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박 글쓰기의 힘
작가는 회사나 사무실로 출근할 필요도 없고, 정해진 출퇴근 시간도 없다. 쓰고 싶은 시간과 쓰고 싶은 장소에서 쓰면 된다. 그야말로 자유다. 자유가 작가라는 직업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글쓰기의 가장 큰 적이 되기도 한다. '오늘은 꼭 글을 써야지' 결심하고 하루를 시작했는데 이 일 저 일 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가, 할 수 없이 다음날로 미룬 적이 있는가. 어떤 종류의 글을 쓰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한 여성이 있다. 오늘 하루 동안 할 일이라곤 엽서 한 장 보내는 일뿐이다. 엽서 한 장 보내는 일은 간단한 일이지만, 그녀에게는 하루가 온전히 주어졌다. 그녀는 엽서를 찾는 데 한 시간, 안경을 찾는 데 30분, 엽서를 쓰는 데 한 시간 반을 할애했다. 그 후 엽서를 부치는 데는 얼마나 걸렸을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파킨슨의 법칙 (Parkinson's Law: The Pursuit of Progress)>에 등장하는 사례다. 과장한 면이 없지 않지만,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아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글자수 1500자, 대략 원고지 10매, A4 한 장이 조금 넘는 글을 써야 한다고 치자. 우리는 보통 1500자 분량의 원고를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 원고를 완료하는 데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를 먼저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한 달에 한 번 마감인 원고라면, 원고가 아무리 짧아도 이 원고에 주어진 시간은 한 달인 셈이다. 그럼 마감 전까지 이 짧은 원고 한 편을 쓰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간을 들인다. 엄청난 고민과 사유로 깊이 있는 글이 나온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미루는 데 쓰다가 마감이 코앞에 닥쳐야 후다닥 원고를 쓸 것이다.
파킨슨의 법칙에 따르면 일은 주어진 시간에 따라 최대한 팽창한다. 15분 만에 할 수 있는 일도 1시간이 주어지면 결과적으로 1시간을 들이게 된다. 1시간이면 쓸 수 있는 원고도 한 달이 주어지면 한 달 동안 쓰게 된다. 이런 인간의 본성을 알기에, 글쓰기 수업을 할 때마다 사용했던 방법이 있다. 바로 20분 압박 글쓰기.
글에 대한 주제를 주고, 타이머를 20분에 맞춘다. 20분 안에 짧은 글 한 편을 써야 한다.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타이머가 울리면 들고 있던 펜이나 노트북을 손에서 놓아야 한다. 만약 타이머 없이 글을 써보라고 했다면, 20분이 지난 시점에 한 문장도 쓰지 못한 사람들이 대다수였을 것이다. 타이머를 맞추자,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글을 써냈다.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통계적으로 20분 동안 1000자에서 1500자 사이의 글 한 편을 써냈다. 글을 써내고 놀라는 사람도 많았다. 타이머를 맞추고 마감 시간으로 압박했을 뿐인데, 자기도 몰랐던 글쓰기 재능이 발현되고 숨어 있던 문장들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글이 안 써지거나, 자꾸 글쓰기를 뒤로 미루고 있다면, 당장 타이머를 켜자. 더도 덜도 말고 타이머를 딱 20분에 맞추고, 20분 동안 얼마나 쓸 수 있는지 보자. 타이머가 울릴 때, 눈앞에 그동안 애타게 기다리던 원고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마감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스스로에게 마감 시간을 정해 주자.
물론 20분 동안 1,000자 분량의 원고를 쓸 수 있다고 해서, 단순 계산해 1시간이면 3천 자, 10시간이면 3만 자 원고를 완성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본격적인 글쓰기 전 사유하는 시간은 넉넉히 가지자. 산책을 하며 이리저리 생각이 굴러가도록 두는 여유 시간은 글쓰기에 반드시 필요하다. 대신 실제 글을 쓸 때는 타이머를 이용해 짧은 시간에 최대한 몰입해서 쓰는 것이 좋다. 반복해서 훈련하다 보면 글쓰기의 과정에 따른 자기만의 리듬이 몸에 밸 것이다. 슬로, 슬로, 퀵! 슬로, 슬로, 퀵!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강연 신청 및 상위 1% 독서 커뮤니티 무료입장, 1:1 글쓰기 코칭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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