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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 애 Jun 22. 2023

19 아빠의 자격

난 나쁜 아빠다

 시간 여행과 관련된 여러 가지 영화와 드라마가 많이 있다. 최근에는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을 정도로, 시간 관련 드라마는 거의 대부분 소위 대박을 치는 듯하다. 그만큼 대부분 사람들은 과거에 대한 회상을 통해 좋은 기억도 있지만, 돌이키고 싶고, 바꾸고 싶은 것들이 있음이 분명하다.


 나 역시 그런 상상을 줄곧 하곤 한다. 과거로 돌아가면 어떨까? 지금 이 상태로 돌아간다면 코인을 좀 사놔야겠다. S 주식을 좀 사놔야 되겠다. 등등. 말도 안 되는 상상으로 머릿속을 채우게 된다. 그런데 그때마다 과거로의 회귀에 대한 상상을 순간 접을 때가 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난 막내아들을 여전히 가지려 할까?"

 이 질문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는 내 모습을 본다. 여전히 흔쾌히 ok라고 답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원망스럽다.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 때에는 절대, 전혀 들지 않았던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막내 아이가 태어난 그 주 금요일 저녁, 교회 기도회. 모든 것이 어색했고 불편했다. 여전히 뒷자리에 앉아 내게 주어진 미디어팀 일을 하고 있을 때에는 숨고 싶었다. 나와 우리 가족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죄송함이 몰려왔다. 게다가 호흡은 불편하기까지 했으니, 더더욱이 어려웠다.


 그리고, 기도시간이 되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 하나뿐이었다. 무릎 꿇고 머리를 숙여 소리 내어 주님을 찾는 일이었다. 부르짖었다. 괴성을 질렀다. 처음에는 그 마저도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되었다. 계속된 고성과 부르짖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기도의 방향이 막내 아이의 건강함이 아니었다. 내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막내 아이가 아닌 아내와 두 딸들에게 향했다.

 살려주세요. 정상 판정 나오게 해 주세요. 내 목숨과 바꾸시길 원하신다면 꼭 가져가시고, 정상 나오게 해 주세요. 아내와 두 딸들에게 이 고통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살려주세요.


 다운증후군 소식을 듣고 나서 한동안.. 꽤 오랫동안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안는 것도 어색했다. 정확히는 아이를 바라보고 어색하지 않은 웃음을 짓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아이와 함께 있는 것도 어색했었다.


 누군가가 막내 아이를 향해 복덩이라 했다. 그 말이 내게 와닿을 때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이를 바라보며 축복의 말을 할 때면,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에게 하는 축복처럼 여겨지지 않고 오히려 그저 소박한 바람으로만 느껴졌다. 현실성이 거의 없는 뜬구름 잡는 것처럼..


 막내 아이를 낳기 전에, 출근길에, 가끔씩 보던 다운증후군 청년이 있었다. 막내 아이를 가지기 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그 청년이, 막내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부터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존재가 되기도 했다. 인터넷 카페에도 처음에는 줄곧 들어가다가, 어느 순간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리고 관련된 영상도 제대로 쳐다보기 어려웠다. 그 특징적인 얼굴을 볼 때면 더 마음이 무너졌다. 그 청년을 마주할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었다. 그러니, 막내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나 바라볼 수 있었을까 싶다.


 첫째 때도, 둘째 때도 아기 시절에 (목을 가누기 전)는 제대로 안는 것이 무서워서 그저 바라만 보았었다. 막내 아이 때도 그 핑계를 삼아 안는 것을 멀리했다.


 그랬다. 난 아빠의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 분명하다.

 아내와 첫째, 둘째 아이를 진정으로 위한 마음으로 시작된 기도였다면, 오히려 더 건강한 방법들을 모색했을 것이다. 그리고 더 막내 아이를 가까이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두 아이들에게 막내 동생이 갖고 있는 것들을 서서히 알아 가도록 건강하게 준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하나도 없었다.


 이전 글에도 밝혔듯, 처음에 난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보다, 관찰하기에 급급했다.

 다운증후군 확정 판정 이후에는 제대로 얼굴조차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아픈 내 마음에만 집중했다.

 아내도 그런 내 모습을 은근히 눈치챘는지, 내게 막내 아이에 대한 케어를 부탁하지 않았었다. 시간이 흘러 조금씩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비로소 하나씩 돌보기 시작했다.


 일 년이 넘게 흐른 지금. 내 마음은 편해졌다.라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내가 잘 안다. 그리고 내가 얼마만큼 나쁜 아빠인지도 잘 알고 있기에 괴롭기도 하다.

 그러나, 적어도, 아이를 부정하거나 불편해하거나 하는 마음은 거의 사라졌다고 얘기할 수 있다.

 

 얼마 전 출근길에 커피숍에 들러 커피를 잘 포장해서 종이 쇼핑백에 담아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엔 다운증후군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내 손에 든 쇼핑백을 유심히 바라봤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특성상 호기심이 많음을 알기에, 바라봤던 것 같다. 조용히 나도 그 청년을 티 나지 않게 유심히 바라봤다. 복지 시설에 가는 듯했다.


 알 수 없는 대견한 마음과 함께 막내 아이에 대해 생각이 났다. 우리 아이도 언젠가 시간이 흘러 저렇게 혼자 버스를 타고 움직일 날이 오길 바랐다.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인지적인 부분이 떨어지고, 한계가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생활하는 모든 것들이 반복 훈련이 필요하다. 다운복지관 선생님께서 다운증후군의 특징에 대해 설명해 주실 때, 말씀해 주셨던 것이 있다.

 "보고 그대로 모방하는 건 잘하는데, 변형은 잘 못해요"


 수학공식 자체는 외워놓고는, 그 공식을 시험문제의 특성마다 변형하여 대입시키는 걸 힘들어하는 것과 같은 셈이다. 그래서 바리스타 같은 단순히 레시피에 맞게 커피를 만드는 기술은 반복 훈련을 통해 가능하지만, 사무실에 앉아 문서를 작성하는 등의 일반적인 업무는 어렵다는 것이다.


 버스 정류장이란 곳에 가서 버스를 타는 것, 목적지에 맞는 버스 번호를 보고 타는 것, 타고 내릴 때 버스 카드를 찍는 것, 목적지 근처에 있는 정류장에 내리는 것, 그리고 목적지까지 걷는 모든 것들이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아이들은 하나의 훈련을 하고, 변형을 해서 적용을 시키는 방식이라면, 다운증후군 아이들은 하나하나 개별 훈련이라는 것이다. 하나를 알면 열을 척해야지~라는 말은 고사하고 하나를 알면 하나라도 잘해보자라는 훈련조차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어찌 되었든, 이 모든 것들이 내재된 상태에서, 다운증후군의 어린아이들부터 청년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들이 내게는 처음에 한 없이 불편함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처음에 다운증후군의 소식을 접했을 때, 주변에 알릴 때 죄송하다고 했었다. 죄송할 일이 아닌데, 지레짐작으로 내게 짐이 된 만큼 주변 사람들에게 짐을 지어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막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짐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왔던 것이다. 숨겨야 하는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그나마도 가까운 가족들이 괜찮다고 했다면 그나마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그런 얘기를 듣지 못했다.


 오히려 시간이 흘러, 가족모임 있기 전에, 혹시나 당황할까 싶어 미리 전화로 친척께 전화 걸어 얘기했을 때, 처음으로

 "마음고생 심했겠네.."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기까지 일 년의 시간이 걸렸고,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그 마저도 내 중심이었음을 본다.


 난 나쁜 아빠다. 하지만 막내 아이는 내게 단 한 번도 아빠인 나를 거부하지 않았다.

 (물론, 작은 누나의 머리 끄덩이를 잡거나, 뭔가를 던지는 등으로 인해 내게 혼났을 때 빼곤, 그마저도 잠시이긴 하다)

 다운증후군을 다운천사라고 일컫기도 한다. 사교성이 참 좋고, 사람들에게 한 없이 웃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도, 조금만 장난치거나 안아 올리면 눈은 반달이 되어 말 그대로 푼수 웃음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걱정의 99%가 쓸데없는 걱정이라는데, 알면서도 유독 막내 아이를 향한 마음이 쑥 하고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얼마만큼 나쁜 아빠인지 다시 보게 된다.


 다운증후군 행사 때 다른 아빠의 말이 생각난다 한 없이 울고 있는 아이의 엄마를 향해 걱정하지 말자 하면서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우리가 제대로 있으면 되지" 라며 말 그대로 아빠의 웃음으로 아이를 향해 방긋 웃던 그 모습.

 나는 그 아이의 개월수 때 절대 하지 않았던 그 모습이었다.


 아이를 갖게 되면 앞으로 함께 할 것들을 꿈꾸곤 한다. 첫째 아이를 키울 땐, 함께 손잡고 걸을 날을 꿈꿨다. 둘째 아이가 나오고 나선, 아이들과 함께 데이트할 날을 꿈꾸기도 했다. 막내 아이의 성별을 듣고 나선, 아빠와 아들로서 함께 운동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소망을 품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다운증후군 얘기를 듣고 나선 모든 소망이 사라진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다운증후군이라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운동신경이 떨어질 수 있어도, 다른 운동들을 알 수 있는데, 심지어, 어느 유투버는 엄청난 도전이긴 하나, 또 국내에 유일하고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보디빌딩도 하고 있는데, 정작 아이를 향해 고정관념을 두고 한계를 만들어 생각하는 건 나 자신임을 발견케 된다.


 난 나쁜 아빠가 맞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게 천사를 보내주셨다보다. 상쇠 하기 위해서.. 악한 내 마음을 선함으로 바꾸기 위해서, 사랑 없는 내게 진짜 사랑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

 

 가야 할 길도, 해야 할 것도 참 많지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기꺼이 받아들이며 앞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 나쁨이 선함으로 바꾸어가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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