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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웅 Aug 09. 2023

계속해주세요

내가 쓰는 글에는 독자가 많지 않다. 문학도 위기라고 하는 마당에, 문학에 관해 이야기하는 평론이 널리 읽힐 리 만무하다. 게다가 문학평론은 글이 대상으로 삼는 문학 작품뿐 아니라 문학 이론이나 철학까지 망라하여 다루기에, 장벽이 높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전공자가 아니고서는 잘 읽지 않는다.


그래도 웹진이나 신문에 발표한 글에는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었다는 것이 신기해서 종종 들여다보고는 하는데, 그중에는 익명인데도 작성자가 누군지 훤히 보이는 댓글이 있다. 세세한 부분까지 짚어가며 이러이러한 점이 좋았다고, 이 부분은 이렇게도 읽힌다고, 마음을 담아 정성스레 적어준 글. 일면식도 없을 댓글 작성자에게 감동하며 읽다가 마지막 구절에 이르러서는 결국 피식 웃게 된다. “좋은 글을 쓰시는 작가님, 밥은 잘 챙겨 드시는지요?” 글을 쓰는 나의 안위까지 걱정하는, 그런 오지랖 넓은 이의 댓글을 읽으면 나는 소리 내어 웃고 만다. 그제야 아이디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역시나 익숙한, 영어와 숫자의 조합이다. 아빠가 쓰는 메일 주소다. 종종 아이디까지 바꿔가면서 달지만, 결국 다 들키고 만다. 이건 아빠 동호회 아이디네, 이건 회사 아이디고.


평론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 줌으로 진행하는 신인 평론가 대담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평론 분야는 사람들에게 생소하고, 나는 인지도도 없던 터라, 여러모로 걱정됐다. 행사가 끝나갈 무렵, 질문 시간이 주어지자 예상대로 정적이 흘렀다. 조금은 민망한 시간을 견디고 있었는데 누군가 채팅창에 질문을 남겨주었다. 내가 쓴 모든 글을 알고 있는 독자였다. 놀라면서도 반가워서 여러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드렸다. 그는 앞으로 어떤 글이 쓰고 싶으냐고 묻고는, 자신이 제일 먼저 읽어볼 테니 꼭 써달라고 부탁했다. 어딘가 이상해서 아이디를 들여다봤다. 열심히 숨긴 티가 나지만, 알아볼 수는 있는, 아빠의 아이디였다.


성해나의 소설 「김일성이 죽던 해」('빛을 걷으면 빛', 문학동네, 2022)는 소설가인 ‘해원’이 엄마 ‘순이’가 두고 간 일기장을 읽고 조금이나마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다. 1994년, 공장에서 일하던 스물일곱 살 순이는 동료 ‘상희’의 제안으로 ‘문덕’과 함께 노동자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상희는 문덕과 순이가 쓴 어설픈 글에 늘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써주세요.”라는 답글을 남긴다. 이러한 응원에 힘입어, 노동의 부당함을 토로하는 글을 써내려가던 이들은, 반장에게 걸려 반동분자로 내몰리고 이후 뿔뿔이 흩어진다. 그러나 한 사람에게 무한한 지지를 받은 경험만큼은 따스한 포옹처럼 오래 남는다. 이후 순이는 자신이 받았던 격려의 말을 딸에게 돌려준다. 혹평들 사이에 한 줄기 빛처럼 솟은 “계속 써주세요”라는 엄마의 댓글은, 해원이 소설 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 단단한 힘이 되어준다.


나는 지금까지 꽤 많은 글을 썼다. 그중에는 잘 쓴 글도 있고, 내가 봐도 형편없는 글도 있다. 소수가 읽는 글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 그럼에도, 기존의 문학성에 맞서고, 소외된 이들을 배제하지 않는 문학을 요청하며, 부당하게 평가절하 되기도 하는 작품을 섬세히 살펴주기 위해, 시간과 정성을 쏟아서 쓴다. 물론 지칠 때도 있다. 공들여 써봤자 아무도 관심 없는 글, 몇 푼 되지도 않는 글이라며 자조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내 글의 가치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주는 말이나, 나의 글이 얼마나 많은 독자에게 읽혔는지 알려주는 수량적 지표가 아니다. 그저, 계속 써 달라는 따뜻한 요청이다. 의미 있다고 믿는 소중한 일이라면 계속하라고, 그 일을 지속하는 당신을 응원하겠노라고 언제든 수고로이 찾아와 박수를 보내주는 한 사람이 있어 준다면, 나는 이 일을 계속해나갈 수 있다. 이제 내가 받은 말을 돌려주고 싶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어떤 때는 무의미한 일이라고 폄하 당한다고 해도, 당신에게 그 일이 중요하다면, 계속해주세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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