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살고 싶냐고? 아니, 행복하게 살고 싶어.
마흔 중반에 찾은 행복.
결혼을 해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직장생활을 하는 마흔 다섯의 중년 남성. 불과 1년 전의 나를 표현하라고 하면 아마도 이렇게 표현했을 것 같다.
2021년 코로나로 전국이 시끌벅적하고 주변엔 문을 닫는 식당들이 하나씩 늘어가던 그해 여름. 나는 제2의 인생을 준비하겠다는 명목으로 멀쩡히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마흔 중반이라는 나이에 갑자기 회사를 그만둔다는 소리를 듣고 놀란 동료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이 차장, 무슨 일 있어? 갑자기 웬 사표?"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나를 쳐다보는 동료들 사이에서 나는 자신있게 말했다.
"웹 소설가가 되고 싶어. 지금부터 제 2의 인생을 살아보려고."
내 말을 듣던 동료 직원들 모두가 기함하듯 입을 벌리고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퇴사하는 날까지 수시로 나를 찾아와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이 차장, 다시 생각해 봐. 멀쩡한 직장 그만두고 웹 소설가가 웬 말이야?"
"차장님, 요즘 많이 힘드셨어요? 도대체 왜 이러세요?"
하긴 마흔 중반이라는 나이에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웹 소설가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이를 어디로 먹었냐고 얘기를 해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지방에서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나는, 아버지의 권유로 당시 중앙일보에 실린 제1회 신세계 백화점 글쓰기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생각지도 않게 입선을 했다. 기대도 하지 않고 계셨던 아버지는 내가 입선을 한 사실을 알고 적지않게 놀라셨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전 학년에서 글 잘 쓰는 사람만 뽑는 편집부에도 내 이름을 당당히 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창시절부터 나는 글쓰기 재주가 남달랐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학창시절의 재주만 믿고 웹 소설가가 되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무모한 짓이라는 걸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흔히 사람들은 글쓰는 직업이 굶어 죽기 딱 좋은 직업이라고 말한다. 사실 나 역시도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 중 하나였는데, 그런 생각을 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웹 소설가가 되려고 한 것일까? 그 이유는, 끝이 뻔히 보이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남은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루하루 전전긍긍하며 버티듯 직장을 다니는 내 모습이 어느 때부턴가 안쓰럽다 못해 한심스러워 보였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꼼짝도 하지 않고 침대에만 누워 있는 날이 많았고, 와이프의 사소한 행동과 말 한마디도 그냥 넘기지 못할 만큼 신경은 날로 예민해져만 갔다.
'내가 왜 이러지?'
마치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처럼 하루하루 괴롭고 우울하기만 한 날들. 그러던 중 우연히 읽게 된 웹 소설 한 편에 학창시절 글쓰기를 좋아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 순간 불현듯 소설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웹 소설가가 되자!'
처음엔 그저 한낱 호기라고 생각했다. 18년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보고서 외에는 글쓰기를 해 본 적도 없던 내가 갑자기 웹 소설가가 되겠다니. 도무지 말이 되는 소리인가? 하지만, 나는 어느 새 웹 소설의 시장 전망과 웹 소설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읽으며 점점 더 웹 소설가라는 직업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래! 더 늦기 전에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보는 거야.'
나도 모르게 이러한 말을 되뇌며 매일같이 꿈속을 헤매고 다녔다. 하지만, 그렇게 꿈속을 헤매고 다닐 때마다 항상 나를 현실로 소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어머니와 아내였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아들이 보내주는 생활비와 노령연금으로 홀로 생활을 하시는 어머니. 50대에 남편을 잃고 줄곧 아들을 의지하며 살아온 나의 어머니는 서울에서 번듯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아들을 항상 대견스러워 하셨다. 매월 아들이 보내오는 돈은 당신에게 단순한 생활비를 넘어서 자랑거리였다. 그런 어머니 덕분에 명절 때마다 난 친지들에게 효자라는 소리를 듣게 됐지만, 내 아내는 남몰래 가슴앓이를 한 적이 많았다. 결혼해서도 계속 학원에서 영어 강의를 하던 내 아내는 4년 전부터 학원 일을 그만두고 자신이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했다. 아직까지 본인이 만족할만한 성과는 이루지 못했지만, 조금씩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동안 나는 효자 아들과 든든한 남편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돈을 벌어야 가족들을 먹여살릴 수 있으니까.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아니 내가 해야만 하는 소명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들이 나를 점점 더 옥죄는 것만 같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자신을 한없이 질책하며 점점 더 깊은 동굴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모든 가장들이 다 그렇게 사는 데 유난은.......'
나를 질책하는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갈수록 웹 소설가가 되겠다는 나의 생각은 점점 강해져만 갔고 그럴 때마다 지킬박사가 자신 안에 있는 하이드를 발견해 괴로워 했던 것처럼 나는 현실과 동떨어진 또 하나의 자아와 맞서 싸우며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정신은 육체를 지배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한 시간이 지속될수록 내 몸은 점점 더 무기력해져 갔고 어느 순간부터는 집중력이 흐트러져 회사 업무를 보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어버렸다.
'마흔 중반에 웹 소설가라니...... 정말 나이먹고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동안의 내 삶은 남들과 비슷하면서도 많이 달랐다. 서른 초반에 직장에서 만나 결혼을 한 우리 부부는 일명 딩크족을 자처하며 지금까지도 아이를 갖지 않고 생활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애가 있는 여느 부부와는 사뭇 다른 점들이 많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남녀의 구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신혼 초부터 우리 부부는 여자라고 해서 집안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거나 남자라고 해서 직장에 나가 돈을 더 많이 벌어와야 한다는 기존 사회 통념을 무시해 왔다. 그래서 집안 일도 각자의 성향이나 적성을 고려하여 서로 공평하게 나누어 했다. 가령 아내보다 요리를 좋아하고 더 잘하는 내가 요리를 만들고 나보다 옷에 관심이 더 많고 잘 아는 아내가 자연스럽게 빨래를 맡았다. 각자 잘 하는 일을 맡아서 하다보니 서로에게 불만이나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거의 없었고 서로 으르렁 거리며 싸울 일도 없었다. 그래서 였을까? 결혼한지 12년이 넘었지만 우리 부부는 아직도 거실에 결혼사진을 걸어두고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웹 소설가가 되겠다는 내 생각이 짙어질수록 회사 생활은 점점 더 피곤해져만 갔다. 고민끝에 나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사표를 던졌다. 그 때까지도 아내에게 실망을 안겨줄 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표낸 사실을 아내에게 알리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무책임한 인간이었나?'
이러한 생각이 들때면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동안 아무리 남들 부부와는 다르게 살아왔다고 하지만, 유교적 문화와 관습 속에서 살아 온 나에게 퇴사는 곧 가장의 길을 포기한 남자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에게 이러한 주홍글씨까지 붙이면서 웹 소설가가 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다니기 싫은 직장을 그만두기 위한 핑계를 찾는 건 아닐까? 사표를 내기 직전까지도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했던 질문이었다.
사표를 낸지 며칠이 지나고, 어느 금요일. 우리 부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주 금요일마다 집에서 불금파티를 했었는데, 말이 파티지 사실 소소한 안주에 맥주를 들이키는 정도였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퇴근을 해 집에서 불금 파티를 하고 있는데, 그날 따라 와이프의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와이프에게 사표낸 사실을 이실직고 했다.
"여보, 나 할말이 있는데......"
"뭔데?"
"나, 사표냈어. 직장 그만두고 웹 소설가가 되려고......."
제아무리 금슬 좋은 부부라 할지라도 어느 날 남편이 사표를 내고 웹 소설가가 되겠다는 소리를 하면 달가워 할 아내가 있겠는가? 아마 백이면 백 '우리 남편이 실성을 했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아내 입장이라도 그랬을 것 같다. 그런데, 내 아내는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요즘은 직장이 답은 아니지. 그래, 지금부터라도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봐."
"정...... 정말? 그래도 돼? 돈을 잘 못 벌수도 있는데.......?"
"어떻게든 먹고는 살겠지."
"......."
"당신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지. 그리고 월급쟁이 인생이라는 게 사실 너무 뻔하잖아?"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고마워. 나, 진짜 열심히 해볼게."
12년이 넘게 함께 생활해온 와이프가 그 때처럼 대단해 보이긴 처음이었다. 그 이후로 정확히 두 달 후,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웹 소설가로써의 삶을 시작했다. 어쩌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수도 있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사건! 어쩌면 무모할 수도 있는 제 2의 인생 도전기가 시작된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가슴 한편에는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 있지만, 1년 넘게 웹 소설을 쓰며 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요즈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설레고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자신없는 표정 짓지 말고, 웃어 이 바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