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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음이 May 21. 2023

목마가렛을 닮은 사람

자유와 희망

꽃집에 들렀다. 오늘 내가 사야 할 꽃은 카네이션. 주인을 기다리는 잔뜩 놓인 카네이션 화분 옆을 지키고 있는 한 꽃에 눈길이 닿았다. 데이지일까. 국화일까. 내 시선이 오래 머무르고 있는 것을 알아챈 사장님이 말했다. “참, 예쁘죠? 목마가렛이에요.” 그를 닮았다. 바람에 여리하게 흔들리면서도 절대 꺾이지 않을 듯한 사람.




약속 장소인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예약된 자리에 앉아 물 한 모금을 마셨다. 옷매무새를 점검하고 시간을 확인한 뒤 핸드폰을 가방에 넣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그와의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유리창 밖으로 키 큰 남자가 스쳐갔다. 나는 몸을 일으킬 준비를 했다. 오후 6시. 베이지색 긴 바지에 검은색 반팔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다가왔다.



“강 선생, 이게 얼마만인가.”



악수를 청한 그의 손을 잡았다. 눈가에 잡힌 주름. 전보다 투박해진 손. 그 안에 담긴 온기. 웃음소리는 여전했다. 22년의 시간이 흘러 마주한 그와 나는 어느새 가정을 이뤘고,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지나왔음을 인정하는 듯 서로 눈물을 글썽였다. “선생님, 오랜만에 봬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31세의 나이로 여고에 첫 부임했던 고 3 담임 선생님. 몸이 약한 나를 걱정하며 나의 진로를 함께 고민했고 문학을 사랑했던 사람. 그는 내게 제일 먼저 건강상태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첫 제자의 책을 마주하며 그의 젊은 날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는 이야기까지. 우리는 지난 삶을 이야기하며 한참을 울듯 웃었고, 웃듯이 울었다.




“행정과장이 강 선생을 아냐고 묻더군. 내 첫 제자라고 했지. 네가 책을 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장 책을 샀어. 어떤 이야기를 썼을까 궁금했지. 음악을 틀고 눕다시피 앉아 책을 읽다가 자세를 고쳐 앉았어.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지 못하겠더군. 눈물이 나서 혼났네.” 그는 몇 번이나 나를 향해 다정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나는 유아교사로 그는 중등교사로 누군가를 가르치고 있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젊은 날 여고에 있을 때는 성적, 성취, 평가에 사로잡혀 살았지. 그런데 갈수록 그게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되더라. 중학교에 와서는 더더욱.” 그는 여전히 학생들의 교육에도 관심이 많았고, 학생들의 생활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대로였다.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들국화가 떠오르는 문학소년. 소년의 이미지를 보존하고 있는 그에게 나는 꽃을 전했다. “카네이션을 사러 갔다가 이 꽃을 사게 됐어요. 이름은 목마가렛. 국화의 일종이고요. 자유와 희망을 뜻한대요. 보자마자 선생님 생각이 나서 데리고 왔어요.” 그는 꽃이 예쁘다며 환하게 웃음 지었다.




그는 잠시 후, 내게 대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안에 든 건 그가 쓴 교육 관련 책. 그는 역시 문학소년. 또한 가르치는 것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를 처음 만났던 31세 청년의 그는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절대 지지 않는 목마가렛을 닮은 사람이었음을. 또한 그런 그와 함께한 내 고3의 계절이 희망으로 가는 터널이었을지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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