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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ul 22. 2020

시간의 숲, 기억의 숲을 헤매다

해남 봉동마을 포레스트 수목원 - 수국 축제

한바탕 쏟아지는 장맛비를 맞고 

지고 있는 수국 사이를 걷다 길을 잃었다. 


해남 봉동마을 포레스트 수목원 수국 축제 끝난 지 이틀 되던 날


시간의 숲을 헤맨다 

기억의 숲을 헤맨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오밀조밀 또는 듬성듬성 모여있는 숲 


해남 봉동마을 포레스트 수목원 - 트리 하우스


네 잎의 ‘행운’을 찾아 헤매다, 세 잎의 ‘행복’을 잃어버릴 뻔했던 푸른 클로버 밭

한때 짙은 향기와 아름다운 꽃봉오리로 마음을 설레게 했으나 지금은 시들어버린 장미와 수국 

얼큰한 취기에 살짝 부는 바람에도 표표히 흩날리며 떨어지는 벚꽃 

아름다운 향기에 홀려 다가갔다가 잡아먹힐 뻔 해 식겁하고 달아나게 했던 식인 꽃 

고기 썩는 악취를 뿜어 내며 다가오는 파리를 움켜 잡아 삼키는 탐욕의 라플레시아 


몇 번의 성취를 나타내는 높고 가파른 자긍심의 봉우리들 

한때 빠져 허우적거리며 다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았던 우울의 늪 

맘껏 자유롭고 당당하게 나무 사이사이를 뛰어다니지 못하고 목줄에 매여 끌려다니던 비루한 원숭이 

부글부글 끓어 올라 흘러내리는 뜨거운 용암으로 모든 것을 태우고 죽일 수 있었던 분노의 화산 

물기 하나 없이 바삭바삭 메말라 모래 먼지만 풀풀 날리는 황량한 사막 

끝도 없이 떨어지고 떨어져도 여전히 바닥이 아득하기만 했던 낭떠러지 


두려움과 공포로 새파랗게 질려 짱짱하게 얼어붙은 얼음 덩어리는 

어째서 아직도 녹아내리지 않았을까? 


시간의 숲을 헤매다 

기억의 숲을 헤매다 



바위 위에 고인 빗물을 본다. 

그 위에 떨어진 수국 꽃잎들. 

한때는 진심이었으나 결국 변하고 마는 

처녀의 꿈을*. 


(*수국의 꽃말 - 진심, 변덕, 처녀의 꿈)


해남 봉동마을 포레스트 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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