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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나 Nov 16. 2023

너를 사랑하는 방법

서로의 신발을 신어 본다는 것

 세 아이와 제주도에 내려가 3년 정도 제주살이를 한때가 있다. 그 기간 우리는 주말부부생활을 했다.

제주에 내려간 지 두 번째 해가 거의 끝나가던 겨울 어느 주말이었다. 남편이 세 아이를 다 데리고 나간 덕분에 대낮에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 침대에서 뒹굴고 있었다. 주중에 혼자 세 아이를 돌본 후 누리는 꿀맛 같은 휴식 시간이었다. 창문의 커튼을 걷자 햇살이 방안으로 길게 들어왔다. 창밖을 보니 하늘은 푸르게 맑았지만 바람이 세게 불고 있었다. 악명높은 제주도의 겨울바람이었다. 이 바람에 혼자 아이들을 잘 데리고 다니고 있을지 걱정이 되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한 번 더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전화도 안 받고 뭐 하고 있는 거야. 정말.’ 침대에서 일어나 커피를 내렸다. 이번에는 카톡을 보냈다. 「바람 부는데 뭐해?」 「어디 갔어?」 「애들이랑 괜찮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남편은 무얼 하는지 답이 없었다. 커피가 점점 줄어들며 나는 이제 화가 나기 시작했다. 커피를 거의 다 마시고 컵을 주방에 가져 놓으러 가는데 거실벽에 걸린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눈에 들어 발걸음을 멈추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콧김을 씩씩 내뿜고 있는 내가 순간 낯설게 느껴졌다.

'그저 잠시 연락이 안 되는 것뿐인데… 애 셋 신경을 쓰느라 못 봤을 수도 있는데… 덕분에 난 좀 전까지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일어났는데… 나는 겨우 이 정도의 일로 이렇게 쉽게 그에게 화가 난단 말인가? 나는 지금껏 그에게 이렇게 화를 내왔던 걸까?'

생각과 동시에 한 장면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일어난 적 없는 가상의 장면이었다. 그 속에서 그가 나를 보며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했다.

"우리 그만하자. 이혼하자."


결혼 후 세 아이를 낳고 기르며 속을 알 수 없는 착하기만 한 남편에게 나는 많이 지쳐버렸다. 결혼 10년 차 되었을 무렵 나는 진지하게 이혼을 고려했다. 이혼의 차선책으로 제주살이를 택했고 아이 셋을 데리고 혼자 제주도에 내려오게 된 것이었다.


이제 그만하자는 말, 이혼하자는 말은 언제나 내 입에서만 나오던 말이었다. 족히 열 번은 내 입으로 그에게 말했던 것 같다. 그를 앞에 두고, 그의 눈을 보면서 나는 그렇게 모진 말들을 했다. 남편은 단 한 번도 내 탓을 하지 않았다. 모진 말도 이기적인 말도 한번 하지 않고 속이 많이 상하면 눈물을 참지 못한 나머지 눈물을 그렁그렁 머금은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착한 그가 내게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상상속의 장면이었지만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자리에 얼어붙어서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리가.

 

 그날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그를 한 번도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때까지 나는 그의 신발을 신어 본 적이 없었다. 우리 둘 다 그랬다. 살아내느라 힘에 겨워서 서로가 어떤 신발을 신고 있는지 진심으로 마음을 기울여 보지 못했다. 내 신발은 언제나 축축했다. 그래서 발이 자주 아팠다. 그 사실이 나를 지치게 할 때마다 나는 그에게 뽀송한 신발을 신고 싶다고 화를 냈고 악다구니를 썼다. 그때 그는 그가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 신발의 무게만으로 버거웠기에 그는 내 축축한 신발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다 너 때문이라고 소리치는 내게 뽀송한 신발을 줄 수도, 무거운 자기 신발을 신어 보라고 할 수도 없어서 그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주말 부부생활을 끝내고 제주에서 돌아와 남편 직장 근처에 산 지 3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우린 또 많은 산을 넘었고, 나는 두어 번 더 그에게 그만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몇 번 더 아무 말도 없이 내 모진 말을 참았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나는 더는 그에게 뽀송한 신발을 내놓으라고 악다구니를 쓰지는 않았다. 대신 가끔 많이 속상할 땐 방구석에서 이불을 뒤집어서 쓰고 자버린다. 자다가 깨면 조용히 그의 신발을 신어 본다. 지켜야 할 것이 많아 딱딱하고 무거운 그의 신발을. 그의 신발에 발을 넣고 가만히 있으면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기 위해 속으로 삼켰을 눈물에 발이 축축해지는 것 같다. 그러면 고마운 마음과 불쌍한 마음이 같이 밀려온다. 다음 날 아침이면 별말 없이 따뜻한 국을 끓여 아침을 차린다. 그도 말없이 국에 밥을 말아 아침을 먹고 출근한다. "어젯밤 너의 신발을 신어 보았더니 슬프더라."하는 말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따뜻한 아침밥. 출근길 가벼운 포옹. 오늘도 고생하라는 인사. 그거면 족하다. 그의 신발은 이제 그의 발에 길이 들어 그를 덜 힘들게 하고, 내 신발은 햇빛을 많이 쐬어 사뭇 보송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여전하게 서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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