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량 Apr 11. 2021

직장은 <그 목적>이 있다

직장은 <목적>이 있다.
그 목적에 부합되는 사람은 키우고,
그렇지 않으면 키우지 않는다.

키워지는 것은 좋은 것일까?

그렇지도 않다. 
그건 <길들여지는 것>이다.

또한, <키워지지 않는다는 것>은
패배감과 열등감을 맛보게 한다.

그래서, 오로지 직장에 기대어 살지 말아야 한다.
직장은 <수단> 일뿐,
<목적>은 늘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대부분 직장생활을 합니다. 

누구가 만들어 놓은 수익 시스템에서 부가가치를 더 높이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직장은 <목적>이 있습니다. 직장은, 그 목적에 부합되는 사람을 키웁니다. 또한 그렇지 못한 사람은 키우지 않습니다.


한때, 키워지는 사람을 선망했습니다. 

인정받고 승진을 하고 앞서가는 듯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키워지지 않는 사람>을 늦은 저녁 창고 뒤편에서 마주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어둡고 쓸쓸해 보였습니다. 스스로 패배자라고 인식하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당연한 감정이었습니다. 직장에서 키워져야 하는 사람이 되는 것, 점차 <삶의 목적처럼> 원하는 것이 되어갑니다.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되어 갑니다.

직장에서 <키워지는 사람>이 된다는 것,

사실 그 시스템에 <길들여지는 것>입니다.


끝이 보이는 언덕 끝을 향하며 온몸을 더 불살라야 합니다. 관리자가 되고, 임원에 가까이 갈수록 그렇게 길들여집니다. <나>는 없고 직책이 <내가> 됩니다.


반면, 길들여지지 않는 사람은 열등감과 패배감을 맛봅니다. 끝없는 감정소비를 하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두 부류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모두 직장에서 <목적>을 찾기에 그렇습니다. 두 부류 모두 언젠가 책상을 정리하고, 회사 현관문을 열고 떠나는 날, 그곳에서 "나를 위한 <목적>은 무엇이었는가"를 씁쓸하게 되짚어 볼 것입니다.


그리고 당장 그 후에 직면한 <직장 밖의 자신, 시스템 밖의 자신>의 위치, 경쟁력, 생산성은 다음날부터 세상 속에서, 적나라하게 마주합니다. 평가받게 됩니다.


그러나, 직장 안에서 이러한 것을 느끼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곳 안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그 시스템을 당연한 듯 그것에 맞춰 살아갑니다. <더 잘 맞추기 위해 경쟁>합니다. 그 경쟁 속에서 더 매몰되어 갑니다. 밖에서 아무런 유용이 없는 것들을 대단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당면한 현실이 되어 점차 <삶 자체>로 번져갑니다.


그래서 다들 쉽지 않아 합니다.

쉽지않은 여건에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늘 목적을 <자신>에게 두어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실마리를 풀었습니다.


직장에서 쌓인 수년간의 경험을, 

<그 밖에서> 가치를 가공해 봅니다. 그 가치는 대단한 것도 아닌 늘 익숙하고 능숙했던 것입니다. <그 밖에서> 생산해 내는 가치는 <자신의 것이란> 체감이 옵니다.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과정입니다. 결과에 집착할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고, 변경하고, 기획합니다. 당장 대단한 성과가 나오지 않다라도 그렇게 하게 되면, 이제 직장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이 "어떻게 자신의 가치로 가공할 것인가"를 모색하게 됩니다.


즉, 생각의 틀이 점점 바꿔갑니다. 직장 안에서 종결되어야 할 것들도, 자신의 영역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세상 누군가가 필요한 것으로 변형하는 상상을 합니다.


그것이 기획입니다. 그 속에서 작은 START-UP이 생기기도 하며, 당장 인터넷 플랫폼에 노출시켜 상품으로 만들어 보아도 됩니다. 이러한 작은 과정이 거듭될수록 점차 직장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의 직장을 운영>하게 됩니다. 현재 직장과 협업을 하고, 그 노하우는 고스란히 자신의 경험과 사업의 과정으로 연계됩니다.


대단하게 시작할 필요 없습니다. 각자가 회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과 경험과 업무를, 누군가의 니즈를 해소시켜 주는 것을 찾아 노출시켜 주면 그만입니다. 돈을 받을 필요도 없고 그렇게 세상에 노출시키다 보면, 수요가 증폭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영역을 찾으면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스스로 능동적이 되며, 직장에 매몰되지 않고, 직장 그리고 <또 하나의 밧줄>을 만들어가게 됩니다. 직장이라는 하나의 밧줄에 매달리지 않는 것 자체로, 생각은 더 여유로워지고 자존감이 자라나게 됩니다.

직장의 승진, 평판, 관리 시스템에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더 능동적으로 업무를 진행합니다. 그 <일 자체가 자신의 것>이라는 인식이 담겨있기에 그렇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연계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계속 <선순환>됩니다. 업무도 잘하는 사람이 되어 갑니다. 승진도 양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오히려 좋은 평판으로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집니다. 원치 않던 승진이 덤으로 옵니다.


이것은 제가 경험했던 일입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삶 자체에 대한 결정권이 스스로 주어집니다.



이전 05화 부서 산행은 연장근무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