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에서 요즘 FIRE족 특집 기획기사를 시리즈로 올리고 있는데 나는 사실 이 FIRE족이란게 잘 이해가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 많으면 회사 때려치고 하고 싶은걸 하며 노는 걸 꿈꾼다. FIRE족에 대한 선망도 바로 거기에 있다. 돈 있으면 이 더러운 직장 당장 그만둔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당장 일을 안해도 될 정도로 충분한 자산이 있다면 계속 직장에서 일을 하는게 더 낫다. 직장생활의 힘듦은 업무도 있지만 직장내 인간관계나 부당함을 견뎌야 하는데서 오는 것이 더 크다.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자산이면 여기서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확 줄어든다.
승진에 목을 매달지 않아도 되고 고과평가도 그냥저냥 하면 된다. 즉, 먹고 사는 문제에서 해방이 되면 직장생활이 취미가 되는 셈이다. 일이 주는 고통이 일이기 때문임을 감안하면 당장 은퇴해도 될 정도로 자산이 많은 상황이야말로 굳이 퇴사를 해야할 이유가 사라지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FIRE족입니다'라고 널리 알리며 그에 관한 책을 쓰고 유튜브를 하고 강연을 하러 돌아다니는 상황이 정말 FIRE족에 해당이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건 그냥 근무의 패턴과 방법이 변한 것 뿐 아닌가? FIRE족이 아니라 프리랜서가 된 것 뿐이다.
여기에 또 한가지 문제가 있으니 인간의 인정욕구다. 사람들은 각자 여러가지 방식으로 인정받길 원한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업의 결과로, 일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아웃풋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래서 직장이야말로 이 인정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할 수 있는 확실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인정 받을 수 있을까? 돈이 많은 건 그 개인에겐 좋은 일이다. 하지만 돈자랑은 사람들이 싫어한다. 그 돈을 자신에게 쓰며 자랑하는게 아닌 이상 대부분 싫어한다. 취미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취미의 깊이가 남들보다 훨씬 깊어야 한다. 물론 시간이야 많으니 시간을 들이면 나중에는 꽤 깊이있는 취미를 가지고 인정받을 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잘못하면 일이 되어버린다.
FIRE족 중에 투자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기에 FIRE족의 인정욕도 결국은 투자 부분에서 발휘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주식이 잘 오르고 성과가 좋을때는 이게 즐거운 취미가 되겠지. 하지만 계좌가 박살나고 깨질때도 과연 취미라 할 수 있을까. 하루 종일 들여다보면 그것도 결국 일이 된다. 전업투자자와 FIRE족은 완전히 다른 카테고리란 걸 생각하자.
이를 고려하다보면 스스로를 FIRE족이라 이야기하며 자신을 어필하는 것 자체가 인정욕의 충족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다니는 직장과 일이 없어지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당신을 설명할 때 명함 한장과 직업으로 설명하는 대신 오해받지 않게 길게 설명하는 것 또한 은근한 스트레스다.
큰 돈 벌고도 계속 직장에 다니면 인정욕의 충족과 명함, 그리고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이 있다. 자산의 목적이 안정적인 캐시플로우를 위한 것임을 감안하면 큰 자산을 벌어들였다고 월급이란 안정적인 캐시플로우+인정욕구를 채울 수단을 버리는게 손해라는 얘기다. 연봉 5천만원에 10년은 더 다닐수 있는 직장을 5천만원의 캐시플로우가 있는 자산으로 바꿔보면 약 4억원이다(이자율 4% 가정). FIRE족 할 정도면 이거의 10배 이상은 벌었겠지만 그렇다고 4억을 허공에 날리는 건 아깝지 않나?
2010년대 초중반에 퇴사열풍이 불면서 퇴사하고 여행가라는 사람들이 참 많이 등장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퇴사하고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며 여행을 하고 그걸 에세이로 올리고 강연을 하고 많은 사람의 부러움과 관심을 얻어 생활할 수 있었다. 그랬던 사람들은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지금의 FIRE족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이 또한 한때의 유행이다. 당장 조기은퇴해도 될 정도로 많은 돈을 번 것은 부러우나(이렇게 쓰긴 했으나 남이 돈 벌었다는 것에 별 생각이 없는 쪽이다) 내가 그 사람들이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이라 이해가 어려워서 쓰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