이직하시는 줄로만 알았는데...”

내가 놀라는 표정으로 질문을 하자 그 분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성적인 사람이 어딨냐?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야. 그냥 이성적인 척할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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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동안 ‘사람은 감정뿐만 아니라 이성도 갖고 있어서 동물들과 달리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알고 있었다. 이것은 틀린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 사실은 단순히 사람의 감정과 이성의 크기가 같다는 가정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사람은 분명 동물과 구분되는 이성을 갖고 있지만 원천적으로 감정의 동물이며 이성보다는 감정에 무게를 더 실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이 훈련을 통해 이성이 발달됐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선배가 얘기한 것처럼 그런 척하는 것일 뿐 실제 감정까지 그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이성과 감정은 그 크기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둘을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려고 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온전히 치유 받지 못하고 괴로워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마음의 상처와 트라우마는 이성적인 잣대로 접근해서는 절대 치유할 수 없다. 그것은 온전히 그 사람의 감정을 느끼고 공감할 때에만 치유할 수 있다.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은 단순한 지식일 뿐 이해와 공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당신에게 가장 큰 마음의 상처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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