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 속의 빈곤!
Poverty midst ple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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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나은 소통을 생각한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있다. 통상적인 빈곤은 부존자원의 부족으로 인한 숙명적인 빈곤, 천재지변에 의한 재난, 계층별 소득분배의 불공정 등 정치경제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풍요 속의 빈곤(poverty midst plenty)은 국민경제가 갖고 있는 이용 가능한 자원과 생산설비를 충분히 가동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빈곤을 말한다. 따라서 이런 빈곤은 합리적인 정책 전환이나 대안적 방법에 의해 충분히 극복할 수가 있다.
교실 이야기 속에서 '소통의 가치'를 끄집어내어 이야기하면서 갑자기 풍요 속의 빈곤을 운운하니 뜬금없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 교육공동체가 처한 소통을 가치로 따졌을 때 쉽게 말하면 그렇다는 의미이다. '소통'에서 소(疏 : 트일 소)는 있으나 통(通 : 통할 통)이 없다. 소통의 창구가 트여 있으되 서슴없이 자유롭게 통하여 오해가 없는 상태는 아닌 것 같다. 최근에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새로운 소통 방식을 구안해 적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 못한다는 말이다. 생색내기에 급급한 이벤트성 소통에 혀를 내두를 일도 있는 것 같다. 소통이라는 이름의 구색을 갖추고 있을 뿐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통은 없다는 말이다.
교사가 학생들의 성과를 평가하면 학부모들은 그것을 받아서 읽어본다. 그런데 학생에 대한 평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가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분명하지가 않다. 평어를 쓰는 교사조차 난감할 정도이다. 오히려 옛날처럼 '수우미양가'로 평가하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교사는 지침에 따라 아이들의 활동을 현란한 용어를 섞어서 평가하지만 정작 그것을 받아보는 학부모가 자녀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또, 지침에는 학생들을 점수로 평가하지 마라고 한다. 그러면서 내놓은 대책이 수행 자료로 소통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왠지 분절되고 개별적으로 나열된 자료가 대부분이어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통이 이루어지는지 의문이다. 아이들의 학습 능력이나 생활에 대한 맥락이나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보면 그런 것 같다. 학부모에게 당신 자녀를 잘 이해하고 있느냐고 물어보고 싶다. 어른들이 서로 뭔가를 주고받고는 있으나 주는 이도 받는 이도 시원하지 않고 개운하지 않다. 솔직히 탐탁지 않다. 어쩌면 소통은 없고 불통을 쌓아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교육이 가도 되는 것일까.
그래서 서로 만나 직접 소통을 시도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직접 소통이 좋다고 하나 의무감이나 체면치레로 만나는 것은 소통의 가치 측면에서 보면 어색하다. 누가 몇 번을 대면하는 것보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참된 생각의 교류가 쌓여가는지가 중요하다. 따라서 교육공동체의 소통은 단순히 규정에 따라 정보를 주고받는 차원을 초월하는 어떤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교육의 질, 교사의 교권, 아이들의 학습권은 물론이고 학부모의 알 권리에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통의 가치를 이해하고 그것을 잘 활용하면 교육수요자의 권리 보장은 물론이고 교권도 확립할 수가 있을 것 같다. 교육공동체의 원활한 소통이라는 쳇바퀴가 제대로 굴러가면 교육의 장에 드리운 갈등과 비효율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막혔던 벽이 뚫릴 수도 있지 않을까. 능력 있는 교사들과 지혜로운 부모들이 있으니 희망을 가져도 될 것 같다.
상담 활동 가운데 대면적 방법으로 서클(circle)이 있다. 서클은 북미 인디언의 전통에서 유래한 대화방법이다. 한 번에 한 사람만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들을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서클에서 나온 이야기는 비밀이 보장되어야 하며 시작과 끝을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 이러한 신뢰 서클은 회복적 생활지도나 평화로운 학급 공동체 만들기 등에 주로 활용되기도 하는 소통 방식이다. 학급 속에서는 매달 혹은 매주 체크인 서클과 체크아웃 서클을 통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확인하며 자연스럽게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정보가 쌓이고 쌓이면 그것이 또 다른 정보를 만들게 될 것이다. 서로 뒤섞여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정보도 거미줄처럼 체계화하여 매트릭스를 만들게 되면 아이들 간의 소통에 교사는 마법을 부릴 수 있는 힘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소통은 양도 양이지만 소통의 퀄리티에 주목해야 한다. 큰 방향을 정하는 소통도 있어야 하겠지만 세세하게 마음을 나누며 신뢰를 쌓아가는 소통도 필요하다. 서양 속담 중에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라는 표현에서 유래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라는 말이 있다. 문제점이나 불가사의한 요소가 세세한 일들 속에 숨어있다는 의미이다. 어떤 것이 대충 보면 쉬워 보이지만 제대로 해내려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도 그렇고 소통도 그런 것 같다. 다 나름대로 사정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현실을 충분히 감안하며 참된 소통을 실현해 나가야 교권을 지키고 교육 속에서 보람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찌 보면 먼 길을 돌아가라는 말처럼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지난 시간들과 경험을 곱씹어 보면 좋은 교육과 교사의 권리를 확보하는 길은 서로 대척점에서 주장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넓은 바다에서 그물을 치듯이 교육에 대한 분명한 방향이나 철학을 기반으로 차근차근 챙기며 순리를 따르는 것이 답은 아닐까.
아이들에 대한 정보가 축적되어 있지 않다면 학부모와 교사의 소통은 무미건조할 뿐만 아니라 지속할 가치도 없고, 지속되기도 어렵다. 호기심도 재미도 긴장감도 없는 만남이 되기 쉽다. 준비 없는 만남은 곧 준비 없는 이별을 예고하듯이 거창한 만남은 속 빈 강정이 되기 쉽다는 말이다. 뜬금없이 불쑥 만나서 무엇을 나눌 수 있단 말인가. 교사와 학부모의 소통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만나보니 '네가 아는 걸 내가 아는 것이네'로 만남이 끝나버린다면 또 만날 일은 없게 된다. 설령 또 다른 소통을 주선해도 이미 김이 새 버리면 소통 창구는 처음 시작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이 들게 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알맹이가 없는 땜질식 소통은 단절의 벽만 쌓게 될 것이다. 우리 교육은 어느 면에서 보면 의미 없는 소통이라는 말에 익숙해져 왔다. 서로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일들은 멈추어야 한다. 그것이 곧 혁신이다. 교육혁신을 의도하고 교권을 세우려면, 지난 일을 되돌아보며 새롭고 참된 교육의 기치를 올려야 할 것 같다.
일반적으로 한 학기를 마칠 때 통신표라는 것을 배부하는데 그 속에 '가정통신문'이라는 항목이 있다. 그것도 소통의 중요한 창구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그런 소통도 딱딱하고 경직된 전문용어로만 기술할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의 학교생활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쪽으로 기술하면 어떨까. 교사가 소통의 가치에 의미를 두게 된다면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법을 접목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전문용어 대신 아이에게 한 학기 동안 있었던 주요한 펙트를 편지 형식으로 소통을 취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아이들의 특성을 반영하고 부모가 자녀의 학교생활을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이면 뭐든 좋을 것 같다. 이와 관련해 일반적인 가정통신문과 소통에 가치를 두는 통신문을 함께 생각해 본다. 어느 쪽이 더 옳은지를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당사자들이 이해의 폭을 넓히고 서로 소통이나 대화를 이어가기 쉬울 것인지 각자 판단해 보면 된다.
[가정통신 예시문]
차분한 성격이며 친구를 위해 배려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어 교우관계가 원만합니다. 야외 활동을 싫어하는 편이며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여 교실에 혼자 남아 있거나 가끔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감각적 표현을 넣어 동시 쓰기를 좋아하며 글쓰기 노트도 꾸준히 잘 쓰고 있습니다. 학습장 정리를 잘할 뿐만 아니라 배운 내용을 정리하는 능력이 우수합니다.
[부모님과 함께 읽는 선생님 편지]
○○아, 안녕! 언제나 차분하고 친구를 위해 따뜻하게 배려하며 말하는 ○○의 착한 모습이 떠올라. 믿을 수 있는 친구 같은 ○○와 함께 한 6개월은 참 좋았단다. 감각적 표현을 배운 뒤에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모습을 관찰하여 감성적인 느낌으로 동시를 쓰기도 했던 ○○의 모습이 생각나네. 방과 후에 교실에 남아서 글을 쓸 때 “선생님, 벚꽃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와서 시를 쓸게요.”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의 아름다운 마음이 글로 표현되어 세상을 놀라게 할 일도 생길 수 있을까. 쉬는 시간에 교실에 혼자 있는 너에게 "왜 친구들과 같이 놀지 않니?"라고 했더니 “저는 놀이기구 타는 것이나 운동장 놀이가 싫어요.”라고 살짝 귀띔해 줬잖아. 그때도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해주어 선생님은 안심이 되었단다. ○○가 좋아하는 일을 더 열심히 하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글쓰기 노트에서 사실과 구분해 생각과 느낌을 잘 표현하고, 복습노트에서는 공부한 내용들을 알기 쉽게 정리를 잘하고 있으니 앞으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기대가 되는구나. 운동장에서 놀이기구 타는 건 싫어하더라도 좋아하는 댄스나 율동은 더 열심히 하면 좋겠어. ○○와 가족들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할게. 방학 동안 코로나도 조심하자. 1학기를 마치며 착한 ○○에게 선생님이 보냄~♡♡♡
며칠 전에는 코로나 상황을 피해 밴드에 공지하여 학부모 다모임 토의라는 것을 진행한 적이 있다. 학부모의 절반 가량이 토요일 오전에 시간을 내어 만났다. 아이들도 알고 있는 서클 상담도 공유할 겸 학기말 체크아웃 성격의 서클 활동 모임이었다. 자녀가 학교에서 체크인 서클이나 체크아웃 서클을 하고 있으니 부모들도 알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학부모의 학기말 체크아웃 서클은 대략 다음과 같은 절차로 진행했다.
*안건 : 교육활동 및 자녀교육 정보 공유
*일시 : 2021. 7. 3 (토) 10:00~
*진행 시간 : 120분
(환영 인사) 모임의 취지 안내
참석자 자기소개
서클 규칙 확인하기
[열린 질문 A](감정카드) 서클 규칙에 따라 몸과 마음의 느낌 나눔 및 경청
[열린 질문 B](아동 수행 자료 열람) 아동들이 1학기에 했던 주요 수행 자료를 열람하고 관련 생각 나눔 및 경청
[열린 질문 C](1학기 중점 지도 방향) 교육활동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내용을 공유하고 학부모 상호 간의 자녀지도 경험 나눔 및 경청
[열린 질문 D](2학기 교육활동 안내 및 의견 수렴) 다음 학기 주요 교육활동을 안내하고 학부모 의견 나눔 및 경청
(정리 및 감사)
부모들은 아이들의 수행 자료 가운데 수개월에 걸쳐 어떤 힘을 들여 꾸준히 해 온 자료들에 관심이 많았다. 실제로 아이들이 평소 어떤 역량을 발휘하는지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자기 자녀의 상황을 평어로 읽어보거나 두루뭉술한 칭찬만 들어왔으니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지 않았을까.
체크아웃 서클을 통해 열람한 장기간 이루어진 아이들의 수행 자료는 여러 아이들 가운데 내 아이의 수준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가치를 부여한 것은 아닐까. 그런 모임의 의미가 나중에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sns상에 공유되기도 한 것 같다.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정식 모임에는 참석하지 못한 학부모로부터 자료 열람을 문의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변화는 사소하고 작으며 점진적으로 일어나야 하지만 누군가는 깨어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이 바로 교사이어야 한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으며 한국은 그런 변화의 선두에 서 있다. 아이들도 학부모들도 빠르게 변화에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교사가 교권을 확립하고 교육을 제대로 이끌기 위해서는 변화를 예견하고 선점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소통의 가치를 챙기고 누려야 할 때이다. 서클 상담이나 집단상담 등 소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창의적인 노하우를 펼쳐 보여야 할 것 같다. 그런 일은 빠를수록 좋다. 제대로 된 소통을 느끼게 된다면 아이들도 부모들도 교사를 다르게 보기 시작하지 않을까. 그날이 오늘이길 기대해 본다.
결국, 학교나 교실은 ‘함께’, ‘공동체’, ‘협력’, ‘성장과 배움’, ‘따뜻함’, ‘즐거움’ 등의 말들이 그 속에 퍼져 있어야 미래를 열 수 있고 꿈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말들은 갇혀 있거나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학교를 돌아보고 교실을 떠올리며 더 나은 교육과 관련된 말들이 살 수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래야 교실이 살고, 학교가 살고, 교육이 살 수 있을 것 같다. 교육자로서의 권리나 권위인 교권도 소통의 가치에 의미를 부여할 때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