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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ul 11. 2024

엉뚱한 것을 연결해야 창의적인 글이 된다

동성동본이면 아무리 사랑해도 결혼을 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1997년 7월 헌법재판소가 동성혼을 금지한 민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사실상 동거생활을 하더라도 혼인신고를 못해 애태우던 동성동본 연인들이 꽤 많았다. 근친혼을 금지하는 이유로 가족개념을 파괴한다는 것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가까운 친족은 유전 정보가 유사해 여러 가지 유전병을 일으키는 열성 유전자가 중첩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근친혼으로 주걱턱이 된 합스부르크 왕가


근친혼의 위험은 글쓰기 원리에도 적용된다. 근친혼으로 낳은 자녀들에게 여러 유전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자기의 경험이나 생각 한 가지를 붙들고 쓴 글은 왜소하고 유약할 가능성이 높다.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글 대신 단순하고 뻔한 글을 쓰기 쉽다.


근친혼의 위험은 글쓰기 원리에도 적용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순간 평소 신경 신호를 주고받지 않던,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뇌의 영역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현상이 벌어지더라는 겁니다.

창의성은… 뇌 전체를 두루 사용해야 만들어지는 능력이라는 겁니다.

정재승 <열두 발자국> 중


독창적인 글을 쓰고 싶다면 최소한 다른 글감 두세 개를 교배시키는 게 좋다. 이왕이면 서로 멀고 엉뚱한 글감을 연결할수록 창의적인 글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멀리 떨어져 있는 뇌의 영역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반짝일 때 탄생하기 때문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글감을 연결해 글을 써나갈 때, 평소 사용하지 않던 뇌 영역이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엉뚱한 것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사유가 깊어지고, 뇌의 여러 영역을 동시에 사용하기에 예기치 못했던 재미있고 창의적인 글이 나온다. 


멀고 엉뚱한 글감을 연결할수록 창의적인 글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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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집 앞을 지나다 작고 귀여운 다육이들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는데, 꽃집 청년이 나를 불러 세웠다.

“이 장미 향이 너무 좋아요. 한 송이 드리고 싶은데.”

꽃을 받아 들고 돌아온 날 집안을 뒤졌지만, 꽃병으로 쓸 만한 병이 없었다. 한참 뒤에 하얀 플라스틱 병 하나를 발견했다. 그 병을 보는 순간 악몽이 떠올라 잠시 인상을 썼다. 몇 달 전 대장 내시경을 했는데, 그때 ‘액괴(액체 괴물)’라고도 불리는 하제 복용을 위해 썼던 병이다. ‘표시선까지 채우고 복용하세요’라는 무시무시한 문장과 250ml, 500ml라고 눈금이 그어진 투박한 병은 아름다운 꽃과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어 보였다. 다른 병을 찾을 수 없어 할 수 없이 꽃을 그 병에 꽂았다. 대장내시경 하제 복용을 위해 병원에서 준 일회용 플라스틱 통과 장미꽃. 평소 절대 만날 수 없었던 이들이 서로 만났다. 마치 우주 저 편에 있는 별들이 서로 마주친 듯이, 예기치 못한 만남과 연결에서 번쩍 하며 빛이 들어왔다. 플라스틱 병과 하얀 꽃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 덕분에 대장내시경의 악몽도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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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꽃병에 꽂으면 심심한 글이 되지만, 꽃을 '액괴' 병에 꽂으면 재미있는 글이 될 수 있다. 일상에서 엉뚱한 것들을 만나게 하고, 그걸 글로 써 보자.


일상에서 엉뚱한 것들을 만나게 하고, 그걸 글로 써 보자.


사전이나 다양한 책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눈을 감고 한 단어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눈을 뜨고 단어를 확인해 적어 놓는다. 다른 페이지를 열어 다시 한번 반복한다. 두세 가지 단어를 연결해 한 편의 글을 써 본다. 제비 뽑기를 활용해도 좋다. 중요한 건 내 머리에서 연상되는 뻔한 소재들을 연결하는 게 아니라, 의외의 연결과 조합을 찾는 것이다.


뻔한 소재들을 연결하는 게 아니라, 의외의 연결과 조합을 찾는 것


예를 들어, 세탁기와 다크초콜릿의 조합이 선택되었다면, 두 단어를 교묘하게 연결해 한 편의 글을 써 본다. 세탁기라는 단어에서 여행이 떠올랐다. 여행을 갈 때마다 짐을 줄이기 위해 항상 세탁기가 있는 숙소를 고르곤 했다. 세탁기가 있다고 해서 고른 숙소에서도 낭패를 볼 때가 있었다. 세탁기가 고장 나 마지막 탈수가 되지 않은 적도 있었고, 세탁기가 집 안에 있지 않아 번거롭게 빨래를 들고나가야 할 때도 있었다. 세탁기가 있지만 사용 불가능한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화려한 사진 뒤에 숨겨진 여행의 그림자, 곧 고생의 요소가 사실은 다크초콜릿에서 쓴맛을 느끼게 하는 카카오 성분 같다. 카카오 함량이 50% 이상은 되어야 달콤함과 쌉싸름한 쓴맛이 조화되어 다크초콜릿의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여행도 설탕처럼 안락하고 편안함만 추구하자면 집에서 쉬는 게 낫지 뭣하러 여행을 떠나겠는가.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했던 '세탁기'와 '다크초콜릿'을 간극을 메우려고 생각을 시작하자, 여행에 관한 글 한 편을 멋지게 쓸 수 있었다.


'세탁기'와 '다크초콜릿'을 간극을 메우려고 생각을 한다


창의적이고 기발한 글을 쓰고 싶다면, 최대한 멀리 있어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것들을 연결해 보자. 먼 길을 돌아가 만난 친구가 반갑듯, 낯선 것들을 사유로 연결할 때 글 쓰는 기쁨도 배가될 것이다.


낯선 것들을 사유로 연결할 때 글 쓰는 기쁨도 배가될 것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소설미학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강연 신청 및 상위 1% 독서 커뮤니티 무료입장, 1:1 글쓰기 코칭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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