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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ul 04. 2024

글이 안 써지고 자꾸 미루기만 한다면 타이머를 켜라

압박 글쓰기의 힘

작가는 회사나 사무실로 출근할 필요도 없고, 정해진 출퇴근 시간도 없다. 쓰고 싶은 시간과 쓰고 싶은 장소에서 쓰면 된다. 그야말로 자유다. 자유가 작가라는 직업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글쓰기의 가장 큰 적이 되기도 한다. '오늘은 꼭 글을 써야지' 결심하고 하루를 시작했는데 이 일 저 일 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가, 할 수 없이 다음날로 미룬 적이 있는가. 어떤 종류의 글을 쓰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자유가 작가라는 직업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글쓰기의 가장 큰 적이 되기도 한다


한 여성이 있다. 오늘 하루 동안 할 일이라곤 엽서 한 장 보내는 일뿐이다. 엽서 한 장 보내는 일은 간단한 일이지만, 그녀에게는 하루가 온전히 주어졌다. 그녀는 엽서를 찾는 데 한 시간, 안경을 찾는 데 30분, 엽서를 쓰는 데 한 시간 반을 할애했다. 그 후 엽서를 부치는 데는 얼마나 걸렸을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파킨슨의 법칙 (Parkinson's Law: The Pursuit of Progress)>에 등장하는 사례다. 과장한 면이 없지 않지만,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아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엽서 한 장 쓰는 데 하루종일 걸릴 수도 있다


글자수 1500자, 대략 원고지 10매, A4 한 장이 조금 넘는 글을 써야 한다고 치자. 우리는 보통 1500자 분량의 원고를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 원고를 완료하는 데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를 먼저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한 달에 한 번 마감인 원고라면, 원고가 아무리 짧아도 이 원고에 주어진 시간은 한 달인 셈이다. 그럼 마감 전까지 이 짧은 원고 한 편을 쓰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간을 들인다. 엄청난 고민과 사유로 깊이 있는 글이 나온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미루는 데 쓰다가 마감이 코앞에 닥쳐야 후다닥 원고를 쓸 것이다.


파킨슨의 법칙에 따르면 일은 주어진 시간에 따라 최대한 팽창한다


파킨슨의 법칙에 따르면 일은 주어진 시간에 따라 최대한 팽창한다. 15분 만에 할 수 있는 일도 1시간이 주어지면 결과적으로 1시간을 들이게 된다. 1시간이면 쓸 수 있는 원고도 한 달이 주어지면 한 달 동안 쓰게 된다. 이런 인간의 본성을 알기에, 글쓰기 수업을 할 때마다 사용했던 방법이 있다. 바로 20분 압박 글쓰기.


바로 20분 압박 글쓰기


글에 대한 주제를 주고, 타이머를 20분에 맞춘다. 20분 안에 짧은 글 한 편을 써야 한다.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타이머가 울리면 들고 있던 펜이나 노트북을 손에서 놓아야 한다. 만약 타이머 없이 글을 써보라고 했다면, 20분이 지난 시점에 한 문장도 쓰지 못한 사람들이 대다수였을 것이다. 타이머를 맞추자,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글을 써냈다.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통계적으로 20분 동안 1000자에서 1500자 사이의 글 한 편을 써냈다. 글을 써내고 놀라는 사람도 많았다. 타이머를 맞추고 마감 시간으로 압박했을 뿐인데, 자기도 몰랐던 글쓰기 재능이 발현되고 숨어 있던 문장들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통계적으로 20분 동안 1000자에서 1500자 사이의 글 한 편을 써냈다


글이 안 써지거나, 자꾸 글쓰기를 뒤로 미루고 있다면, 당장 타이머를 켜자. 더도 덜도 말고 타이머를 딱 20분에 맞추고, 20분 동안 얼마나 쓸 수 있는지 보자. 타이머가 울릴 때, 눈앞에 그동안 애타게 기다리던 원고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마감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스스로에게 마감 시간을 정해 주자. 


글이 안 써지거나, 자꾸 글쓰기를 뒤로 미루고 있다면, 당장 타이머를 켜자


물론 20분 동안 1,000자 분량의 원고를 쓸 수 있다고 해서, 단순 계산해 1시간이면 3천 자, 10시간이면 3만 자 원고를 완성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본격적인 글쓰기 전 사유하는 시간은 넉넉히 가지자. 산책을 하며 이리저리 생각이 굴러가도록 두는 여유 시간은 글쓰기에 반드시 필요하다. 대신 실제 글을 쓸 때는 타이머를 이용해 짧은 시간에 최대한 몰입해서 쓰는 것이 좋다. 반복해서 훈련하다 보면 글쓰기의 과정에 따른 자기만의 리듬이 몸에 밸 것이다. 슬로, 슬로, 퀵! 슬로, 슬로, 퀵!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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