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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 Dec 27. 2023

마돈나가 되지 못한 러시아인

내 성공은 내가 정의하는 것

쇼케이스가 끝났다. 쇼케이스는 학교의 다른 친구들과 선생님들, 기숙사 친구들, 초등학생용 뮤지컬 과정을 들으러 온 아이들의 참석으로 소소하지만 소중하게 이루어졌다.


내 솔로곡은 피날레 합창 직전 마지막 순서였다. 선곡은 10여년 전 나에게 충격을 줬던 <레 미제라블>의 'On My Own'. 오래 혼자 부르던 노래를 무대 위에서 불렀다. 먼 길을 돌아 내 자리를 찾아온 것처럼.


물론 아쉬움도 많았다. 앞 순서가 끝날 때쯤 옆문으로 들어와 객석 중간에서 등장하기로 했는데, 리허설과 달리 본공연 때는 옆문이 잠겨 있어서 급히 뒷문으로 달려가 뛰어서 등장했다. 차오른 숨으로 노래를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우린 어쨌든 뉴욕 한복판에서 뮤지컬 무대를 해본 것 아니겠냐며, 이 경험의 소중함에 집중하자는 말을 나눴다. 어차피 아쉬운 것에 집중하기엔 너무 아까운 시간이었다.


쇼케이스와 함께 종강도 찾아왔다. 학교와 과정의 이름이 적힌 수료증을 받으니, 정말로 이 시간이 끝났다는 게 실감났다.


같이 수업을 들은 친구들은 먼저 고향으로 돌아갔다. 직장에서 일 년치 휴가를 한 달에 몰아 쓰고 와서, 주말이 지나 바로 출근을 해야 한다고 했다. (빠듯한 일정도, 휴가가 한 달이나 된다는 것도 놀라웠다.) 우린 꼭 연락을 이어가기로 약속했다.


귀국 비행기까지 열흘 정도 여유가 있었던 나는 기숙사에서 짐을 빼고 에어비앤비로 옮겨 못다한 관광을 마저 시작했다. 말이 관광이지 이때만 해도 어떻게든 뉴욕에 남을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 열흘 사이, 뉴욕에 살고 계신 삼촌의 지인 A님을 만났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뮤지컬을 하러 미국에 왔다는 내 이력을 흥미로워하시기에 내가 살아온 얘기를 해드렸다. A님은 다소 파격적인 나의 행보가 조금 걱정이 되었던지, 나에게 러시아 출신 지인 얘기를 해주었다.


그 러시아인은 삼십여 년 전 마돈나처럼 되길 꿈꾸며 뉴욕으로 왔다고 했다. ‘꿈꾸는 도시 뉴욕에서 꿈을 좇았지만 결국 마돈나가 되지 못했고, 지금은 평범한 직장을 다니며 주말마다 클럽 공연 하며 지낸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하며 A님은 나에게 염려와 격려가 함께 담긴 표정으로 조언을 건넸다.


"꿈은 크게 꾸는 게 좋지. 근데, 모두가 성공하는 건 아닌 건 알지?"


그의 말에 악의는 없었다. 오히려 나를 걱정하는 호의가 담겨 있었으리라 믿는다. 그러니 습관대로 '그럼요'라고 대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내 안에서는 묘한 반발심이 일었다. 내가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러시아인의 삶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진단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도 굳이 대답했다.


"글쎄요, 성공을 뭐라고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학교에서 들은 과정 중에 보이스오버(더빙) 수업이 있었다. 시간표를 보곤 뮤지컬 과정에 보이스오버 수업이 왜 있나 싶었는데, 수업을 들으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선생님 말에 따르면, 보이스오버는 한정적인 뮤지컬 무대 외에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필요한 아티스트들에게 훌륭한 경제적 대안이었다. 뉴욕에서 <위키드>의 엘파바가 될 수 있는 건 한 번에 많아야 두세 명이지만, 애니메이션이나 오디오북의 더빙, 광고 내레이션에 대한 수요는 언제나 그보다 훨씬 많으니까. 장기간 방영되는 광고 내레이션을 맡을 경우 그 기간 동안 계속해서 수입이 들어오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옵션이 된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시간과 돈.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하루 24시간 주어지지만 돈은 그렇지 않고, 가진 돈의 차이는 다시 가진 시간의 차이를 낳는다. 사실은 시장으로 나가는 순간 시간에도 쌓아 온 경력이나 가진 기술에 따라 전혀 다른 가격이 매겨진다. 그 가격의 차이는 다시 가진 돈의 차이가 된다.


게다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면 초기에는 내 자원이 든다. 뭔가를 배우거나 만들려면 돈이 들고, 투자를 받는다면 투자자를 설득하는 데에, ‘무자본 창업’을 한다면 방법을 배우거나 실천을 하는 데에 시간이 든다.


시작점에서부터 돈이 너무 많아서 하고 싶은 걸 제약 없이 할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누구나 자신의 물리적 존재에 스스로 책임지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 순서가 꼭, 모든 준비를 갖춘 다음에 완벽한 기회를 만나는 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건 아니다. 사실 그런 경우가 훨씬 적을 것이다. 가진 걸 모두 내려놓고 새로운 길에 뛰어들어 처음부터 준비를 시작하는 건 아주 큰 리스크를 감수하는 일이니까.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과 현재 이른 지점에 비추어 최적의 투자결정을 하는 것도 각자의 몫이다. 인생에 하나의 바퀴가 먼저 굴러가고 있다면 거기에 살짝 기대서 새로운 바퀴를 조금씩 굴리기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할 수 있는 한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을 하며, 그 선택들이 모여 원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한 걸음씩을 걷는 것이다.




마돈나가 되고 싶어 뉴욕에 갔다가 '그냥 회사를 다니며 주말 저녁에 클럽 공연을 하는' 인생이 있는 반면, 마돈나가 되고 싶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그냥 회사를 다니는 인생도 있는 법이다. 뭐가 옳거나 틀린 건 아니다. 각자의 이유와 선택은 모두 존중받아 마땅하다.


사실 마돈나로 태어나지 않은 그 러시아인에게는 '마돈나가 되는 것'이 성공이 될 수 없었다. 그 러시아인의 선택지는 애초부터 '마돈나가 되냐 vs 안 되냐'가 아니라, '마돈나가 되고 싶어 뉴욕에 갔다가 회사를 다니며 주말 저녁에 클럽 공연을 하며 사냐 vs 마돈나가 되고 싶지만 뉴욕에 안 가냐'였다. 물론 그의 성공은 전자도 후자도 될 수 있다. 판가름은 그 자신의 성공의 정의에 달렸다.


지금까지의 삶에서 내가 얻은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최고로 똑똑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을 스스로 정의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는 똑똑함이 대체 무슨 쓸모인가.


세상은 이렇게 저렇게 하면 성공해서 행복해질 거라고 말하고 그 당근을 좇아 한 방향으로 몰려가기를 끊임없이 종용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부지런히 자신의 성공을 정의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성공을 정의하려면 자신을 잘 알아야 하고, 자기가 정의한 성공을 성취하려면 자신과 세상을 모두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행복을 얻기가 치열한 것 아닐까.




마돈나처럼 될 꿈을 품고 젊은 날 뉴욕에 왔었던, 지금은 회사를 다니면서 주말 저녁마다 클럽에서 공연을 하며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그 러시아인이, '성공'했는지 안 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마돈나처럼 될 꿈을 품고 러시아에서 뉴욕으로 건너온 그 젊었던 러시아인의 결단과 용기와 행동력을 존경한다.


그는 그 젊은 날 행한 그의 결단 덕분에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노래하며 사는 삶을 계속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쪽 끝으로 가 보았기에 자신의 삶의 최적의 균형이 회사를 다니며 주말 저녁에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 삶임을 발견해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지금, 도전과 성취와 오랜 투쟁 끝에 지금, 자신의 꿈과 현실을 동시에 살아내는 특권을 누리게 된 걸지도 모른다. 그 러시아인은 마돈나가 되지는 않았어도, 그 러시아인의 매일매일은 굉장히 행복할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르니, 나는 어쨌거나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이름 모를 그 러시아인이 부럽고 존경스럽다. 자신의 열정을 좇아 인생을 걸고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는 용기와, 그 뒤에 열린 인생의 다음 장을 살아가고 있는 성실함을 가진 그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뉴욕에 올 때 난 어쩌면 가진 걸 통째로 걸고 인생의 경로를 바꾸는 모험을 했다. 그러나 갑자기 브로드웨이 스타가 된다든가 하는 기적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고 삶은 계속 이어져야 했다.


나는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부와 명예를 얻는 것이라면, 내가 뮤지컬 배우로 '성공'할 가능성은 아주 희박해 보였다(자기객관화를 중시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나처럼 성취지향적인 사람이, 노력에 비례하는 성취가 보장되지 않는 시장에서, 성공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로 오랜 세월을 견뎌야 한다면 그건 너무 불행할 것 같았다.


그러니 연구를 시작할 때였다. 나에게 성공이란 무엇일지. 모두가 좋다고 하는 것 말고, 내 하루하루를 채웠을 때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지. 어떤 바퀴를 얼마나 굴리며, 내 일상의 방향을 어느 쪽으로 얼마나 빠르게 기울여 걸어갈지. 어떤 매일을 선택해야 걷는 과정이 즐거울지.


그리고 지금까지 거쳐온 일들과, 그 사이 내가 나와 세상에 대해 알게 된 것들이, 힌트가 되어 주리라 믿었다.

NYFA 지하 공연장의 백스테이지. 검은 커튼 옆으로 돌아 작은 통로를 지나면 무대로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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