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나뚜라 17화

3.2 가야 할 길(道) : 존엄성_2

3.2.2 How much is enough?

by 이성룡

3.2.2. 행복, How much is enough?

요즘은 좀 뜸해지긴 하였지만, 한때 우리나라 사회전반에 젊은 층을 중심으로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떠돌았다. 지옥이라는 헬(Hell)과 한국이라는 조선을 합쳐서 만든 합성어로 열심히 노력해도 원하는 삶을 살기 어려운 한국 사회를 부정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언론에 등장한 것이 행복지수를 거론하며 행복지수 1위의 나라 부탄이 소환되고는 하였다. 아마도 부탄은 비록 풍요롭지는 않아도 행복을 그것도 세계에서 1위로 느끼면서 잘살고 있는데 무슨 헬조선을 운운하며 징징대느냐는 의미일 것이다. 사실 부탄이 행복지수 세계 1위라는 것은 1998년에 부탄국왕이 도입한 행복지수인 GNH(국민총행복)에 의한 것으로, 이는 부(풍요) 보다는 문화적 전통과 환경 보호, 부의 공평한 분배를 통한 국민의 삶의 질을 중요시한다.[참고 3.13] 그래서 부탄은 모든 국민에게 의료혜택을 무료로 제공한다. 그러나 이런 의료혜택에도 불구하고 의료 기술 수준이 매우 낮아서 부탄의 영아 사망률은 26%가 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들끼리 상부상조하면서 세계 1위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니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굳이 한마디 하자면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어서 객관화하고 정량화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어쨌든 GNH(국민총행복)에 자극을 받은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10년 전부터 UN에서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를 통해 매년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행하고 있다. 이 행복보고서는 가능한 한 행복지수를 객관화하기 위하여 Gallup World Poll의 설문조사를 토대로 세 가지 주요 웰빙 지표인 삶의 평가(life evaluation), 긍정적인 감정, 부정적인 감정 세 가지를 기본으로 평가하는데, 직전 3년 치 자료(2022년의 경우 2019~2021의 평균 값)를 기반으로 행복지수를 산출한다.[참고 3.14] 여기서 삶의 평가는 국내총생산(GDP), 기대 수명(healthy life expectancy), 사회적지지(social support), 자유(freedom), 부정부패(corruption), 관용(generosity) 등 6개 항목으로 세분하여 평가하고, 이 들이 삶의 다양한 측면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더 잘 추적하기 위해 응답자의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을 반영하여 보정한 다음 최종적으로 행복지수를 산출해서 순위를 작성하여 보고한다. 세계 행복 보고서에 발표된 2022년 세계 146개국의 세계 행복지수 순위는 그림 3.5와 같다. 여기서는 우리나라가 포함된 1위에서 69까지의 순위만을 나열하였다.

그림3-5.png

그림 3.5. 세계 행복지수 순위 (2022 UN 행복 보고서) [참고 3.14]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세계 행복지수 순위는 146개국 중 59위로 나타났고, GNH(국민총행복) 세계 1위라는 부탄은 순위에 조차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부탄이 순위에 없는 것에 대한 의미는 보고서에서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다음 자료로 미루어 짐작해 볼 수는 있겠다. 2022년 한국은 인구 약 5천만 명, 국민총생산(GDP)이 1조8천억 달러로 세계 10위의 부국이고, 반면에 부탄은 인구 약 78만 명, 국민총생산(GDP)이 25억5천 달러의 빈국으로 경제 규모면에서는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 과거 세계 행복지수 순위는 2017년에 한국 56위, 부탄 97위였고, 2019년에는 한국 54위, 부탄 95위를 보였었다. 그리고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그들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부탄이 행복순위 하위권을 헤매다가 2022년에는 순위권에도 들지 못한 이유가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풍요로운 국가들과 자국의 처지를 상대 비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찌되었든 이러한 결과는 어느 정도 이상의 풍요가 수반되지 않은 채, 그저 문화적 전통과 환경 보호, 부의 공평한 분배를 통한 국민의 삶의 질 만으로 행복한 삶을 주장하기는 매우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림 3.5의 세계 행복지수 순위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행복을 위해 풍요(부)는 분명 중요한 요소이지만, 부탄을 비롯한 일부 저개발 국가 국민들의 모습이 행복하게 보이는 것은 자신들의 삶에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고, 세계 10위의 한국은 자신들의 풍요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부탄은 배곯지 않고 아프지 않는 것만으로도 노자의 ‘지족자부’(知足者富 :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부자이다.)를 자신도 모르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우리 한국은 그렇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풍요로워서 이미 탐내고 이루어야 될 것 또한 너무 많아 웬만한 ‘정신승리’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마치 식사를 맛있게 먹고 나서 배 두드리고 있는데 눈앞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우 안심구이가 눈앞에 펼쳐져 ‘어서 먹지 않고 뭐하는 거야?’하며 유혹하는 상황과도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세계 최강국이자 부국인 미국을 비롯한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이 TOP 10안에 들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덜 풍요롭고 비록 빈부격차가 크지만, 낙천적인 국민성을 갖고 있는 남미 국가들이 한국 보다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TOP 5에 랭크되어 있는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은 사회보장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어 다함께 잘사는 국가들임을 알 수 있고, 이에 반하여 한국이나 일본 같이 풍요로운 국가들이 ‘만족’을 하지 못하고 하위권에 랭크되어 있는 것은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는 국가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덜 정비된 사회보장제도와 이에 따른 상위계층과의 ‘비교’에 의한 상대적 열등감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상의 결과를 종합해 보면 행복은 풍요가 기본이기는 하지만, 풍요가 생리적 욕구나 안전 욕구 같은 인간의 기본권 충족을 넘기면 이에 대한 ‘만족’은 지극히 주관적인데다가 사회적 관계에 따른 ‘비교’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풍요로워져야 만족할 수 있을까? 그리고 상대와의 비교에서도 자유로워 질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로버트 스키델스키로 부터 찾아내 보기로 하자.

로버트 스키델스키는 근대 경제학의 대부인 케인스의 전기를 출간하여 이름을 세계에 알린 영국의 경제사학자이다. 스키델스키는 우리가 해답을 찾고 싶어 하는 바로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How much is enough?)”[참고 3.15]의 저자이다. 스키델스키는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기 위하여 케인스가 1930년에 발표한 “우리 후손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에서부터 출발한다. 여기서 케인스는 앞으로 100년 후에는 기술발전과 경제성장으로 근로자들이 하루 3시간, 즉 주당 15시간 노동으로 충분한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케인스가 예견한 미래는 2030년으로 이제 몇 년 앞으로 다가왔다. 과연 근대 경제학의 대부의 예언은 이루어 질 것인가? 사실 기술발전과 경제성장에 대한 그의 전망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이루어졌지만, 주당 15시간 노동으로 충분한 세상의 ‘좋은 삶’은 기대할 수조차 없이 거리가 멀기만 하다. 이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케인스의 전망이 빗나간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 스키델스키는 철학과 역사, 경제학을 넘나들면서 그 원인을 찾아 나섰다. 그에 따르면 진보적 성향의 일반 경제학자들은 케인스의 전망대로 기술 발전으로 경제 성장은 이루었지만, 자유주의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분배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라고 분석하였다. 스키델스키는 ‘분배 정의’ 문제에 대체로 동의하면서 이를 포함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자본주의의 본질을 내세웠다. 즉 스키델스키는 악마와 계약을 맺은 대가로 상상도 못한 힘을 얻은 파우스트 전설에서 자본주의의 본질을 읽고, 풍요를 위해 채택한 자본주의가 심어 놓은 습관 때문에 우리는 풍요로울수록 좋은 삶을 즐길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음을 논증하였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주관적인 욕망(행복)을 자본주의가 ‘너 이정도로 만족할거야? 이보다 훨씬 좋은 것이 있잖아.’라며 끊임없이 부추기고 조작하기 때문에 자본주의하에서는 풍요롭다 못해 젖과 꿀이 흘러 넘쳐흘러도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한 삶을 즐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키델스키는 행복한 삶의 요건을 찾아 동서양의 다양한 지혜를 탐구하고, 최근 자본주의의 성장 지상주의를 비판하며 나온 행복 경제학의 한계를 면밀하게 검토한 후, 이에 대한 대안으로 좋은 삶을 위해 자본주의의 탐욕에 맞선 7가지 기본재(basic goods), 즉 충분의 7가지 조건으로 건강, 안전, 존중, 개성, 자연과의 조화, 우정, 여가를 제시하면서 최소한 이것만큼은 기본적으로 충분하게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이 충분의 7가지 조건을 매슬로우가 발표한 인간의 욕구 충족 5단계와 대응해서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건강은 욕구충족 1단계, 안전은 2단계, 우정과 자연과의 조화는 3단계, 존중은 4단계, 개성과 여가는 5단계와 같이 서로 연결시켜 생각해 보는 것 말이다. 물론 7가지 기본재와 욕구 충족 5단계가 정확하고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본주의의 무한한 탐욕에 맞서기 위한 방법으로 7가지 기본재를 생각해 낼 때까지의 스키델스키의 고민을 느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제 스키델스키는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각종 통계(연도별 알코올 중독 사망자 통계에서부터 OECD 국가 실업률, 혼인율과 이혼율, 문화 행사 참석률 등)의 분석을 통하여 이 7가지 기본재가 영국의 경우, 1974년 이후 거의 늘지 않았음을 확인 하였다. 이는 1980년대 이후 경제 성장위주의 자유 시장주의는 우리사회의 전체를 성장시키는데 기여하였지만, 구성원이 함께 풍요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에는 실패함으로서 공동체의 좋은 삶이 아닌 그저 맹목적 성장이 목적임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맹목적 경제 성장과 욕구의 무한한 자극만이 우리 삶의 목적이 아니라면, ‘무엇을 얼마나 가져야 충분한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로 7가지 기본재(basic goods)에 대한 충족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센델의 공동선에 동의한다면, ‘좋은 삶’의 사회를 위한 공동 목표는 단지 경제 성장만이 아니라 스키델스키의 7가지 기본재를 모든 사람들이 쉽게 충족할 수 있도록 돕는 경제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어야 하고, 이 기본재를 사회 공공영역에서 보장해 줄 수 있도록 사회가 정책적으로 추진하여야 한다는 제안이다. 스키델스키는 이러한 7가지 기본재를 보장하기 위한 정책적 방법으로 주당 노동 시간의 제한과 법정 휴일의 확대 등으로 근로 압박 감소, 일자리 창출과 기본소득 강화 등을 통한 기본 생활권 보장, 탐욕을 부추기는 과도한 상품 광고의 제한과 누진 소비세 도입으로 소비 압력 감소, 세계화의 속도 조절과 자본 도피 통제 등을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거론함으로서,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는 통제되지 않는 욕망으로 인하여 충분함과 만족을 모르는 자본주의의 악순환을 7가지 기본재(충분의 7가지 조건)의 충족을 통해 중단시키고 ‘좋은 삶’을 추구하자는 스키델스키의 분명한 의지인 것이다. 실제로 심리학자 서은국이 자신의 발표에 인용한 자료(그림 3.6)는 스키델스키의 주장을 강력하게 지원한다. 그림 3.6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의 행복은 소득(부)이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하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행복도 비례해서 증가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혼인율과 같은 객관적인 조건 또한 그림 3.6(b)에 보여 진 바와 같이 마찬가지 결과이다. 사회가 ‘좋은 삶’을 추구하기 위하여 7가지 기본재를 보장하자는 스키델스키의 주장은 자본주의 탐욕의 악순환을 끊어 내는 열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샘솟는다.

그림3-6.png

그림 3.6. 소득 등 객관적인 조건에 따른 삶의 만족도 [참고 2.8]


이러한 스키델스키의 제안에 대하여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혹시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자율적 존재이며, 자유롭게 행동하고 선택할 능력이 있다.” 그리고 또한 “감성은 욕구 또는 본능을 가리키는데, 이는 이성에 의해 억제할 수 있다.”라는 칸트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하여 그동안 칸트의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면서 내 마음 속에서 꿈틀대는 욕망을 내 맘대로 억제할 수 없는 내 이성의 무력함을 원망하거나, 이것이 불편하게 생각되어 교회나 절에 가서 속죄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지는 않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스키델스키의 제안은 칸트의 인간다운 인간으로 완벽하게 살지 못했던 것이 내 ‘이성’의 잘못 때문만이 아닐 뿐 아니라, 내 이성이 스스로 그리고 온전히 내 욕망을 제어해야만 한다는 우리 이성의 부담을 조금은 덜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는 마치 내가 배가 많이 고픈 상태에서 허겁지겁 시장을 가서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만약 사회시스템이 스키델스키의 7가지 기본재를 충족 시켜 줄 수 있다면, 나는 배가 적당하게 든든한 상태에서 시장에 가게 될 것이니 과도한 탐욕 없이 합리적으로 쇼핑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 주는 상황과 같은 것이다. 이제 스키델스키의 7가지 기본재는 우리 욕망의 제어에 대한 이성의 부담을 확실하게 일정 부분 줄여주는 역할을 할 것이고, 이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 욕망을 제어하는 실천 가능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이러한 불씨 같은 소중한 희망을 좀 더 키우기 위하여 행동경제학자들의 주장에 좀 더 귀를 기울여 보자.

행동경제학은 기존의 주류 경제학의 ‘인간은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는 대전제를 부정하고, 관념론적 현대 철학의 사조에 따라 인간은 어떤 정해진 본질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사회심리학적, 생리학적 배경에 따른 실제적인 인간 행동과 그 결과를 반영해야만 한다는 경제학이다. 이 행동경제학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으로 부터 시작되었고, 그는 이 연구로 심리학자 출신으로는 최초로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제까지의 경제학의 통념을 뒤집어 버리고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선언해 버리는 발칙한(?) 심리학자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수여했다고 하니 행동경제학에 대해 호기심이 샘솟지 않는가? 행동경제학이 스키델스키의 제안을 지지하고 우리의 욕망 제어 실천 가능성을 향상시켜줄 수 있을 것인지 함께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라는 전제하에서 출발하는 행동경제학자들의 이야기를 키스 첸의 꼬리 감는 원숭이 실험으로부터 시작해보자. 이 이야기는 조지 애커로프와 로버트 쉴러의 저서 “피싱의 경제학(Phishing for Phools)”에 실려 있다.[참고 3.16] 조지 애커로프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시장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공로로 2001년에, 로버트 쉴러는 자산 가격의 경험적 분석에 기여한 공로로 2013년에 각각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표적 행동경제학자이다. 아무튼 이 책에서 키스 첸의 실험에 의하면 꼬리 감는 원숭이에게 동전을 던져주고 원숭이가 그 동전을 집어 다시 던질 때에만 바나나를 주는 행위를 반복하면, 다시 말해 돈 쓰는 방법을 교육하게 되면. 인간만이 알고 사용하고 있는 화폐기능을 원숭이도 습득해서 사용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즉 원숭이가 바나나가 먹고 싶으면 동전을 던지고, 배가 부르면 동전을 모아 두었다가 먹고 싶을 때 사용하며, 친구를 위해 동전을 양보하기도 하고 심지어 암컷 원숭이와의 성매매에도 활용하는 등 우리 인간이 사용하는 화폐의 3대 기능인 교환, 축적, 가치척도의 모든 기능을 이해하고 활용하더라는 것이다. 여기서 쉴러는 만약 동전을 충분하게 가진 꼬리 감는 원숭이를 어깨에 태우고 온갖 상품이 가득한 마켓에 가는 경우를 상정한다. 그렇게 되면 이 어깨 위에 올라탄 원숭이는 이미 충분하게 풍요로워 만족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소비를 통해 더 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사탕만을 집중적으로 그리고 계속적으로 사먹어 당뇨병에 걸리거나 영양실조에 걸리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우리 인간도 이 어깨 위에 올라탄 원숭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쉴러는 우리 인간이 근본적으로 합리적이지 않은 것도 있지만, 여기에 자본주의의 자유시장이 우리를 탐욕에 눈이 멀게 하여 비합리적으로 만드는 것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쉴러가 이야기하는 피싱(Phishing)이다. 이는 개인정보(private data)와 낚시(fishing)의 합성어로, 상대의 탐욕 등 심리적 요인을 교묘하게 활용하여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낚아서 사기에 활용하는 술책을 뜻하는데, 쉴러는 이 피싱을 금융사기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전 분야에서 상대를 기만에 빠뜨려 자기 이득을 꾀하는 모든 책략으로 넓게 사용하였다.

이는 역사적으로 ‘불’과 ‘도구’를 사용하면서 부터 사유재산이 생기고 계급사회로 전환된 이래 우리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고통을 감내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은 바로 아서 쾨슬러가 “진화의 그릇된 방향”이라고 한탄했던 적자생존의 무한 경쟁과 남에게 이용 당 하는 고통을 경험하면서 이에 대응하는 각자 나름의 생존전략을 수립하며 정글을 헤쳐 나가고 있는 것이다. 각 개인의 욕망들이 이러한 경쟁과 서로에게 이용 당 하는 환경 속에서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고 각자의 합리적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경제학의 대전제는 기본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회・경제 환경 속에서 자유 시장경제는 쉴러가 말하는 피싱(Phishing)이 자연스럽게 파고들어서 우리를 어깨위에 올라탄 원숭이로 전락시켜 버리는 것이다. 쉴러에 따르면 피싱에 쉽게 낚이는 바보에는 심리적 바보(Psychological Phool)와 정보 바보(Informational Phool)의 두 부류가 있는데, 전자는 이성 보다는 순간적인 감정에 충동적으로 따르는 행동을 하는 것이고, 후자는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지 편향에 빠져 잘못된 상황판단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어깨위에 올라탄 원숭이처럼 피싱에 쉽게 낚이는 것은 위 두 가지 바보중 하나이거나 두 가지 모두가 복합적으로 섞여있는 바보이기 때문이다. 만물의 영장인 내가 바보라니 매우 기분 나쁘다. 하지만 낚시꾼 입장에서 보면 낚시 바늘에 걸려든 물고기는 당연히 바보다. 이러한 쉴러의 피싱은 보이스 피싱으로 대변되는 불법 사기 범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자유 시장경제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경제활동의 대부분은 피싱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피싱은 이미 마케팅 기법의 주요 기반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이러한 경우 대부분 합법의 테두리 안에 있거나 법의 사각지대를 교묘하게 넘나든다. 예를 들면 야식이 생각나는 늦은 저녁 시간대에 어김없이 나타나 정말 내가 좋아하는 스타가 맛있는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면 순간 ‘심리적 바보’가 되어 충동적으로 구매 버튼을 눌러 버리는 것이다. 각종 보험관련 광고는 어떤가? 신뢰가 가는 외모에 화려한 언변으로 이것만 가입하면 내 인생에 아무 걱정도 없을 것 같은 설명에 어렵고 복잡한 내용과 제반 조건 등은 따질 겨를 없이 ‘정보 바보’가 되어 쉽게 가입 버튼을 눌러 버리는 것이다. 여기에 이 두 가지 바보를 동시에 만들어 버리는 것이 바로 보이스 피싱 아닐까? 우리가 평소에 교류할 일이 거의 없지만 우리의 안전을 지켜준다고 믿고 있어 전적으로 신뢰가 가는 ‘서울 경찰청 사이버 범죄 수사대’를 들먹이며, 접근한다. 동시에 나의 계좌가 범죄에 이용되고 있다면서 개인정보를 요구한다. 이 사이 내가 모르는 금융정보를 활용하여 정보 비대칭 상황을 만들면서 동시에 내가 이성적으로 생각을 여유를 주지 않고 충동적 걱정으로 내몰아 나를 ‘정보 바보’인 동시에 ‘심리적 바보’로 만들어 사기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본주의의 자본이 인간의 어리석은 탐욕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우리 인간의 합리적 소비를 방해하고 우리를 어깨위에 올라탄 원숭이로 전락시켜 버리는 것이다.

현대 경제학이 내세우는 기본 원칙은 바로 시장 균형(market equilibrium)과 기회의 찰나성이다. 여기서 시장 균형은 수요와 공급이 시장에서 서로 일치하도록 움직여 결국엔 정확히 균등해진다는 원칙이고, 또한 기회의 찰나성은 자유경제 시장에서 높은 이윤이나 효율을 창출할 최고의 기회가 반드시 있는데, 이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기 때문에 기회를 잡는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쉴러는 이러한 경제학의 두 가지 기본 원칙에서도 피싱 균형(phishing equilibrium) 현상이 발생한다고 주장하면서 슈퍼마켓 계산대 앞에서의 줄서기를 예로 들어 이를 설명한다. 우리는 슈퍼마켓에 사람이 많아 계산대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어느 줄이 가장 짧은지 혹은 어느 줄이 가장 먼저 짧아질지 재빠르게 살펴보고 각자 나름대로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계산대를 선택하여 줄을 서게 되는데, 이러한 개개인의 선택 결과는 오래지않아 ‘시장 균형’ 원칙에 의하여 비록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모든 계산대의 줄은 비슷비슷한 길이를 갖게 된다. 그리고 만약 상대적으로 짧은 계산대의 줄이 발생 했다면 가장 빨리 선택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기회의 찰나성’ 원칙에 의하여 누군가 더 빠른 선택을 하는 사람에게 그 자리를 빼앗겨 버리고 기회를 상실해 버린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줄서기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 경쟁시장의 과도한 압력으로 인하여 누군가는 은근슬쩍 새치기를 하거나 권력이 있는 책임자급 직원에게 비정상적인 부탁을 하는 등의 이기적인 조작과 기만을 시장체제 안에 굳혀버리는 ‘피싱 균형’이 작용하여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왜곡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쉴러는 이러한 조작과 속임수의 피싱 경제학은 슈퍼마켓에서 줄서기와 같은 흔한 일상에서부터 식품, 자동차, 주택 등과 같은 생활 경제, 광고회사와 신용카드사, 담배 및 주류회사, 금융 산업 등으로 대표되는 비즈니스, 심지어 로비에 좌우되는 정치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전체에 퍼져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자유경쟁시장은 우리의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최상의 풍요를 이룩해냈지만, 이러한 자유경쟁시장이라는 도깨비 방망이도 풍요와 함께 빈부격차와 이기적 욕망을 심화시키는 사회적 위험을 내포하는 양날의 칼인 것이다. 즉 풍요를 만들어낸 인간의 창의성은 한편으로 ‘나한테도 좋고 너한테도 좋은 것’뿐 아니라 동시에 ‘나한테만 좋고 너한테는 나쁜 것’도 만들어내는 온갖 종류의 마케팅 기술도 고안해내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주의 자유시장이 인간의 이성이 간신히 붙잡고 있는 욕망을 끊임없이 유혹하고 부추기는 견물생심(見物生心)의 환상 속에 몰래 감춘 사악한 낚싯바늘, 피싱에 걸리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는 첫째 원천적으로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고, 둘째 이를 이용해 이기적 이익을 취하려는 또 다른 인간의 피싱 욕구가 더해지는 것이며, 셋째 이러한 상황을 수수방관 하거나 오히려 조장하는 자유시장체제의 세 가지 요인이 서로 부추기는 상호작용에 의해 점점 증폭되어 결국 우리 모두는 피싱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전반에 이렇게 수많은 피싱이 잠복해 있는데도 자유시장의 균형이 그나마 이정도로라도 유지되고 있는 것은 쉴러가 ‘저항의 영웅’이라고 부르는 몇몇 이상주의자들이 피싱에 대응하는 사회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덕분에 몇몇 기업 연합체는 자체적인 윤리 강령을 만들어 스스로를 경계했고 정부는 피싱을 막기 위한 각종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의 사회적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러한 이유로 쉴러는 “지금의 경제시스템에서 누구나 호구일 수밖에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어깨위에 올라탄 원숭이를 조절할 시장의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것이다. 즉, 개개인이 자유롭게 행동하는 자유시장도 도덕공동체(moral community)안에서 작동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쉴러 또한 센델의 공동선의 사회를 지지하고 추구하자는 것이다.

기왕 쉴러의 행동경제학까지 왔으니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도 살펴보기로 하자. 인간을 ‘호모 이코노미쿠스’라 명명하며 ‘인간은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는 전통 경제학의 통념을 과감하게 뒤집어 버리고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선언해 버린 행동경제학의 대부 대니얼 카너먼의 지혜 말이다. 경제학자이기 이전에 심리학자인 카너먼은 그의 저서인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심리학에 근거하여 인간이 비합리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한다.[참고 3.17] 카너먼은 인간의 모든 행동과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간의 생각은 시스템 1과 시스템 2의 2가지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동하며 작동해서 실제 판단과 선택으로 구현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시스템 1은 어떠한 사안에 대하여 직관적이고 즉흥적이어서 순간적으로 빠르게 생각(fast thinking)하고 직관적 결정을 하는데 반하여, 시스템 2는 의식적이고 이성적이어서 정신력을 집중하여 꼼꼼하게 따지면서 천천히 생각(slow thinking)하는 이성적 결정을 한다. 이 2가지 시스템은 각각 장단점을 갖고 있어서 상호 보완적・유기적으로 작용할 때 긍정적이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인간답지 못하게 비합리적인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2가지 시스템에 의한 의사 결정과정의 개념을 그림 3.7에 보였다.

그림3-7.png

그림 3.7. 인간의 비합리적 결정 과정의 개념도


그림 3.7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외부의 어떠한 상황에 따라 시스템 1이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그에 대한 인상, 직관, 감정을 순간적이고 직관적으로 결정하여 시시각각 시스템 2에 전달한다. 여기서 시스템 1은 외부의 어떠한 상황에 대하여 순간적이고 직관적으로 반응하고 결정하기 때문에 직관적 오류와 상황에 따른 편향의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라 인상, 직관, 감정이 왜곡된 상태로 시스템 2에 전달하게 된다. 그런데 시스템 2는 나태하고 게을러서 시스템 1의 왜곡된 정보를 의식적이고 이성적으로 검증하지 않고 그냥 승인해 버리거나 이미 왜곡되어 저장되어 있는 기억 정보를 결합하여 확증 편향된 정보를 승인함으로서 비합리적인 ‘믿음’과 ‘자발적 행동’의 결과를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시스템 2가 부지런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하도록 시스템 2를 강화해주면 우리가 충동적이지 않고 자기 통제가 완벽한 이성적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고도의 정신력과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몸이 피곤하거나, 여러 가지 일이 한꺼번에 몰려들거나 하면, 시스템 2가 피곤하고 귀찮아서 스스로 자기통제를 포기하는 ‘자아 고갈’ 상태에 빠져 버린다는 것이다. 이를 카너먼은 “머릿속이 바쁘면 이기적인 선택을 하고, 성차별적 언어를 쓰고, 사회적 상황에서 피상적인 판단을 내릴 확률이 높다.”라고 정리하였다. 사실 카너먼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시스템 2가 자기 역할 하는 것에 나태하고 귀찮아하는 것은 우리가 그러한 생존전략으로 진화해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아무 생각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면 상태에서도 가용 에너지의 20%를 사용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에너지의 사용을 최소화하도록 진화해왔다. 한마디로 우리의 뇌는 시스템 2가 제 역할을 다 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평상시에 직관적인 시스템 1 위주로 생활하다가 아주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때에만 이성적인 시스템 2를 가동함으로서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도록 진화했다는 의미이다.[참고 2.10] 그렇다면 우리가 합리적이고 칸트의 이성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시스템 1이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직관적 사고의 오류와 시스템 2의 게으름 때문에 저지르는 확증 편향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먼저 직관적 사고의 오류와 확증 편향의 실체를 알아보고, 이의 최소화 방안을 검토해 보기로 하자.

먼저 시스템 1의 단점인 직관적 오류의 요인으로 점화 효과, 후광 효과, 진실 착각 그리고 과신 등이 있다. 여기서 ‘점화 효과’란 어떤 단어(표적 단어)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표적 단어 보다 먼저 제시된 단어에 의해 표적 단어를 해석하는 데 영향을 받는 현상으로 우리가 어떤 일이나 행동을 하기 전에 원하는 이미지나 단어를 먼저 떠 올리면 점화 효과에 의해 원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긍정의 힘”이라는 책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음 ‘후광 효과’란 어떤 대상의 눈에 띠는 특성이 그 대상의 다른 구체적 내용을 파악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으로 마치 우리가 모르는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상대의 첫인상에 따라 구체적인 사전정보 없이도 그 사람의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또 ‘진실 착각’은 거짓말도 계속 반복해서 듣다 보면 어느 사이 나도 모르게 인지적 편안함을 느껴 이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시스템 1이 낯익고 인지적으로 편안하다는 느낌을 보내면 시스템 2는 그 느낌을 토대로 입력된 정보의 진실 여부를 가리지 않고 진실로 판단해 버리고, 반대로 인지적 불안함을 느끼면 시스템 2는 바빠져서 경계하고 의심하느라 직관력과 창의력이 급격하게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신’은 일종의 신념과 같은 주관적 확신으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나 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내 믿음에 대한 확신으로 시스템 2는 시스템 1과 연동하여 “확증 편향”과 함께 상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곤 한다. 이는 우리가 우리 신념이 잘못되었을 때 이의 한계를 인식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뇌가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생존전략의 하나인 ‘문제 회피 전략’을 가동하여 이러한 상황을 회피하고 잘못된 신념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어 버린다.

카너먼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우리의 자아는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가 있는데, 전자는 그저 현재 벌어지는 상황을 경험하는 자아이고, 후자는 이 경험을 평가해서 기억 창고에 기록했다가 이를 바탕으로 현재의 상황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자아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행복한 결혼식에서 신부가 모든 행사를 훌륭하게 마치고 마지막 결혼 행진의 가장 마지막 발걸음에서 드레스를 밟아 넘어져 망신스러운 모습을 연출했다면, 그 신부는 아마도 결혼식을 떠 올릴 때마다 결혼식을 통째로 망쳤다고 우울해 할 것이다. 사실 결혼식의 99%는 성공적이었고 나머지 1%의 실수만이 있었을 뿐인데도 말이다. 이는 ‘경험하는 자아’의 실제 경험과 달리 ‘기억하는 자아’가 결혼식을 망쳤다고 평가하여 기록했기 때문에 기억을 되살릴 때마다 망쳤다고 평가하는 ‘인지착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기억하는 자아에 의한 오류는 ‘회상용이성 편향’도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어떤 사실을 기억에서 끄집어낼 때 그것이 막힘이 없고 끄집어내기 쉬운 범주에 속하면 그 범주를 상대적으로 크고 중요하다고 판단하게 되는데 이것을 ‘회상용이성 편향’이라 한다. 우리는 보통 생활하면서 자신이 한 노력을 더 선명하게 잘 기억하기 때문에 같이 생활하는 직장 동료나 친구보다 자신이 더 노력하고 배려하고 있다고 느끼는 ‘회상용이성 편향’ 때문에 서로의 주장으로 다투고 긴장을 높일 때가 많다. 이 ‘인지착각’과 ‘회상용이성 편향’이 과거의 기억 평가에 의한 착각이라면 ‘주목착각’은 미래에 대한 ‘감정예측 오류’에 대한 착각이다. 대니얼 길버트는 “결혼 결심은 집단적인 감정예측 오류를 반영한다.”고 하였다. 즉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과 또 이 행복이 영원히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결혼을 결심하는데, 바로 이것이 ‘감정예측 오류’인 것이다. 이는 결혼을 결심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알콩달콩 행복하게 함께 사는 모습에 집중함으로서 현실 생활의 실제 문제들을 간과해 버린 ‘주목착각’의 한 사례로, 이는 삶에서 어떤 특정 부분에 주목하면 전체 평가에서 그 부분이 커 보이는 현상이다. 이 밖에도 카너먼이 제시하는 착각과 편향의 사례는 더 많이 있지만,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시스템 1과 2 그리고 ‘기억하는 자아’가 무엇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감정 상태가 결정되고, 이로 인하여 우리는 보통 각종 편향과 착각의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림3-8.png

그림 3.8. 프레이밍 효과 사례 [참고 3.18]


물론 이러한 착각의 오류와 확증 편향이 모두 나쁜 결과만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사랑에 빠져 행복이 충만한 감정 상태에 있으면 그는 도로가 혼잡하여 교통 정체 상태에 있어도 즐겁고 반대로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져 슬픔이 가득한 감정 상태에 있을 때는 신나는 영화를 봐도 우울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시스템 1과 시스템 2를 가동하기 이전에 우리의 심신이 어떠한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이 2가지 시스템이 설사 편향과 오류를 일으킨다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작동할 수 도 있고, 부정적으로 작동할 수 도 있음을 의미 하는 것이다. 이러한 요인은 이처럼 우리의 내부 상황에 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상황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게 된다. 이를 카너먼은 프레이밍 효과라 정의하였는데, 우리가 맞닥뜨리는 어떤 상황이 제시되는 방법에 따라서 우리의 인식이나 의사결정이 달라지는 왜곡 현상을 말한다. 즉 어떠한 상황을 제시하면서 긍정적 프레임을 적용할 경우에는 긍정적인 결론이, 반대로 부정적 프레임을 적용할 경우에는 부정적인 결론이 내려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프레이밍 효과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뉴스넥의 “삶에 지쳤을 때 멈춰서 생각해 볼만한 일러스트 26” 중에서 2개를 골라 그림 3.8에 보였다. 그림 3.8(a)는 외부상황의 프레이밍 사례로 실제 상황은 칼을 든 사람에게 앞선 사람이 위협받으며 도망가는 상황인데, 카메라 앵글안의 상황은 정반대로 앞사람이 뒤에 있는 사람에게 위협하는 장면으로 상황이 완전하게 바뀌어 버려 프레이밍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그 상황을 전혀 다르게 인식하고 행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그림 3.8 (b)는 내부상황의 프레이밍 사례로 우리의 심신 상태에 따라 내가 나를 인식하는 것도, 외부 상황을 바라보는 것도 달라질 수 있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카너먼은 “인간은 어떤 정해진 본질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우리 인간은 프레이밍 효과에 의해 어떤 프레임이 주어지면 그 프레임의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프레이밍 효과를 마케팅에 활용하여 성공한 사례의 하나가 렌터카 업체 AVIS의 마케팅 전략이다. 당시 AVIS의 시장 점유율은 2위로 부동의 1위를 달리는 Hertz와 상당한 격차가 벌어져 있었고, 여타 3, 4, 5위 업체와는 그만그만한 격차로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었다. 이때 AVIS는 “우리는 만년 2등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열심 밖에 없습니다.“라는 전략적인 마케팅을 실시함으로서, ‘그래 우리는 2등이다. 1등만은 못하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한다.’라는 프레이밍으로 당시 도토리 키재기의 격차를 가진 3, 4, 5등 업체와 차별화에 성공하여 업계 2등을 굳히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참고 3.19]

전통경제학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어떤 프레임이 제시 된다 하더라도 언제나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부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초래할 수 있음을 알았다. 경제학자들의 게임이론처럼 우리는 서로 협력하면 가장 좋은 결론을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불신하여 결국에는 가장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리 로스의 실험에 의하면 공격과 협력의 버튼을 누르는 게임에서 비록 똑같은 게임이지만 이름만 ‘공동체 게임’에서 ‘월가 게임’이라 바꾸어도 즉 협력에서 공격이라는 프레임 전환만으로도 실험 참가자의 70%가 상대를 공격하는 공격 버튼을 선택하는 결과를 보이는 것이다.[참고 3.19] 마치 “죄수의 딜레마”처럼 독방에 수감된 두 공범에게 경찰이 둘 다 묵비권을 행사한다면 양쪽 모두 6개월만 복역, 반면에 둘 다 자백하는 경우 모두 2년 징역형, 하지만 한 쪽은 자백, 다른 한 쪽은 묵비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자백한 사람은 석방, 묵비권을 행사한 사람은 징역 5년에 처하는 제안을 하면 결과적으로 두 범죄자는 서로 자백하지 않을 것을 믿고 협력해서 6개월만 살면 되는 최선의 결과를 선택하지 않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데다 혹시나 상대가 묵비권을 행사할지도 모른다는 ‘희망 고문’에 사로 잡혀 모두 자백을 하여 각각 2년 징역형을 받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존 내쉬가 발표한 '내쉬의 균형(Nash equilibrium)'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는 서로간의 이기적인 경쟁을 줄이고 상호 협력을 하게 되면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최악의 사태를 면할 수 있는 균형을 이루게 된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우리가 센델의 ‘공동선의 좋은 삶’을 추구 하려면, 사회가 구성원 모두 서로 협력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프레이밍을 구축하고 제시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카너먼은 공동체의 지도자가 제시하는 프레이밍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물이 부족한 공동체에서 물통에 물이 절반 정도 남아있을 때 공동체의 지도자가 “물이 절반 밖에 없어.”라고 하면 “물이 부족하다.”라는 프레이밍이 되어 사람들이 서로 물을 쟁취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바뀌는데 반하여, 지도자가 “물이 아직 절반이나 남았어.”라고 하면 “물이 충분하다.”라는 프레이밍이 되어 사람들은 여유로운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참고 3.18]

이상 살펴 본 바와 같이 우리 인간은 시스템 1의 직관적 결정에 의한 착각의 오류와 편향, 이들이 시스템 2와 연동하여 나타나는 확증 편향, 기억 자아에 의한 착각과 회상용이성 편향 등과 프레이밍에 따른 영향으로 비합리적인 의사결정과 행동을 하게 된다. 이에 따라 전통 경제학의 토대인 베르누이의 ‘기대 효용이론’, 즉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가 확실하지 않을 때에는 기대 효용이 가장 높은 행위를 선택하게 된다.’는 이론은 오류를 갖게 된다. 따라서 카너먼은 이상의 우리 인간의 비합리성을 감안한 ‘전망이론’을 제시하였다. 이는 기대효용이론과 달리 불확실성 상황에서 사람들이 이득보다 손해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합리적 이성이 아니라 직관에 의한 위험 회피 본능에 따르기 때문에 비합리적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그 이유로 카너먼은 우리는 위험을 이성적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평가하고, 이득 보다는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주 관심사가 최종 결과의 크기가 아니라 상대적 이득과 손실에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였다. 이를 10억을 투자하는 사람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먼저 이득의 관점의 경우, 10억을 벌어들일 확률이 95%로 높은 확률의 확실성을 가질 때는 실패했을 때의 실망에 방점이 있어서 ‘위험 회피’ 직관이 작동하여 상대가 불리한 타협안을 내 놓아도 수용하게 되는데 반하여 10억을 벌어들일 확률이 5%로 매우 낮은 확률일 때는 마치 복권처럼 성공했을 때의 큰 이익의 희망에 눈이 멀어 ‘위험 추구’ 직관이 작동하여 상대가 이로운 타협안을 내 놓아도 거절하는 결정을 하게 된다. 반면에 손실의 관점에서는, 10억을 손해 볼 확률이 95%로 높은 확률의 확실성을 가질 때는 이득에서와는 반대로 손실을 피할 수 있다는 희망에 눈이 멀어 ‘위험 추구’ 직관이 작동하여 상대가 이로운 타협안을 내 놓아도 거절하고, 10억을 손해 볼 확률이 5% 정도로 매우 낮은 확률일 때는 실패했을 때의 두려움에 방점이 있어서 ‘위험 회피’ 직관이 작동하여 상대가 불리한 타협안을 내 놓아도 수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베르누이의 효용 이론 즉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확률을 계산하고 따져 보아서 기대효용이 높은 쪽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카너먼의 전망이론에 따라 확률보다는 이익과 손실에 민감한 직관에 의하여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손실에 민감한 이유는 행동경제학에서 정의한 ‘소유효과’ 즉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일단 소유하면 그 대상에 애착(소유욕)이 생겨 객관적인 가치 이상을 부여하는 심리적인 현상 때문 이라고 설명하면서 이 때문에 생기는 손실회피 경향은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현상을 유지하고 가능하면 변화를 최소화하려는 보수적 성향의 막강한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센델의 ‘공동선의 좋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첫째, 공동선의 프레이밍, 둘째, 시스템 1의 편향과 착각의 오류 보정, 셋째, 시스템 2의 이성적 결정을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하나씩 살펴보면, 먼저 공동선의 프레이밍은 공동체가 무분별한 경쟁을 지양하고 서로 협력하여 '내쉬의 균형‘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전통적인 경제학과 자유시장이 아닌 스키델스키와 쉴러의 행동경제학을 기본으로 하고 이에 더불어 풍요로운 삶만이 아니라 가치 있는 삶도 함께 추구하도록 구축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착각의 오류에 대한 보정은 앞에서 설명한 시스템 1의 직관적 결정에 따른 인상, 직관, 감정 등은 이미지와 인지적 편안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특히 변화가 필요한 상황 등에서는 앞에서 설명한 각종 착각의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고, 나태하고 귀찮아하는 시스템 2를 언제든 필요할 때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세 번째 시스템 2 활성화에서 함께 다루기로 한다. 다만, 이러한 시스템 1의 ’착각의 오류‘가 우리에게 나쁘게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긍정적인 역할도 하고 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를 프린스턴대학의 “반신불수 환자에 대한 인식조사”를 사례로 설명하면, 각종 사고로 반신불수 상태가 된 환자와 그의 가족 그리고 일반인에게 반신불수 환자에 대해 느끼는 우울한 기분의 정도를 인식조사 하였는데, 그 결과 당사자인 환자와 그 가족은 현재 우울 정도가 75%로 심하다가 1년 뒤 조사에서는 41%로 급격하게 감소하였으나, 일반인은 현재 반신불수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70%로 당사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 우울 정도를 보였고 이는 1년 뒤에도 68%로 크게 달라지지 않음을 알았다.[참고 3.19] 이 결과는 당사자와 가족의 경우, 정신적・육체적 충격과 고통 그리고 생활의 불편함 등에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다가 일상생활을 유지하면서 진화의 공통 키워드인 ’생존과 번식‘의 생존 본능에 의한 적응과 반복되는 일상의 ’진실 착각‘으로 인한 이미지적 편안함으로 점차 안정되어 1년 정도가 지나면 스트레스가 낮아지는 것일 것이다. 반면에 사고와 상관없는 일반인의 경우 ’반신불수‘라는 상황만으로 ’초점 착각의 오류‘에 의해 환자 당사자가 아님에도 당사자와 비슷한 스트레스를 받고 이는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1년이 흘러도 그 스트레스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초점 착각의 오류‘는 우리가 삶의 고통과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를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안정시키는 순기능의 역할을 하기 도 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속담처럼 “세월이 약인 것이다.” 그림 3.9에 보인 것처럼 직장인이 실직을 당했거나, 이혼과 사별 등의 삶의 부정적인 사건을 겪어도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삶의 만족도‘를 ’초점 착각의 오류‘에 의해 원래대로는 아니지만 상당한 수준으로 회복시킬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점화 효과,‘ ’후광 효과,‘ ’진실 착각‘ 등과 같은 착각의 오류와 ’주목착각‘과 같은 희망회로를 ’긍정의 힘‘으로 활용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그림3-9.png

그림 3.9. 삶의 경험에 따른 삶의 만족도 [참고 2.8]


이제 마지막 세 번째로 시스템 2의 이성적 결정을 활성화하는 것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오늘날 우리를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준 진화의 생존본능, 즉 우리 뇌의 에너지 최소화 전략은 그림 3.7에서 의사결정과정의 시스템 1은 순간적인 직관적 결정을 하도록, 시스템 2는 시간을 갖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합리적 결정을 하도록 우리를 진화시켜왔다. 이에 따라 시스템 1은 내외부 상황 변화에 따라 매우 바쁘게 반응하면서 매순간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결정을 내림과 동시에 시스템 2에 이를 통보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변화에 따라 시스템 2가 매순간 반응하기에는 뇌의 에너지 소모가 너무 많아 우리는 전략적으로 가능하면 문제를 회피하거나 자아상에 따라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진화되었기 때문에 시스템 1의 직관 단계에서부터 이미지적, 인지적 편안함과 익숙함을 추구한다. 이는 아주 오래전 생존의 위협이 상존하는 원시 정글 속에서는 매우 중요한 생존에 결정적 역할을 해왔지만, 현대와 같이 문명사회에서는 생명을 위협하는 안전사고 보다는 각종 피싱이 난무하며 우리를 위협하기 때문에 시스템 1 보다는 시스템 2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과거에서와 같이 시스템 1은 바쁘고, 시스템 2는 나태하고 게을러서 만물의 영장인 우리 인간이 비합리적인 결정과 행동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단골집’을 선호하는 사례를 검토해 보자. 우리는 보통 생필품을 사기위해 한번 다니던 슈퍼를 계속 단골로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 단골 슈퍼가 집에서 멀고 가격도 비싸고 물건도 신선하지 않은데도 말이다. 어느 날 집에서 더 가까운 곳에 새로운 슈퍼가 개업했는데 가격도 더 싸고 물건도 더 신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로운 슈퍼로 옮기기 보다는 여전히 단골 슈퍼를 다닌다. 이는 단골 슈퍼가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시스템 1이 인지적 이미지적 편안함을 추구하는 직관적 결정을 내려 버렸기 때문에, 시스템 2가 정신을 차리고 이성적 판단으로 보정을 해 줄 때 까지는 이렇게 왜곡된 편향은 계속될 것이다.[참고 3.19] 한 가지 더, 그림 3.9의 삶의 경험에 따른 삶의 만족도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우리는 이미 우리가 삶을 살면서 실직, 이혼, 사별 등과 같은 부정적인 사건을 경험을 하였을 때 시스템 1의 직관에 의한 ‘착각의 오류’에 의해 삶의 만족도가 회복되는 긍정적 사례를 이해하였다. 이제 그럼 긍정적 이벤트인 결혼은 어떤가? 그림 3.9에서 보는 것처럼 결혼을 할 때까지 삶의 만족도는 증가하다가 결혼 후부터 삶의 만족도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시 이전 상태로 복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경우도 부정적 사건과 마찬가지로 시스템 1의 직관에 의한 ‘착각의 오류’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상황이 조금 더 복잡하다. 부정적 사건은 나 개인의 문제이지만, 결혼은 나 개인만이 아니라 최소한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두 사람 이상의 관계로 얽힌 복합적인 문제인 것이다. 그림 3.9에 의하면 두 사람은 시스템 1의 직관에 의한 호감에 의해 연애를 시작하고, 사랑의 꽁깍지에 눈이 멀어 각종 ‘착각의 오류’에 의해 사랑은 증폭되어 마침내 결혼에 골인했으며, 삶의 만족도는 정점에 이르렀다. 자 이제 부터가 문제다. 대부분의 경우 결혼하고 난 후에는 이제 배우자가 가족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부모님이나 형제, 자매처럼 인지적 편안함으로 살아도 상대 배우자가 모두 이해 해 줄 거라고 생각하고, 연애할 때와 달리 시스템 2를 가동하지 않아 버리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과 또 이 행복이 영원히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잔뜩 품은 시스템 1에 의한 ‘감정예측 오류’에 부부 모두 빠져 버려서 서로 상대에게 시스템 2를 가동하라고 일방적인 요구를 하는 경우일 것이다. 반면에 부부 모두 사랑하는 상대를 위하여 내가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사랑 받을만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도록 시스템 2를 유효적절하게 가동한다면 이 부부의 삶의 만족도, 즉 행복은 결혼 후에도 계속 상승하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상대를 주의 깊게 살펴서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도록 노력하지 않고, 상대가 공감하지 않는 가치에 각자 몰입하면 각각 착각의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게으르고 나태한 시스템 2를 일깨워 나와 나의 배우자는 물론 나와 관련된 공동체에서 삶의 만족도를 향상시킬 수 있을까? 너무 거창한가? 일단 나무늘보처럼 늘어져 있는 시스템 2를 시스템 1의 반응에 따라 좀 더 민첩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비결은 없을까? 있다. 카너먼은 바로 ‘시간 활용’이라고 대답 한다. 시간 활용은 삶에서 우리가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한 영역이다. 물론 우리가 절대적인 시간을 고무줄처럼 늘리거나 줄일 수는 없다. 카너먼이 이야기하는 ‘시간 활용’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시간을 관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타고난 천성 즉 내향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사람처럼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더 쾌활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자신의 삶에서 자신의 가치에 따라 시간의 경중을 평가하고 이에 맞게 시간을 관리해서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예를 들면 남 보다 빨리 승진하는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 삶의 가치라면 야근도 불사하는 업무로의 시간 집중이 중요하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삶의 가치라면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데 시간을 더 쓸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만족도, 즉 행복을 더 끌어 올리는 제일 쉽고 효율적인 방법은 바로 ‘시간 활용’인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WOOP에 의한 욕망 제어’ 요소 중에서 우리가 이루어 내고자 하는 ‘성과(Outcome)’인 행복한 삶에 현대의 자본주의, 자유주의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풍요’만 추구하면 되는지, 도대체 ‘풍요’는 얼마나 있으면 충분한지, 이를 위해 사회는 어떠한 정책을 펼쳐야하는지 등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 ‘욕망’을 따라 무작정 ‘풍요’만 추구한다고 행복한 삶의 만족도가 같이 증가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사회가 정책적으로 자본의 탐욕에 맞설 7가지 기본재를 보장하고, 피싱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집행할 수 있다면 망나니 같은 욕망을 제어할 우리 ‘이성’의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여기에 사회가 센델의 ‘공동선의 좋은 삶’으로 프레이밍하고 함께 ‘시스템 2’를 활성화하도록 노력한다면 우리가 ‘착각의 오류’와 ‘확증 편향’의 가능성을 줄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하는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것 또한 어렵지 않은 희망임을 알았다. 여기에 더하여 이제 부터는 행복한 삶을 위하여 ‘풍요’와 더불어 ‘가치 있는 삶’이어야 하고, 이를 위한 삶의 목표(Wish)는 ‘실현가능’한 욕망이어야 하며, 이들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한 계획과 실천(Plan & Action)은 유한계급을 꿈꾸는 무위도식(無爲徒食)이 아니라 유위도식(有爲徒食)하는 ‘충실한 삶’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WOOP에 의한 욕망 제어’의 노력이 한 개인만의 수양이 아니라 이를 뛰어넘어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 의한 공동선의 문제이기 때문에 ‘WOOP에 의한 욕망 제어’의 방해 요소(Obstacle)들은 화이부동(和而不同)한 사회적 관계의 걸림돌이므로 이의 해소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keyword
이전 16화3.2 가야 할 길(道) : 존엄성_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