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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나 Jan 16. 2024

반가운 단골손님

흐드러지게 폈던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며 꽃비가 되어 내렸다. 덕분에 가게 앞이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꽃잎이 길 위를 수놓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개업 후 처음 맞은 벚꽃 시즌은 매상을 올려주는 기특한 이벤트 이기도 했지만, 하염없이 쌓이는 꽃잎들은 틈날 때마다 쓸어야 하는 일거리 이기도 했다. 애증 어린 시선으로 꽃비가 날리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피곤해 보이는 희진이 카페에 들어섰다.

“언니~ 나 맨날 먹던 초콜릿케이크 한 조각 얼른 줘~”

 화장기 없는 민낯에 퀭한 눈, 그 아래 짙게 자리 잡은 눈그늘을 가리려 두꺼운 잠자리 안경. 그녀는 항상 앉던 창가 자리로 갔다.

“너 얼굴이 말이 아니다. 힘들었나 봐.”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케이크를 꺼내 접시에 담았다. 동시에 계산대에 올려져 있는 거울 속에 내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피곤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 나서인지 오늘따라 내 피부가 한결 더 뽀얗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초콜릿케이크와 진하게 내린 커피 한 잔을 희진에게 가져다주었다.

“말도 마. 요즘같이 일하는 편집자가 완전 정상이 아니야. 똑같은 그림을 조금씩 다르게 몇 번을 그렸는지 몰라.”

 희진은 북디자인을 했는데 가끔 작업한 책이 출판되면 쑥스러운 듯 내게 가져와 보여주곤 했다. 아직 일감이 많지는 않아서 다른 디자인 부업들도 같이 하는 것 같았다. 일이 힘든지 가게를 찾을 땐 항상 피곤한 모습이었다.


 희진을 처음 만난 건 가게를 개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손님이 오길 기다리며 창밖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초점이 없는 퀭한 눈을 하고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올려 묶은 손님이 불쑥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좀 전에도 이 앞을 지나갔던 젊은 여자였다.  

“초콜릿케이크 한 조각이랑 아이스커피요.”

한껏 미소를 띠고 인사하는 나와 달리 그녀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선은 창밖을 향해 있었지만, 눈동자 안에 담긴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예쁜 접시에 담긴 초콜릿케이크와 방금 내린 아이스커피를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 먼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그녀는 손에 들린 금빛 포크로 초콜릿케이크의 귀퉁이를 부드럽게 베어내 입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이내 눈을 감고 미소를 지었다. 달달한 초콜릿이 그녀의 혈관 속에 흐르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몇 번 더 같은 동작으로 초콜릿케이크를 입에 넣고 미소를 짓던 그녀는 계산대 쪽을 바라보았다. 가게에 손님이라곤 그녀밖에 없었다. 우린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내게 미소를 보내 주었다.

“초콜릿케이크가 너무 맛있네요. 전 희진이라고 해요. 저 여기 단골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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