뽐므(사과)의 하찮음은 무게가 엄청 나갔다

<레이스 뜨는 여자> - 파스칼 레네

by 윤소희

‘뽐므’(사과)는 '겉보기가 그렇듯 내면도 둥글고 매끈매끈’해 '깐깐함이나 까칠함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여자.

'현실을 숨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너무나 투명하게 드러내는 바람에 눈길이 거기에 와서 멈추기를 깜박 잊어버릴 만큼의 순진성’은 에므리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순진성’이었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얼굴의 순결성과 거기서 비롯되는 이 진짜 적나라함’


겉으로 드러나는 신분 차이 같은 것을 이유로 뽐므를 ‘흔해 빠진 여자’로 분류해버림으로써 에므리가 진짜 벗어나려고 했던 것은 바로 그 ‘하찮음'이 아니었을까.

'뽐므의 하찮음은 무게가 엄청나게 나갔다.'


'대단히 엄청난 동의의 능력을 통해서 나타나는 지혜의 밑천을 둥글둥글한 영혼 아래 지니고 있’는 뽐므는

에므리가 헤어지자고 할 때도, “아, 좋아요!”에 이어 “알고 있었어요.”라고 말한다.


모 나지 않고 ‘깐깐함이나 까칠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뽐므의 그 매끈하고 동글동글함이

오히려 에므리로 하여금 미끄러져 튕겨나가게 하고,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너무나도 투명하게 드러내는 뽐므의 그 순결성과 순진성이

오히려 뽐므 내면에 보이지 않는 어둠을 만들어 썩어가게 한 것은 아니었을지.


매끈하고 동글동글하게 에므리와 헤어진 후, 뽐므는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나이 마흔이 넘었음에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옷차림 따위로 비난을 듣고도 그 앞에서

매끈하고 동글동글하게 웃으며, “아, 그렇군요.”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병이 들었다.


매끈매끈하고 동글동글한 사과.

어쩌면 그래서 속부터 썩는지도...


레이스 뜨는 여자.png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어떠한 저의도 없는) 얼굴의 이 순결성 (이 ‘더럽혀지지 않은 페이지’)과 거기서 비롯되는 이 진짜 적나라함은, 목욕하는 장면을 보여 주었으나 누구에게 보여 주려고 사전에 계획한 게 아니었으므로 한결 더 돋보이는 수산나의 그것 같은 당당함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체와 우연을 조잡하게 사용하지만, 그래도 뽐므는 여전히 아주 작고 가벼우며, 이 세상의 온갖 것 속에서 무력하기만 해서 비통하고,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서 말하는 것과는 실제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매혹적이라는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느낄 수 있단 말인가?
다른 사람에게 자아를 바치려는 ‘흔해 빠진 여자’는 잠자기 전에 불 끄는 걸 잊는 남자의 수만큼이나 드물다. 흔한 것은 그 여자를 ‘흔해 빠진 여자’라고 믿는 해석의 오류다. 우연히 만난 처녀를 남자가 ‘흔해 빠진 여자’로 묶을 때 여자는 끝내 남자의 이방, 바깥에 머문다
이 견디기 어려운 순진성, 그것은 그에게 행사하여 그가 반항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그에게서 앗아 가는 폭력이었다. 뽐므의 하찮음은 무게가 엄청나게 나갔다
그녀는 아무런 신호도 하지 않지만 참을성 있게 심문해 봐야 하는, 눈길을 고정할 줄 알아야 하는 그런 영혼을 지닌 사람들의 부류에 속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