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희 Nov 01. 2024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13년 전 오늘, 새벽 세시에 일어나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빗소리에 눈을 떴다. 휴대폰을 더듬어 확인하니, 새벽 세시. 다른 때 같으면 다시 눈을 감았을 텐데, 몸을 일으켰다. 몇 달 전부터 기상시간을 3시에서 4시 20분으로 미뤘다. 건강을 위해서라는 핑계를 댔지만, 그 새벽에 써야 할 글은 쓰지 못하고 온갖 잡일만 해대는 나 자신이 보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13년 전 오늘, 나는 새벽 3시에 식구들 몰래 살금살금 일어나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변변한 책상도 없었다. 버려진 낡은 식탁에 테이블보를 씌워 나만의 책상을 만들었다. 남편을 깨우지 않기 위해 희미한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글을 썼다. 3시부터 분주한 아침 준비가 시작되는 5시까지, 하루에 두 시간만은 온전한 내 것이었다.


소설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지 13년 만에 소설가가 되었다. 막상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꿈을 이루고 나니, 소설 쓰는 게 두려워졌다. 한동안 쓰지 못했고, 쓰지 못하는 나를 견디는 게 힘들었다. 아무것도 쓰지 않고 버티다 며칠 전부터 다시 필사를 시작했다. 잠시 후퇴하기 위함이다.


당신 생각을 많이 해요.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그리고 그 사이의 시간과 그 바로 앞, 바로 뒤 시간에도.


다니엘 글라타우어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중



마침 오늘 새벽 세시에 일어나 필사한 문장이 새벽 세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읽고 설레는 마음에 쓴 장편소설 역시 폴더 속에 얌전히 누워 있다. 그동안 내가 쓴 대부분의 소설들처럼 독자를 만나지 못했다.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그저 열심히 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등단이라는 제도나 문단이 정한 기준에 부딪히다 보니, 소설을 쓰는 게 갈수록 두려운 일이 되었다. 상상의 나래를 펴며 하루종일 캐릭터와 함께 살았던 꿈같던 시절은 가고, 이제 나는 ‘이렇게 써도 되나?’를 더 많이 고민한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마침 상하이를 지나가는 태풍 덕분에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쓰지 못하고 망설이는 마음과 쓰기도 전에 검열부터 하려는 모난 마음 모두 태풍에 실려 사라지길. 정형화된 틀에 나를 가두려는 마음도 빗줄기에 씻겨 나가길. 거침없이 부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내 안의 이야기가 흘러가길. 


13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소설 생각을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그리고 그 사이의 시간과 그 바로 앞, 바로 뒤 시간에도 하던 그 시절로.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고, 2024년 심리장편소설 출간 예정.


강연 신청 및 상위 1% 독서 커뮤니티 무료입장, 1:1 글쓰기 코칭 신청


https://link.inpock.co.kr/sohee_writer


매거진의 이전글 보이지 않는 상처를 찾아 약을 발라주는 남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