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처음 읽었을 때 들었던 의문이 있다. 주인공 3인방의 기숙사는 왜 하필 세상 쓸모없어 보이는 '용기'가 덕목인 그리핀도르일까. 용기보다는 야망, 선량함, 명석함 이런 것들이 더 세상사는 데 필요하고 도움되지 않을까.
그리고 요즘의 나를 본다. 그 실체도 없고 쓸모도 없어 보였던 용기 한 줌이 없어서 한발짝을 내딛지 못하는 나를. 그 회사가 너무 거대해 보여서, 또 내가 너무 부족해 보여서, 또 떨어질까 봐. 온갖 안될 이유들을 만들어 내며 레주메에 완벽을 기한다는 핑계까지 곁들여 입사지원을 차일피일 미루고 취준기간을 속절없이 늘리는 나를.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리라고 한다. 부정적으로 추측하고 기대를 낮춰서 자기 자신을 보호하도록, 그렇게 위험을 피하고 안전을 지키도록 설계되어 있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유한한 인생에서 용기를 내지 않으면 결국 두고두고 미련이 남고 후회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딱 1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재수해볼 걸'
'그 때 용기내서 연락해볼 걸'
'늦기 전에 사랑한다고 더 자주 말할 걸'
'그 때 퇴사할 걸'
'남들 눈치에 휘둘리지 말고 내가 하고 싶었던 거 해보고 살 걸'
우리 모두가 마주치는 셀 수도 없이 다양한 종류의 '그 때 그럴 걸'.
조앤 롤링 세계관 속에서 해리가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수많은 모험을 겪고 역경을 이겨내며 성장하는, 우리가 사랑하는 해리 포터는 없었을 것이다.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 톰이 늦기 전에 용기를 냈더라면, 톰과 썸머의 결말은 달랐을 것이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조제와 츠네오가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그들의 이야기는 시작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저건 그냥 작가가 만들어 낸 상상 속 이야기이고 주인공들의 이야기이지 않냐고?
우리 모두는 어떤 책이나 영화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우리의 인생이라는 작품 속의 주인공이다. 주인공의 삶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설령 망하더라도 주인공이 일단 용기를 내야 이야기가 전개되고 다음 씬으로 넘어가서,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 내고 무언가를 변화시킬수 있다. 용기가 나지 않아서 오랫동안 무언가를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런 지금의 내 모습이 영 아쉽다면 이제는 용기를 내어 실행하는 게 어떨까. 용기가 가져다 줄 장면의 전환은 적어도 지금의 내 모습은 벗어나게 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