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글방(1/17) : 민폐
“폐 끼치지 않고 살다 가겠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라 불상 앞에 할 인사는 이 말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뭔가를 이루어 달라는 기도는 글쎄, 내가 열심히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 것도 아닌데 바라는 게 이상하달까. 무교였던 가족들이 어느 순간부터 절에 가기 시작했고, 가끔 따라가게 되면 왠지 인사를 안 할 수 없는 분위기라 한 것뿐이었다. 자꾸 하다 보니 불상을 마주하는 것이 익숙해졌는지, 혼자 여행하다 관광목적으로 절에 가게 되면 비슷한 인사를 했다. 어쩌면 이건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이 아니라 다짐을 한 건지도.
나는 어떻게 폐 끼치지 않고 살려고 했던 걸까? 존재 자체가 지구에 민폐인 인간이 폐 끼치지 않고 살다 갈 방법이 있을까? 아무도 듣지 못하는 인사를 할 때조차 나는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뭘 그렇게 자꾸 하지 않으려고 했는지, 가능하지도 않은 걸. 언제 또 인사를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다른 인사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