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경 <좋은 이별>
우리는 대체로 머리로는 죽음을 이해하지만 그것을 가슴으로 내려보내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린다. 멀쩡하게 장례를 치른 다음, 한두 주나 한두 달쯤 지난 후에야 비로소 머리에 있던 상실감이 가슴으로 내려온 것을 알아차린다. 아니 그것을 상실감이나 슬픔이라고 느끼기보다는 왠지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증상으로 느낀다. 간혹 일이 손에 잡히지 않거나 삶이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김형경 <좋은 이별> 중
작년 오늘 사랑하는 어머니를 떠나보낸 후, 한동안 계속 몸이 아팠다. 미열이 나고 온몸이 붓고 붕 떠서 내 몸이 이 세상에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실제로 어떤 병명을 진단받기도 했고,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다. 상실감과 슬픔을 몸으로 앓고 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애도 작업의 핵심은 슬퍼하기이다. 우리는 슬퍼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이 딱딱해지고, 몸이 아프고, 삶이 방향 없이 표류하게 된다.
김형경 <좋은 이별> 중
자꾸 잠수하려는 나를 보고 멀리 미국에 있는 친구가 우울증 검사지를 건넸다. 우울증 진단을 받을 수 있을 만큼 검사 점수가 높게 나왔다. 입도 뻥긋하기 싫어하는 내게 이런저런 얘기를 시키던 친구는 내가 ‘우울증’이 아니라 ‘애도 중’이라고 했다. 충분히 슬퍼하라고, 그래도 된다고 말하는 친구의 말이 위안이 되었다. 문을 열고 딱 한 발짝만 나가 숨 한번 들이쉬고 들어오라는 친구의 말에 바로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며칠 후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모자를 꾹 눌러쓰고 천천히 걸었다.
실패나 실연을 무릅쓰고 다시 미래를 꿈꾸는 것, 밥을 먹는 자신에 대한 역겨움을 참아 내며 계속 먹는 일이 바로 용기이다.
김형경 <좋은 이별> 중
소중한 이를 잃고도 살겠다고 밥을 꾸역꾸역 먹는 자신이 역겨울 수 있다. 이 모든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역겨움과 무의미함을 참아 내며 꾸역꾸역 먹는 일이 바로 ‘용기’다. 꾸역꾸역 밥을 먹고, 간신히 몸을 움직이고, 그동안 해오던 책 소개와 나눔, 독서 모임 운영, 성경 강의 등을 마지못해 했다. 그러는 사이 몸과 마음이 느리지만 조금씩 회복되었고, 이제는 어머니께 씩씩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하다.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하라고 했다면 끝내 몸을 움직일 수 없었을지 모른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살렸다. 당신의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이 세상에 단 하나라도 있다면, 오직 그를 생각하며 일어나자.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고, 2024년 심리장편소설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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