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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May 27. 2020

질문하는 독서

근육은 몸에만 있지 않습니다. 머리에도 생각하는 근육이 있습니다. 운동으로 몸의 근육을 자극해 단련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몸놀림이 빨라지는 것처럼, 머리의 생각하는 근육도 단련하면 생각하는 일이 더 쉬워집니다. 그럼 머리 근육은 어떤 운동으로 키울 수 있을까요? 사고하는 데 필요한 머리 근육은 질문을 받을 때 자극받아 튼튼해지고 커집니다.      


튼튼한 머리 근육의 이점은 이렇습니다. 책을 글자만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질문하면서 대화하며 읽기를 권하는 <질문하고 대화하는 하브루타 독서법>(양동일, 김정완)에는 책을 읽으며 질문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 다섯 가지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42~43쪽)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먼저, 질문은 정보 획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두 번째, 질문 통해 경청을 배웁니다. 다음으로 질문 속에서 비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인생 질문이 인생을 이끌 수 있지요. 뉴턴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뉴턴은 궁금했습니다. 스스로 질문했습니다. “왜 달은 공중에 매달려 있고 사과는 땅에 떨어지는 걸까?” 궁금한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이 곧 뉴턴의 삶이 되어 만유인력의 법칙 발견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질문도 있습니다. 개선의 물꼬를 트는 질문이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으며 질문해야 하는 다섯 번째 이유는 사고와 생각이 성숙해지는 이점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점이 많은데도, 책을 읽으면서 책 내용에 관해 질문하고 대화하지 못하는 가장 큰 까닭은 어디 있을까요? 우선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르는 이유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아이들과 책을 읽는 엄마들의 모습을 보면 간혹 아이들이 물어오는 질문도 엄마가 소위 ‘컷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엄마의 책욕심에서 비롯된 행동입니다. 한 권이라도 더 읽으려는 열정으로 책을 읽어 재끼는 엄마 마음의 표현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아이들과 읽고 싶은 책이 많은 저는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압니다. 사실 애들 질문이 항상 그럴싸하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우뇌형 아이들의 경우 정말 뜬금없는 질문을 해올 때면, 그건 상관없는 이야기니 책의 내용에 집중하자며 정리하고 싶은 경우도 많습니다. 책을 통해 가능한 다양한 지식을 전달하려는 엄마에게는 곁길로 빠지는 함정인 셈이거든요.     


저희집에서는 둘째가 그렇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통팔달의 연상력과 비논리적으로 보이는 직관적 사고력으로 무장한 둘째입니다. 논리적 흐름의 전개를 중시하는 형과는 서로 결을 달리하지요. 형제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읽고 있는 책의 한 페이지에서 동생이 내용 흐름과 딱히 관련 없는 그림에 관한 질문을 계속하며 이런저런 느낌을 덧붙이자 좌뇌형 인간인 형이 그럽니다. 

“야, 좀 (다음 장으로) 넘어가자.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단 말이야!”     

저희집 첫째처럼, 엄마들에게는 이야기가, 내용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빨리 정보를 전달하려고 하죠. 그러다 보니 책장과 책장 사이 질문이 들어갈 여백이 없습니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천천히 읽기로 마음먹어야, 책에서 나오는 내용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풍부한 이야기가 가능해집니다. 이 점이 제게도 가장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저 또한 좌뇌형으로 정보를 인식하는 게 편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더 궁금하다 보니 일단 읽어나가는 유형의 독서를 합니다. 저 또한 다독 욕심을 부리는 엄마이다 보니 책 읽는 시간은 언제나 조급합니다. 그래서 세운 규칙이 있습니다. 잠자리에서 읽는 책의 수를 줄였습니다. 읽는 책의 숫자가 많을 때는 아무래도 빨리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는 시간이 너무 뒤로 밀리지 않아야 하니, 마감 시간의 압박도 상당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책을 읽는데 목표를 두지 않고 책의 내용에 관해 이야기 나누기 위해 아이들이 한 권씩 책을 고르도록 했습니다. 엄마가 골라 읽어주는 짧은 영어책을 더하면 총 3권 분량입니다. 때로 잠자리에 든 시간이 너무 늦을 때는 그나마 아이들 책을 한 권으로 줄여 두 권을 읽고 잠자리에 듭니다. 목표로 하는 책의 권수가 줄어드니 마음이 훨씬 여유로웠습니다. 그림을 보는 아이들의 예리한 관찰력에 놀라기도 하고, 둘째의 농담 섞인 질문에 웃음을 빵 터트리기도 하며 독서시간을 여유롭게 채웁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질문하기가 훨씬 수월했습니다. 엄마의 목소리에 여유가 묻어나자 아이들의 질문도 늘었습니다. 아이들이 더 많이 생각하자 할 이야기가 더 많아졌습니다. 아이들의 생각을 들으면 아이들의 마음이 더 많이 보여 행복했습니다.   

   

초등학교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이 질문하고 놀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수업자료 개발에 힘쓰고 있는 이진숙 선생님은 자신의 책, <하브루타 질문놀이>에서 질문은 다음과 같이 나눕니다. 사실과 의미에 관한 내용 하브루타 질문, 삶에 적용하는 내용의 적용 하브루타 질문, 비교하고 상상하는 심화 하브루타 질문, 생각과 느낌 그리고 평가를 묻는 메타 하브루타 질문이 그것입니다.      

내용 질문/적용 질문/심화 질문/메타 질문     

앞에서 살펴본 블룸의 인지단계에 따른 질문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적용하기 편한 단계별 질문을 선택해서 연습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위 책에 제시된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습니까?”, “00은 무슨 뜻입니까?” 등은 내용 하브루타에 해당하는 질문입니다. “만약 너라면 어떻게 할까?”라고 물으면 삶에 적용하는 질문입니다.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그건 비교하라는 심화 하브루타 질문입니다. 마지막으로 “00의 행동은 옳은가?”, “어떤 삶이 행복한가?”라고 물으면 생각이나 느낌 평가를 묻는 메타 하브루타 질문에 해당합니다.      


부모가 질문하는 내용에 대해 전문가일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질문의 답을 알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독서 하면서 질문하고 대화하는 활동의 가장 큰 이점이기도 합니다. 우선 책이라는 소재가 있어서 질문도출이 쉽습니다. 책의 내용에 관한 모든 질문이 가능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질문하는 내용에 대한 선지식 유무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책의 내용을 소재로, 읽으면서 아이들과 함께 정보를 습득할 수 있으니까요. 만약 추가 정보가 필요하다면, 아이와 함께 더 찾아보면 됩니다. 부모는 다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한 정보를 찾는 방법을 조금 더 아는 사람이라고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면 충분합니다. 질문하는 사람이 모른다고 하면 좋은 점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더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거든요. 능동적으로 사고하는 게 눈에 보일 지경입니다. 저희 아이들은 제가 모른다고 했을 때 더 활발히 활동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엄마, 내가 도와줄까?”, “내가 찾아줄게.”

아이들이 진심을 담아 엄마에게 도움을 주려는 모습에 감동하는 때가 참 많습니다.     

 

사실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이나 정보를 부모가 챙겨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요즈음은 초등 3학년만 되도 학교 숙제 봐주기가 어렵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더 중요하죠. 거기서부터는 아이가 알아서 가야 합니다. 스스로 필요한 정보를 찾아 판단하는 겁니다. 낚시하는 방법을 알려줘야 스스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것처럼, 부모는 아이들과 대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각자 필요한 정보를 찾고 목적에 따라 처리해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특정한 정보나 지식을 많이 알려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일입니다.      


돌문어 낚시를 해봤습니다. 여수 앞바다에서 30분 정도 배 타고 나갔지요. 문어는 다른 물고기들처럼 미끼를 무는 것이 아니라 바다 밑바닥에 닿은 낚싯바늘 끝에 걸린 미끼를 다리로 감싸 안는다고 했습니다. 그 느낌을 손끝 감각으로 느껴 줄을 올리면 잡을 수 있습니다. 문어가 낚싯줄을 화끈하게 물어 당겨주면 초보 낚시꾼으로서는 참 감사하겠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낚시에 관한 지식이라고는 도시어부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본 게 다였던 저로서는, 온몸의 신경을 낚싯대 부여잡은 손끝에 집중하고는, 느껴지는 미세한 차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얼마나 씨름했을까요. 보이지 않는 바닷속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뭉근한 묵직함. 그리고 줄을 감자 올라오는 돌문어. 그 희열이란! 이래서 낚시하는 거구나 싶더군요.      


초보 낚시꾼은 온몸의 피가 머리로 쏟아질 지경으로 초집중하며 바다를 쬐려 보았던 하루를 기억합니다. 초보란, 그런 것이지요. 낚시가 몸에 익을 때까지 힘들지만 문어를 잡을 때의 기쁨으로 계속할 수 있습니다. 배움과 성장의 기쁨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대한 크라켄처럼 느껴졌던 돌문어를 잡았을 때와 같은 기쁨을 우리는 사고할 때도 얻습니다. 생각하는 근육이 생기기까지는 힘이 들겠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사고하는 기쁨을 잘 알기에 질문의 망망대해로 출항을 떠나는 아이들을 격려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질문을 건넵니다. 

“애들아, 네 생각은 어떠니?”     

손안의 휴대폰 덕분에 말초적이며 무의식적인, 지극히 수동적인 유희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입니다. 질문으로 아이들을 격려해야 합니다. 능동적으로 깊이 있게 생각하도록 질문으로 의식을 깨워야 합니다. 그래야 자극에 반응하는 인간이 아니라 사고하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또 질문합니다.      

“그래서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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