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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 애 May 24. 2023

09 어린이병원(2)

도장깨기

 불과 몇시간 전, 이비인후과 진료실의 너무나 사무적인 태도를 맛보았기에, 진료실에는 큰 기대 없이 들어갔다. 그러나 담당선생님은 너무나 친절하셨고, 우리 아이를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엄마 아빠의 마음까지도 잘 만져주셨다. 이분이야 말로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오는 선생님 (배우 조정석 님 같은) 같았다. 


 아이를 천천히 그리고 세밀히 진료해주셨다. 다운증후군은 굉장히 많은 질병에 취약하다. 발달장애, 당뇨, 백혈병, 중이염, 심장질환 등 크고 작은 질병에 취약하다. 원인조차 알 수 없으며, 그저 유전자 21번 염색체 이상이란 것만 밝혀졌을 뿐이다. 노산이라고 하는 것도, 추측하는 것일 뿐 절대적인 원인이라 볼 수 없다. 


 선생님께서는 다운증후군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시고 나서, 종합적인 검사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익히 그 전부터 들은 이야기였다. 다운증후군 부모들 사이에서 흔히 하는 말들이 있다.


 "도장깨기"


 왠만한 진료과들은 다 거쳐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다. 일반적으로 하나를 깨고 다음으로 넘어가면서 레벨을 올린다거나, 자신의 우위를 증명하는 도장깨기가 아니라, 결과를 지켜보고, 치료가 필요한 부분들은 치료 과정을 거치며, 아이들이 세상속에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목표를 가지게 된다. 이미 우리 아이는 이비인후과라는 첫 도장에 들어섰던 상황이었고, 재 정밀검진을 통해 그 다음 과정을 밟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음 도장을 위해 체혈실로 향했다. 성인과는 달리 어린아이들은 체혈할 곳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허벅지 안쪽이나, 팔목 등을 통해 체혈을 한다. 체혈실에 함께 들어갔음에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긴 바늘을 찔러야 하는 상황이기에, 혈관이 다치지 않도록 우는 아이가 움직이지 않도록 강력하게 붙잡아야 할 뿐이었다. 그저 바늘이 들어가는 모습만 생각날 뿐, 그 후로는 온통 아이에게 시선을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체혈을 하기 위해선 아이들도 금식시간이 필요했다. 태어난지 이제 한달 무렵 된 아이가 먹어야 할 시간에 먹지도 못하고, 낯선곳에서 바늘의 고통을 겪었으니 얼마나 화가 나고 짜증이 났을까... 계속 우는 아이가 엄마에게 안기니, 그마저도 잠시... 엄마의 품에서 금새 평정심을 찾는다. 엄마의 힘이 이런건가 싶다.

 아내는 우는 아이를 달래고 분유를 먹였다.


 회사를 다녀야 하는 나로써는 병원을 아내만큼 자주가진 못한다. 아내는 엄마라는 이유로, 그 아이를 안고 지금도 매주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주기적으로 여전히 도장 깨기 위해 주기적인 검사와 처방을 진행하고 있다. 


 첫 아이가 돌이 지나자마자 맞벌이 하는 부모로 인해 어린이집에 바로 입소했다. 그러다보니 감기를 매번 달고 살았다. 매주 토요일이면, 병원가는게 당연한 일이 되었다. 어느날 아이와 함께 병원에 갔는데, 아이가 너무 자연스럽게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고, 자기가 놀만한 것들을 익숙하게 찾아서 놀고, 선생님들도 아이를 보고 이름부르며 인사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너무 미안했고 가슴이 아팠었다.


 지금은 막내가 더 큰 병원으로 더 자주 다녀온다. 언젠가는 모든 도장을 다 깨고, 더 건강한 모습으로 병원이 아닌 병원밖을 더 익숙하게 뛰어나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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