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판단을 중단하기
최근 집 앞에서 야간 러닝을 하기 시작했다.
운동을 극도로 싫어하던 내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자의적으로 운동을 하게 된 것이다.
운동을 하게 된 이유는 단 하나,
단순하게 생각하기 위해서다.
원체 생각이 많은 스타일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보면 결국 내가 잘못했던 일들이 내게로 우수수 쏟아지곤 한다.
후회와 자책의 반복 속에 사는 셈이다.
부정적인 생각의 회로를 끊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부정적인 생각을 멈출 수 있죠?
상담 선생님께 여쭤봤었다.
답은 매우 간단했다.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 겁니다. 앞에 있는 물컵을 보세요. 물컵에 립스틱 자국이 묻어 있어서 이건 더러운 컵인 것 같다,라고 생각하면 그건 주관적인 판단입니다. 그러지 말고 객관적인 사실만 보는 거예요. 이 컵은 가로 폭이 10cm구나. 손잡이가 하나구나. 이렇게요. 부정, 긍정도 결국 판단에서 비롯되는 거거든요.
그 뒤에 덧붙이신 말이 참 재미있었다.
평론가들은 그게 업이잖아요. 뭐든 평가하고 분석하고 판단하고… 그러다 보니 객관적으로 보는 게 잘 안 돼요.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평론가들 모여있잖아요? 어우 골치 아파. 평론가만 아니면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물론 선생님은 내가 평론가라는 사실을 모르고 하신 말씀이지만 ㅎㅎ 찔리긴 했다. 일을 할 때만, 내 분야에서만, 작품에 한정해서만 예리하게 분석하고 판단하면 되는데 생활의 모든 방면에서 그러고 있으니 말이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난 이후로 부정적인 생각에 갇히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 오래 고민했다.
가치 판단을 중단하려면 조금은 단순하게 생각해야 한다.
단순하다는 말을 미성숙과 결부시켜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단순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뜻이다.
억측하지 않고 보이는 대로만 보는 것,
숨겨진 무엇을 추측하며 불안을 느끼지 않는 것.
고차원적인 생각도 좋지만, 타인을 볼 때는 심플하게 보고, 인간관계나 생활 방면은 쉽게 쉽게 넘어가는 편이 좋다.
아무도 모를 나의 작은 실수를 물고 늘어지는 일도 지양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상상력과 분석력을 활용하지 말고 한 발 뒤로 물러서서 가볍게.
하지만 무슨 수로? 나는 삼십 년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인데 말이다. 평론가가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도 결국 그러한 삶의 태도를 지속해오며 비평가의 면모를 다지게 된 것 아니겠는가.
정말 답답한 심정이었다. 애써 처방받은 약을 앞에 두고도 먹지 못하는 느낌.
그러다 그런 생각을 해냈다.
주변 사람들 중에 긍정적이고 심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따라해 보자!
나의 남자 친구, 직장인 모임에서 만난 S 언니, 오랜 나의 친구 B
이들은 항상 웃고,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며 남이든 자기 자신이든 재단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너는 그렇구나, 나는 이렇구나, 하고 수용한다.
복잡하게 꼬아 생각하지 않는다.
주변의 무엇이든 그럴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라고 품어준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하루의 많은 시간을 운동에 할애하고 있었다.
내가 찾은 해답이 바로 운동이다.
나는 곧바로 테니스 레슨을 등록했고 집 앞 한강을 뛰기 시작했다.
처음 달려보자니 매우 어색했다.
어떻게 뛰는지도 모르겠고 준비운동도 하지 않아 발목이 아프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찌 볼까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그래도 막상 달리기 시작하자 참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인데도 날이 좋구나, 무엇보다 밤의 한강은 참 아름답구나…
게다가 달리는 순간에는 내가 바람을 만들어 낼 수가 있구나.
처음엔 그런 기분 좋은 감각이 나를 깨웠다면,
이후에 나는 어떻게 하면 잘 달릴 수 있을지를 생각했고
달리다 보니 눈앞에 있는 저기까지!라는 목표에 몰입하게 되었다.
더불어 달릴 때 들리는 나의 숨소리를 들으며 호흡을 조절해야 한다고 되뇌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어떻게 평가하는지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나의 숨소리는 일정한지, 나의 보폭은 괜찮은지, 나는 어디까지 달릴 수 있는지, 나의 팔은 어떤 각도를 이루는지에만 몰입하게 되었다.
어떠한 평가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길을 달렸다.
달리면 그곳이 가까워졌고 내게 선선한 바람이 불어 들었다. 가치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나는 숱한 자책의 늪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러닝을 시작한 지 3주 정도 된 듯하다. 나는 아직도 틈만 나면 한강으로 향한다. 여전히 잘 달리지 못하지만, 조금씩 기록이 늘고 있다.
요즘은 달리다 마주친 왜가리들을 관찰하기도 한다.
대신 아무것도 평가하지 않는다.
그저, 너는 그렇게 걷는구나, 하고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