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초 Nov 18. 2023

꼭 필요한 비합리적인 소유

나는 어지르고 살기로 했다(제니퍼 매카트니)를 읽고

 내 인생에 있어 진정 중요한 것들은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이를테면 한밤중에 야반도주를 하기 위해 짐을 싸야 할 때다. 손발은 후들후들 떨리고, 심장은 쿵쾅댄다. 여자 혼자서 얼마나 많은 짐을 들 수 있을까. 무게와 이동방법을 고려해 가면서 짐을 골랐다. 그 결과 절대로 모범이 돼서는 안 되는 짐꾸리기가 나왔다. 백팩에 구형 노트북과 휴대폰, 쓰지도 않을 카메라와 지금 당장 입을 옷 몇 벌과 속옷과 양말과 수건 몇 개. 전자제품은 향후 팔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지 몰라도 수건 몇 개쯤이야 밖에서 구매하는 게 더 나았을 텐데 그때는 그런 생각이 없었다. 그저 후닥닥 짐을 챙겼다. 그 와중에 챙긴 반납할 책 몇 권, 그리고 다 쓴 전공책 몇 권. 여권과 인감통장을 챙긴 것은 마지막 내 이성이었다.

 그 순간 챙긴 것들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그런 것들이었다. 일단 실리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가장 먼저 챙겼고, 그다음에는 며칠은 물론 몇 년 넘게 반납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의무로 챙겨 반납한 도서 몇 권이 있었고, 마지막에야 과거에 대한 미련처럼 전공책을 챙겼을 따름이었다. 사실 그것마저 학교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그 책도 팔아치울 계산이었다. 

 당시의 내 삶에는 그런 것들밖에 없었다. 설레고 설레지 않고, 하나하나 따질 수도 없이 남은 것들은 모조리 버려야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12년간 써온 일기장,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 선물 받은 자잘한 액세서리, 그리고 원고노트. 

 설레지 않으면 버려야 한다. 2019년 곤도 마리에의 넷플릭스 시리즈에서 나온 말이자 프로그램의 캐치프레이즈이다. 그렇다면 내가 버리지 않은 것들은 나를 설레게 했는가.


설레기 위해서는 버리지 말아야 한다.

라고 오히려 제니퍼 매카트니는 <나는 어지르고 살기로 했다>(2017)에서 설파한다.

그 글에서는 나이지리아 내전에서 도망쳐 나오던 숙모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숙모는 모아둔 금괴 같은 것은 두고, 결혼 앨범을 챙겼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지금까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금괴를 먼저 챙긴 셈이다. 사실, 금괴보다도 환전성이 낮은 품목들을 그토록 아끼듯이 챙겨 나왔다.


"집이 없거나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하는 난민처럼 이 단계(애정과 소유)에 이르지도 못하거나 계속해서 물건을 사모으는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위 책)이라도 우리는 계속 무언가를 소유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이동할 때마다 세간들은 아무리 버려도 점차 늘어난다. 언제 떠나야 할지 모르는 철새 같은 사람에게는 이동의 짐이 될 뿐인 잡다한 것들이 그러나 생의 골목골목마다 문득 필요해지는 때가 온다. 케이블이나 변환잭 같은 자질구레한 부품들처럼 매번 쓸모가 있는 물건은 아니지만 다 팔아버린 후에 갑작스럽게 필요해질 때가 나타나는 것처럼 삶의 모퉁이마다 먼지 쌓인 짐들이 늘어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평초 같은 삶에 잡다한 것들은 사지도 말고, 책임져야 할 것은 만들지 말고, 그저 먹고사니즘에서 벗어난 물건들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질적 풍요 속에 이건 버리겠다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머물지 못하는 불안정함에 따른 선별과정이다. 충분히 가질 수 있는 것과 반드시 필요한 것 사이에 싸움과 고민 끝에 내게 남은 것들은 설레지 않는다. 의미보다는 살아가는 방법론에 가깝다. 


 내가 무엇을 가질 수 있다는, 소유에 대한 자신감조차 없다면 집 안은 그저 휑한 창고다. 벽에 걸어놓을 사진도 그에 맞는 액자도 없다. 이때의 내가 어땠지 뒤돌아볼 추억을 담은 노트조차 없다. 끼적거린 메모는 그때그때 필요한 내용만 담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통으로 버려진다. 쌓아둘 공간조차 내 것이 아니기에 기록물들은 그저 잠기기만 한다. 

 

 가질 수 없다는 자괴감과 불안함이 정신과 치료덕인지 차츰차츰 가라앉은 시기였다. 문득 나는 창고에 4000원짜리 마스킹테이프 하나를 밀어 넣었다. 아무 쓸 데도 없고 그저 예쁘기만 한 뭔가가 메모 사이에 빼꼼히 고개를 들이밀었다. 다꾸를 하는 것도 아닌데 가끔씩 보이는 영화티켓모양 스티커가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걸 내게 속삭여준다. 영화를 좋아하는구나. 빈티지한 티켓 같은 디자인의 긴 테이프를 손끝으로 뚝뚝 끊어가며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구나 속삭인다.


 소유하는 것에 대한 애정들이 울컥울컥 비어져 올라왔다. 물질적인 필요성과 불필요성은 내게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불필요한 것들이 항상 좋았다. 실리적이지 못한 것들에 쏟는 마음이 애정이었고 갈망이었다. 노력하면 가질 수 있다는 희망과 확신은 자그마한 무언가를 직접 쥐는 것에서 피어올랐다. 때때로 삶에 대한 의지는 가장 비합리적인 것에서 오는 것 같다. 숙모의 결혼앨범이나 작은 마스킹테이프 같은 예술이나 추억이나 그저 아름다운 것들은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없이는 가지고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종종 비합리적인 소비를 해야 한다. 오래 가지고 있을 공간이 없이도, 천년만년 갖고 있으리란 희망이 없어도 가지고 있으면 짐이 될 무언가를 반드시 소유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도망칠 때 금괴보다 소중한 물건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자아존중감 회복하는 법 : 내 감정을 존중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