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영 Dec 23. 2023

나를 믿을 근거 말고, 나를 믿는 근육

네가 너 자체로 충분하다고 믿지 않아서 그래

꿈 같은 시간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뮤지컬 수업이 이어졌다. 보컬, 퍼포먼스, 연기, 재즈댄스, 발레, 모의 오디션. 수업 중 고개를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창밖으로 허드슨강이 바로 내다보였다. 학교 바로 옆 부두를 너머 저 멀리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었다.


5주 동안 10편의 뮤지컬을 봤다. 브로드웨이 뮤지컬들은 온라인 추첨을 통해 저렴한 가격에 표를 살 기회를 준다. 난 뉴욕에 있는 기간 동안 거의 매일, 거의 모든 뮤지컬 추첨에 응모했다. 당첨률도 생각보다 높아서, 아예 추첨이 없거나 마음이 급해 정가에 본 두세 편을 제외하곤 모두 추첨을 통해 봤다.


내 목소리에 대한 자신감도 갖게 됐다. "넌 이 음역대에서 특히 공명이 좋아. 알고 있었어? 방금 완벽했어. 많은 가수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인데 말야. 조금만 연습하면 그 위 음과도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을 거야."


보컬 페다고지(교육학 학위)까지 갖고 있다는 보컬 선생님은 각자의 신체조건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려면 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절묘한 방법으로 알려주곤 했다. 모든 수업에서 매번 뭔가를 얻었다.




행복했다. 2주차까지는. 그러나 절반이 지난 3주차에 접어들었을 때부터 이제 이 과정이 후반부에 들어섰다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초조함이었다.


뉴욕행을 준비할 때 그 다음에 대한 계획은 없었다. 일단 가서 돌아오지 않을 방법을 찾으리라고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3주가 지나가도록 뾰족한 수는 찾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갔다.


학교의 국제학생본부에 상담을 요청했다. 갖고 있는 학생 비자로 내가 미국에 계속 남아있을 수 있는 합법적 방법은 60일 안에 새로운 과정에 등록하는 것뿐이었다. 갑자기 새로운 과정을 시작하거나 변호사를 고용하기엔 금전 부담이 너무 컸다.


그 와중에 연기를 전공하는 룸메이트 멜은 학교에서 학사과정을 위한 '재능 기반 장학금(talent-based scholarship)'을 제안받았다고 했다. 진심으로 기뻐하며 축하해줬지만, 같은 기간에 저 아이는 뭔가를 증명했구나,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했나 보다, 하는 생각에 더 큰 초조함도 함께 밀려왔다.


게다가 쇼케이스 솔로곡으로 나에게 배정된 건 본 적도 없는 뮤지컬 <Waitress>의 'When He Sees Me'라는 박자도 빠르고 가사도 많은 곡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노래의 가사가 죽었다 깨어나도 외워지지 않을 기세였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잔뜩 긴장해 있던 몸까지 방어태세를 풀었는지, 결국 감기몸살이 들었다. 목소리가 절반 정도밖에 안 나오기 시작했다.




시간은 매정하게 흘러 종강과 쇼케이스를 코앞에 둔 4주차 중반이 됐다. 마지막 오디션 테크닉 수업에서는 모의 오디션이 진행됐다. 한 명씩 교실에 들어가 선생님들 앞에서 자신의 퍼포먼스를 한 후 나와서 대기하다가, 모두의 순서가 끝나면 다같이 들어가 피드백을 들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불필요한 움직임(meaningless gesture)'을 너무 많이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피드백을 해줬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 굳이 필요하지 않은 손짓이나 몸짓이 들어가면 오히려 감상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러고 있었던 줄도 몰랐기에 그 피드백을 듣고 난 꽤 놀랐다. 수업이 끝날 때쯤, 선생님에게 다가가 "제가 왜 그러는 걸까요?"라고 질문했다. 선생님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대답을 내놓았다.


네가 너 자체로 충분하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지.


참으로 이상한 대답이었다. 그 이상한 대답에, 나는 다시 한 번 눈물이 터지는 걸 느꼈다. 이번에는 첫날보다 더 걷잡을 수 없었다. 나의 반응에 선생님이 더 당황했다. 왜 그러냐, 자기가 실수했냐고 묻는 선생님에게 그런 게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어 보였지만, 선생님은 학과장과 면담을 해보자며 나를 뮤지컬 학과장실로 데려갔다.




나 자체로 충분하다는 믿음. 그건 어떻게 만드는 걸까? 생각해보면 나는 나를 믿어본 적이 별로 없다.


나에 대한 믿음 부족은 열심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더 꼼꼼히 공부하지 않으면 내 실력이 부족하니까, 더 많이 배려하지 않으면 내 됨됨이가 부족하니까. 그래서 좋은 '성과'들을 얻기도 했다. 좋은 성적, 좋은 평판.


그러나 나에 대한 믿음은 열심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애씀에는 끝이 없었고, 채운 곳보다 비어있는 곳에 집중하는 태도는 늘 안달복달 종종거리고 있는 마음의 상태를 가져왔다. 부족을 가리기 위해 불안 속에 애쓰는 시간들은 결과에 상관없이 과정의 즐거움을 앗아가곤 했다.


모의 오디션 때도, 모든 에너지를 앞으로 쏘아보내듯 노래해야 하는 넘버임에도 이런저런 손짓을 사용하느라 오히려 힘을 분산시켰던 건, 나의 존재감과 노래만으로는 충분한 에너지를 표현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던 듯했다.


쇼케이스까지 며칠 안 남았는데 해결할 길 없는 문제를 만난 느낌이었다. 학과장님은 나에게 학생상담을 추천했다. 원래 단기학생에게는 상담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지만, 선생님들은 지금의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며 상담선생님을 연결해 줬다.




상담선생님은 나에게 지금 솔로곡이 너무 큰 스트레스가 되고 있는 것 같다며 잘 아는 노래로 곡을 바꿀 것을 추천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포기한다고? 나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접근이었다.


그러나 상담선생님은 꽤 단호했다. "넌 일부러 가장 험한 산을 오르려는 습관이 있어. 하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네가 즐길 수 있는 걸 해야 해. 이대로라면 노래와 너 사이의 관계를 망치게 될 거야."


가장 험한 산을 오르려는 습관. 그 말이 귀를 때렸다. 하기 싫은 공부부터 하는 것, 하기 싫은 일부터 해내는 것, 난 그걸 책임감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 산을 넘어야 그게 무기로 나에게 장착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스트레스를 이유로 피하는 것은 선택지에 없었다. (솔직히 어느 정도는 마시멜로 이야기를 탓하고 싶다.)


그러나 그런 고집이 내가 사랑하는 행위와의 관계를 망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열심에 수반되는 고통이 지나치게 크면 끝나고 나서 쳐다보기조차 싫어질 수도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아는데도 그랬다.


노래와의 관계를 망칠 순 없었다. 하고 싶은 게 없을 때 날 살린 일이 노래였으니까. 즐기며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 대한 자기객관화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러려면 역시, 즐기며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나는 나로서 충분하다는 믿음이 필요했다.


(장학금으로 말하자면, 뮤지컬과와 연기과의 장학금 수혜자 선정 방식이 전혀 달랐다. 뮤지컬과에서는 자기가 먼저 장학금 신청을 하고 오디션을 봐야 했다. 반면 연기과는 수업에서의 모습을 토대로 교수진이 결정하고 제안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뭘 증명하지 못한 문제는 애초에 아니었던 것이다.)




글을 쓸 때, 예상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는 게 보통이다. 연애편지라면 연인을, 교수님께 드리는 메일이라면 교수님을, 보고서라면 상사를 염두에 두고 충분해질 때까지 퇴고를 할 것이다. 예상 독자의 시선에 기대어 충분함의 기준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글을 보내고 싶은 게 그저 열린 세상이라면, 충분함의 기준은 나 자신에게밖에 없다.


노래도 마찬가지였다. 교회에서 노래를 할 때 나는 목적에 맞는 노래를 하면 됐다. 그러나 그저 나의 노래를 하기 위해 무대에 서는 일은 관객 앞에 나를 무방비 상태로 노출시키는 것이고, 관객은 그런 식으로 예상할 수 없는 불특정다수일 것이었다. 이걸 하고자 한다면, 예상 관객의 시선에 기대어 충분함을 얻으려는 시도는 무용할 것이다.


나에게 충분함의 감각을 줄 수 있는 시선은 나 자신의 것, 스스로를 향한 믿음뿐이었다. 너무 환해 객석조차 볼 수 없는 조명 아래서는 오로지 내가 나를 믿고 서야 했다.


열심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나에 대한 믿음은 어떻게 만드는 걸까? 어떤 근거로도 내가 충분해질 수 없다면, 애초에 나 자신이 그 근거들보다 큰 존재일 가능성을 고려해보아야 했다. 열심히 만든 근거 덕분에 충분한 게 아니라 그냥 나라서 충분하다고 믿어야 했다.


그러니 믿음은 근거가 아니라 근육에서 나오는 듯했다. 나를 믿는 근육. 쓰지 않으면 퇴화하지만, 많이 쓰면 발달해서 연습이 쌓일수록 잘하게 되는.


그래서 나는 쇼케이스 곡을 바꾸고, 생소한 노래 대신 나에 대한 믿음을 연습하기로 했다.


수업을 했던 NYFA 교실 중 하나. 이 교실에서 오디션 테크닉 수업도 진행했다.


이전 06화 '정답'이 아닌 '나의 답'을 내놓는다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