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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un 13. 2020

생일이 같은 사람을 만날 확률

운명이라는 말에 대책 없이 무너지는 낭만주의자

살면서 나와 생일이 같은 사람을 여럿 만났다. 


같은 과 같은 학번에 서른세 명의 친구가 들어왔는데, 그중 한 명이 나랑 생년월일이 같았다. 갸름한 얼굴에 하얀 피부, 선이 고운 미인. 재미있는 건 그 친구가 재수를 했다는 것이다. 3월 초에 태어난 나를 일곱 살에 학교에 넣으려고 했지만, 아빠가 갑자기 지방으로 병원을 옮기면서 그 계획이 무산되었다. 일곱 살에 학교에 들어갔지만 재수해서 같은 해 같은 과에 오게 된 그 친구를 보면서, 일찍 학교에 갔더라면 재수를 했을 운명이구나 생각 했다.  


방송국에서 일할 때, 한 남자를 만났다. 나이는 나보다 강산이 한 번 변할 만큼 많았지만, 생일이 같았다. 운명이라 여기며 가진 게 아무것도 없던 남자를 사랑했으나, 결국 상처만 돌아왔다.  

"세상의 어떤 남자도 너 같은 여자를 견뎌낼 순 없을 거야.”라는 저주의 독침만 남긴 채. 운명은 역시 매웠다.


MBA를 하며 미친 듯이 취업 면접을 다닐 때,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지 못한다면 바로 파산할 재정 상태였기에 매순간 간절했다. 한 컨설팅 펌 HR 담당자가 나와 생일이 같다는 걸 알고 친한 척 말을 걸었다. 혹시나 기억하고 좋은 영향을 끼쳐줄까 싶어. 물론 그녀에게는 그럴 힘이 없었다. 맥없는 운명도 있는 법.


드디어 원하던 컨설팅 펌에 입사했는데, 함께 입사한 컨설턴트 일곱  중 하나가 나와 생일이 같다. 심지어 같은 학교에서 MBA를 했다. 예전만큼 놀라지는 않았지만, 그 학교도 회사도 운명이구나 했다.  


베이징으로 이사와 모든 것이 낯설 때 누군가의 권유로 교회 모임에 따라갔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예쁘장한 여집사 한 명과 차를 같이 타게 되었다. 언제 베이징 왔느냐 등등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다, 얼마 전 생일이 지났다는 말을 듣는데 순간 찌르르 이상한 전류가 통했다. 

“혹시 날짜가 16일 아니세요?” 

생년월일이 같은 그녀와 나는 라식 수술이 실패한 것도, 남편의 사업 실패로 고생한 것도 비슷했다. 이 모든 일들이 결국 운명이었단 말인가. 


코스타에서 대학생 상담을 하는데, 심리학을 공부해 상담사가 되고 싶다는 학생을 만났다. 그가 남긴 이메일 주소를 보니 낯익은 숫자가 보인다.  

“와, 너무 신기해요” 

생일이 같은 걸 알게 된 그는 이게 운명인가 보다 하며, 전공을 바꿔 상담사가 되기로 결심했을지 모른다.  


모인 사람 수에 따라 생일이 같을 확률 변화


젊었을 때는 ‘운명’이라는 말에 몹시 끌렸다. 사실 사람이 50명만 모여 있어도 생일이 같은 사람들이 나올 확률은 97%, 거의 100%에 가깝다. 하지만 확률 같은 걸 계산해 볼 생각을 하기는커녕, 바로 ‘이건 운명인 거야’ 해 버렸던 젊은 날의 나. ‘운명’이라는 말이 더 낭만적으로 들렸기 때문일 것이다. 대책 없이 낭만이다, 운명이다 좇느라 고생도 진탕 했다. 이제는 ‘낭만’이나 ‘운명’이라는 말에 속지 않을 때도 되었는데, 여전히 대책 없는 이상주의자는 ‘어머, 생일이 똑같네’ 하면 귀가 솔깃해지며, ‘혹시’ 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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