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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Aug 13. 2024

너와의 생활

아침에 깨우지 않아도 콩콩콩 발소리와 함께 방문을 살며시 열고 내 품을 비집고 들어오는 너인데, 요즘엔 해가 늦는 탓인지 내가 먼저 깨우러 가는 일이 잦아졌다. 새벽에 내치고 잔 이불을 한두어번 덮어주면 아침에는 이불 안에 폭 쌓여서 잠들어 있다. 잠든 너의 얼굴은 맑고 또 맑아서 가만히 보고 있자면 눈가에 곧 눈물이 맺힐 것만 같아 티 한 점 없는 얼굴을 맨손으로 쓸어 깨운다. 인기척에 미리 잠에서 깼는지 손바닥을 얼굴에 마주 대기가 무섭게 가뿐하게 눈을 뜬다. “잘 잤어?” 나는 아침에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친절과 다정을 모아 인사한다. 아침 준비를 하러 부지런히 발걸음을 돌리면 이내 어깨에 와 닿는 말, “엄마, 가지마.” 어쩌면 나는 이 말을 들으려 아침을 서두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 일어나도 아침은 늘 분주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덕분에 어린이집 등원까지 시간이 좀 남아 여유를 부리고 있으면 눈치 빠른 너는 책을 읽어 달라 조른다. 다른 건 몰라도 책 읽어 달라는 이야기는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한 두 권 읽고 나면 매정하다 싶을 정도로 시간이 지나 있다. 아침밥 먹고 준비해 나가기에 빠듯한 시간이다. 아침은 대체로 누룽지나 주먹밥처럼 간단하지만 든든한 음식에 과일이나 계란을 더해서 낸다. 무엇을 주어도 기꺼이 맛있게 먹는 너는 가끔 아침밥을 건너 뛰려는 작전을 단번에 알아 채곤 묻는다.

“엄마, 밥은 안먹어?”



보통 끼니를 챙기는건 엄마의 대사인 것 같은데 가끔은 이런 네가 나보다 어른 같기도 하다. 밥 뿐이랴. 늘 깜빡깜빡하는 나를 대신해 챙겨갈 준비물을 항상 기억했다가 늦지 않게 알려주곤 한다. 이런 너를 나에게 점지해주신 고마운 삼신할머니까지 생각하다 보면 ‘이러다 늦겠네!’를 연발하며 애꿎은 너를 재촉하기 일쑤다. 나를 어르고 달래는 말을 너에게 대신 해서 나갈 채비를 마치고 나면 아침 인사 다음으로 중요한 작별의 시간이다. “오늘도 재밌게 놀아. 사랑해!”를 크게 외치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손가락으로 방정맞게 하트를 만들어 날린다.



사랑한다는 말은 내가 자랄 때 워낙 귀하게 들은 말이라 아낌없이 해주리라 마음먹은 것이고, 재밌게 놀라는 말은 아이의 하루가 신나고 즐거웠으면 하는 축복을 담은 말이다. 특별히 마음먹고 만든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굳어진 인사가 나는 꽤 마음에 든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친구가 아이와 헤어질 때 늘 계단에서 뛰지 마라, 넘어지지 말라는 당부의 말을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는 5년 동안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들마다 매일 듣는 말이 다르다는 것도 그 말들이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것도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 뒤로도 나는 여전히 같은 인사를 반복하고 있다.



아침은 늘 촌각을 다투는 중요한 행사를 치룬 것처럼 긴장되어 있어 네가 나가고 문이 닫히면 마음 한 켠이 사르르 녹는 해방감이 찾아온다. 하지만 여전히 너의 온기와 분주함이 남아있다. 흐트러진 집안을 정리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늘 내 시간을 갖는 쪽을 택한다. 너의 하루가 꽉 채워질 동안 나도 나의 시간을 가득 채우고 너를 만나러 가는 편이 좋으니까.



우리는 매일 만나고 헤어지지만 아침부터 저녁 무렵까지 하루를 보내고 만나는 너는 왠지 새로운 사람이 되어있는 것 같다. 나의 하루는 반복된 일상의 연속이지만 너의 하루는 매일 새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친구한테 지하철 그리는 방법을 배웠다는 이야기, 새로 접게 된 팽이 이야기, 좋아하는 간식이 나왔다는 이야기... 잠깐 헤어져 있는 시간은 네가 나에게 들려줄 이야기로 가득 차 있고 나는 다시 만난 해사한 얼굴의 네가 너무나도 반갑다.

가끔은 나도 너에게 내 이야기를 먼저 건넨다. 한 번은 같이 일하는 옆자리 동료를 대하는게 너무 힘들다는 고민을 털어 놓았더니, 대신 편지를 써서 괴롭히지 못하게 하겠다는 귀여운 해결책을 내놓았다. 이렇게 나이 다운 귀여움을 뽐내기도 하지만 가끔은 정말 현자와도 같은 말을 해서 진심으로 고민 상담을 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어린아이가 가진 영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인간은 자라면서 많은 것을 터득하는데 본질을 꿰뚫어 보는 그 능력은 왜 상실하게 될까.



아침에 비해 저녁 시간은 좀 더 여유가 있다. 내가 저녁을 짓는 동안 너는 내 등 뒤에서 어린이집에서부터 계획해 두었던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기를 하느라 분주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엄마”를 몇 차례나 불러 대는 탓에 “엄마 좀 그만불러!”하고 으름장을 놓고 다시 등을 돌리지만 한편으론 네가 나를 부르는 “엄마” 소리가 그리워질 날을 생각한다. 지금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고 나를 제일 사랑한다는 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을 쾅 닫아 버리거나 꾹 닫힌 네 방문을 여는 것이 망설여질 날이 오겠지.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라는 질문에 나는 내가 제일 좋다고 답을 했더랬다. 그 전까지는 늘 너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었는데 더이상 그게 아니라고 하자 충격을 받았다고 너는 진지하게 고백했다. 사람은 원래 자기 자신을 제일 사랑하고 아끼는 거라고 말을 더해 보았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지 여전히 뾰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질투의 한 장면을 보고 있자니 그저 웃음이 나서 달큰한 향이 나는 너의 이마에 뽀뽀 세례를 했다.



후다닥 지은 밥이라도 너와 머리를 맞대고 먹으면 밖에서 먹는 어떤 밥보다 맛이 좋다. 네가 한 그릇 깨끗이 비우고 수저를 놓지 않고 있으면 얼른 밥을 더 먹겠냐고 묻는다. 그러면 너는 “딱 한 숟가락만.”이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어릴 때부터 체중관리를 해야 한다고 식사량을 조절하는 부모들도 더러 있다지만 나는 늘 ‘많이 먹어라, 더 먹어라’ 한다. 아침부터 종알대며 분주히 움직이는데 좀 많이 먹으면 어떠냐는 생각이다.



샤워하는 시간을 제일 신나라하는 너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옷을 벗어 재낀다. 여름에 그을린 자국이 겨울까지 남아서 팬티가 가린 자리만 하이얀 엉덩이가 앙증맞다. 어린아이라면 으레 그런 줄 알았는데 네가 특별히 부드러운 머릿결과 피부결을 가졌다는 것을 다른 이들이 알려주어 알았다. 발가벗은 너의 몸은 무턱대고 아름답다. 나중에 크면 이런 네 몸의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과 더 친밀히 공유하겠지. 나는 그가 벌써 부러운데 너는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계속 깔깔대며 까분다.

기분이 한껏 좋아진 너를 어르고 달래어 샤워를 마치고 나면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는 시간은 너와 마찬가지로 나도 지루하지만 뽀송하게 마른 너의 머리카락을 정성스레 빗는 시간은 좀 고전적인 구석이 있으면서도 우아한 몸짓의 시간이다.



밤이 되면 또 한 번 헤어짐이 찾아온다. “잘 자. 내일 아침에 만나자.” 인사하고 안는다. 너는 내 품에 쏙 안겨 착 달라붙어 “엄마, 사랑해. 나 잘 때까지 자면 안 돼.”하고 약속을 받아내고는 헤어짐이 아쉬워 한달음에 갈 길을 몇 번이고 돌아본다. 나는 네 뒷모습을 끝까지 응시하며 너를 다시 만날 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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