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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un 16. 2020

메이크업, 내가 하고 싶은 딱 거기까지만!

화장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않고 자유로워진 지금이 좋다

몇 년 전 모교인 고등학교에 방문한 적 있다. 복도를 걷다가 많은 아이들의 화장한 얼굴에 한 번 놀랐고, 예전 같으면 화를 버럭 내고 애들을 잡았을 선생님들이 그걸 보고 웃으며 지나가는 것에 두 번 놀랐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 화장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내 화장은 너무도 간단했다. 뽀얀 맨살에 립스틱 하나. 사실 그 시절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문제는 대학 졸업 후 방송국에 입사하면서 시작되었다. ‘화장’이라는 말 대신 ‘메이크업’이나 ‘분장’이라는 말을 쓰게 되면서, 그에 필요한 기술은 이제 직업이 요구하는 직무능력이 된 것이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큼직한 전문가용 메이크업 박스를 사고, 좋다는 화장품들을 사서 담았다. 하지만 완벽한 도구가 준비되었다고 해서, 그 도구를 사용하는 스킬이 동시에 준비되는 건 아닌지라, ‘곰손’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메이크업 박스와 화장품들


거의 맨얼굴로 다니던 피부에 메이크업 베이스니, 파운데이션이니 하는 걸 부위별로 컬러를 다르게 발라야 했고, 파우더뿐 아니라 하이라이트, 블러셔 등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화장품이 모두 필요하다고 했다. 속눈썹을 붙여야 했고, 아이 쉐도우를 바를 때마다 쌍꺼풀 없는 눈을 불평해야 했으며, 아이라인은 그릴 때마다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글씨가 악필이고, 바느질을 잘 못하는 것 등은 그리 티가 나지 않았는데, ‘곰손’의 흔적을 자기 얼굴에 새기고 더구나 카메라 앞에 서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아찔하지 않은가.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딸려 나오는 TV 프로그램 출연은 그래도 나았지만, 분장비 2만 원만 달랑 주고 알아서 해결하라는 뉴스의 경우 매 순간 힘이 들었다. 아나운서실에서 종종 합평회* 가 있을 때마다 지적받는 것은 뉴스 리딩이나 애드리브의 문제가 아니라 눈썹이 짝짝이로 그려졌다거나 쉐도가 어색하다는 메이크업 관련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메이크업 Before(좌) & After(우) - 얼굴이 잡티로 얼룩덜룩해도 난 화장 전 내 얼굴이 더 좋다


방송국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떠나면서 내 얼굴은 다시 자유로워졌다. 얼굴 위를 무겁게 누르던 메이크업이란 가면을 모두 던져 버리고 '화장품 프리'로 살면서 피부가 다시 숨을 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외출할 때 비비크림이나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져 있다는 쿠션 하나로 화장을 끝낸다. 심지어 종종 의뢰받아 MC를 볼 때도 쿠션 하나만 바른 채 무대에 올라가기도 한다.   


파티에 갈 때도 (좌), 스무 살 이상 어린 남자 가수와 MC를 볼 때도 달랑 쿠션 하나 바르고 한다


화장 때문에 더 이상 스트레스받지 않고, 자유로워진 지금이 좋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은 만큼 딱 거기까지! 5분 정도 화장한 얼굴로 산뜻하게 기분 전환할 수 있는 지금이 좋다. 


(*자기가 나온 프로그램을 부장 이상 어르신들과 모니터링하며 평가받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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