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3 존엄성실천하기_2
존엄성 실천하기
우리는 이미 이 장을 시작할 때 캐너먼의 합리적 이성에 의한 존엄성 실천하기를 그림 4.2에 보였다. 그런데 우리는 이중에서 세계관과 자아상을 재정립하고 이들이 ‘욕망’에 쉽사리 흔들리지 않도록 하고자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이렇게 재정립된 세계관과 자아상에 의해 확립된 존엄성을 우리가 어떻게 유지하고 어떤 방법으로 실천할 것인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볼 차례이다. 이를 알기 쉽게 표현하기 위하여 ‘그림 4.2. 존엄성 실천하기’를 소환하고, 여기에 ‘그림 3.2. 인간의 본성’과 ‘그림 3.4. 공학의 자동제어 개념’을 활용해서 WOOP 사고법에 의한 존엄성 실천하기를 그림 4.6과 같이 표현해 보았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살아가면서 샘솟듯이 솟아오르는 수많은 욕망(Wish)들을 맹자의 인의예지의 마음이, 칸트의 이성이 어떤 것은 억누르고, 어떤 것은 적절하게 조절하고, 어떤 것은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탐욕에 안달이 난 것은 이를 성취하기 위하여 계획을 수립하고 이 계획을 실행(Plan & Action)에 옮긴다. 따라서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욕망들에 그저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존엄하고 가치 있는 성과(Outcome)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그림 4.6에 보인바와 같이 이들 욕망이 목표(Wish)로 설정되면 이들이 이루어졌을 때 성취되는 성과(Outcome)가 자신의 자아상과 가치관에 맞는지,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 어떤 방해요소(Obstacle)들이 있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그리고 이를 효율적으로 성취하기 위한 계획과 실천(Plan & Action)을 합리적 이성으로 매순간 점검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
(a) WOOP 사고법에 의한 존엄성 회복
(b) 합리적 이성에 의한 존엄성 실천
그림 4.6. WOOP에 의한 존엄성 실천하기
우리는 지금까지 세계관과 자아상을 재정립해서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많은 논의를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의지를 다짐하고 다졌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이들을 실제 실천하여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를 위하여 그림 4.6(a)처럼 WOOP 사고법을 적용하여 의지의 실현 가능성을 최대화하도록하고, 그리고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합리적 이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림 4.6(b)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점검하고 성찰하며 실천하도록 한다.
첫 번째로, 그림 4.6(a)의 WOOP 사고법에 의한 존엄성 회복을 하나씩 단계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STEP 1: 성과(Outcome)는 공동선의 삶을 위해 가치 있고 실현가능해야 한다.
우리가 얻고자 하는 성과는 누가 뭐라 해도 공동선의 행복한 삶인 ‘좋은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불과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만들어진 유한계급사회(leisure class)가 각종 형태로 진화하여 고도화되고 기술발전과 이에 따른 산업혁명 등으로 풍요로워질수록,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며 신자유주의 세상으로 치달릴수록 ‘좋은 사람과 함께’의 가치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의 풍요에 가려져 우리 모두가 풍요에만 매달린다는 것에 있다. 그림 4.6(a)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가 원하는 성과는 존엄성을 가진 성과이고, 그것이 나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또 다른 존엄성을 가진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존엄성을 가진 성과이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공자의 군자회덕 소인회토(君子懷德 小人懷土,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돈을 생각한다.)의 가르침을 소환해야만 한다. 세상 모두가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에 더해 신자유주의를 치달리고 있어도 우리는 ‘좋은 사람과 함께’라는 덕도 같이 생각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는 세상의 것 모두를 다 버리고 오로지 예수의 ‘사랑’만, 붓다의 ‘자비’만을 따르자는 것이 아니라, 스키델스키의 ‘How much is enough?’의 의미에 대한 성찰을 통해 지금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의 풍요에만 매달리던 행태에서 풍요를 각자 실현 가능한 만큼 덜어내고 그에 상응하는 만큼만이라도 ‘좋은 사람과 함께’라는 덕을 함께 이루도록 하자는 것이다.(구체적으로는 풍요를 20%정도 덜어내자는 것이고 그 이유는 목표에서 논의할 예정임.)
왜냐하면 현대는 신자유주의가 세상의 ‘규율권력’이 되어 버려서 세상의 프레임대로 이렇게 우리의 삶을 산다면,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가까운 장래에 6차 대멸종을 초래할 수밖에 없고, 또한 니체와 푸코가 설파한 것처럼 비록 우리가 성공한 삶을 살았더라도 온전히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 살아낸 자신의 삶이 아니기에 은퇴 후에 삶의 허무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의 자본주의가 뭐라고 유혹하든 흔들리지 말고 노자의 속인소소 아독혼혼(俗人昭昭 我獨昏昏)으로 위안 삼으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의 풍요를 20% 정도 덜어내고 그 자리에 ‘좋은 사람과 함께’라는 덕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공동선의 행복한 삶을 실현하도록 하는 성과여야 하는 것이다.
STEP 2: 목표(Wish)는 지혜롭고 실현가능한 욕망이다.
우리는 욕망을 억지로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가치와 조화를 이루도록 욕망을 선택하기 위하여 그리고 무조건 ‘하면 된다.’라는 ‘긍정의 힘’의 희망 고문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고려함으로서 ‘실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하여 WOOP 사고법을 적용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의 목표는 지혜롭고 실현 가능하도록 설정해야 한다.
1) 지혜로운 목표 :
▫삶의 여유 유지 : 공동선의 행복한 삶을 실현하기 위하여 풍요만이 아닌 ‘좋은 사람과 함께’의 덕을 조화와 균형을 이루도록 성과를 얻으려면 오히려 삶의 여유가 필요하다. 능력과 상관없이 무조건 ‘하면 된다.’라는 ‘긍정의 힘’만으로 필사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희망 고문’에 불과하다. 노자의 궁력거중(窮力擧重)을 되새겨야 한다. 마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노리는 역도 선수처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무게를 들어 올리는 것은 오로지 그 일에만 죽을 둥 살 둥 매달리는 것 말고 다른 일은 더 하는 것은커녕 다른 일을 더 시도할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직관오류를 줄이고 합리적 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아상이 고갈 상태에 빠지는 것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 즉, 우리는 충동적이지 않고 자기 통제가 완벽한 이성적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정신력과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몸이 피곤하거나, 여러 가지 일이 한꺼번에 몰려들거나 하여 삶의 여유가 없으면, 시스템 2가 피곤하고 귀찮아서 스스로 자기통제를 포기하는 자아 고갈 상태에 빠져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목표가 ‘좋은 사람과 함께’의 덕이 풍요와 함께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성과를 실현가능하도록 하기 위하여 공자의 지호락(知好樂: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의 가르침을 되새겨 다음과 같이 설정할 필요가 있다.
▫메멘토모리(Memento Mori) : 목표(wish)는 메멘토모리로 설정하자. 로마 시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개선장군의 환영 퍼레이드 중에 노예에게 장군의 뒤를 따르며 ‘메멘토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외치게 했다고 한다. 승리의 기쁨에 취해 교만에 빠지지 않고 겸손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목표를 설정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자신의 능력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겸손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목표(wish)를 설정할 때 목표를 성취했을 때 얻는 성과(outcome)에 대한 욕심 때문에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 보다 훨씬 높고 크게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과신과 자만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시중에 떠도는 말에 “근불감은 후회를 남기고 근자감은 경험을 남긴다.“라는 말이 있다. 근거 없는 불안감으로 자신감을 상실하여 망설이다가 일을 그르치고 후회하지 말고, 근거는 없지만 중꺽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의 자신감으로 일을 추진하면 설사 실패하더라도 경험이라도 남으니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고 ‘하면 된다.’의 정신으로 용기 있게 실천하며 살아가라는 격려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세상은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하면 된다.’의 정신으로 우리를 밀어붙인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 가진 능력과 재능이 서로 다르다. 축구와 운동에 재능이 없는데 목표가 손흥민이나 메시와 같은 선수가 되는 것이라면 ‘하면 된다.’의 ‘긍정의 힘’만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는 뻔하다. 그저 ‘희망 고문’일 뿐인 것이다. 프란체스코 성인이 했던 기도문 “주여, 바꿀 수 없는 것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침착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분별하는 지혜를 내게 주소서.”의 의미를 되새겨 자신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을 자신감을 가지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의 최대치와 재능을 겸손하게 파악하고 이에 맞게 목표(Wish)를 설정해야 하는 것이다.
▫아모르파티(Amor Fati) : 자신의 능력을 겸손하게 파악했으면, 자신의 능력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모르파티하자. 아모르파티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넘어서려는 욕심을 버리고 주어진 능력 안에서 삶을 즐기며 살아가자는 것이다. 공자는 “활쏘기의 목표는 명중하는 것에 있지 않고, 공부의 목표는 과거 시험에 급제하여 출세하는 것에 있지 않다. 이는 사람마다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활쏘기의 목표는 양궁 선수들에게는 당연하게도 백발백중에 있겠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심신을 단련하며 즐기는데 있고, 공부의 목표는 출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지혜를 깨달아가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데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지식과 지혜를 온전하게 즐기다 보면 자신의 능력과 재능에 알맞은 일을 할 수 있게 되고 삶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와 붓다의 가르침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에 과도한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니체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우연하게 태어나 우연하게 죽는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알 수 없으며, 죽을 때 이 세상에서 이루었던 어떤 것도 가져 갈 수 없다. 그래서 니체는 세상의 규율권력에 굴복하지 말고 초인으로서 자신만의 삶을 즐기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규율권력이란 중세시대에는 기독교 윤리였고, 현대에는 신자유주의의 황금만능 자본주의이다. 따라서 아모르파티 즉,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과 재능을 사랑하고 이에 맞는 삶을 찾아 지호락(知好樂)을 누리면 되는 것이다.
▫카르페디엠(Carpe Diem) : 우리는 공동선의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하여 풍요와 가치가 조화를 이루는 성과가 실현 가능하도록 지혜로운 목표 설정 방법에 대하여 함께 논의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가장먼저 합리적 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파악(메멘토모리)하고, 이를 인정(아모르파티)하여 받아들인 다음, 이러한 삶을 즐기자(카르페디엠)고 제안하였다. 여기서 카르페디엠은 ‘현재를 즐겨라.’ ‘지금 이 순간에 충실 하라.’는 뜻이다. 그냥 지금 현재를 한량처럼 즐기라는 의미가 아니라 공자의 지호락(知好樂)이요, 노자의 거피취차(去彼取此;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라.)하라는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인 ‘주기도문’처럼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인 것이다. 예수는 죽음 이후의 사후 세계 즉 천당이 아니라 지금 여기 현실 세계 즉 이 땅을 천당처럼 만들자고 설파했는데, 우리는 여전히 지금이 아닌 죽은 뒤 천당 가는 구원을 받기 위해 기도에만 매달리고 있지 않은가? 천당의 구원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이 땅이 천국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농부가 봄철에 모내기는 하지 않고 가을에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미래에 풍년을 원하거든 지금 모내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저것(풍년)을 버리고 이것(모내기)을 취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노자의 거피취차(去彼取此)로 카르페디엠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붓다의 금강경 ‘사여게’에도 있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속세의 모든 이치는 꿈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갯불과 같기 때문이니 마땅히 이렇게 살피고 헤아려서 관찰해야 한다.)’ 붓다는 말한다. 세상의 삶이라는 것이 한낱 꿈(몽:夢)이니 두려울 것 없다. 한낱 환영(환:幻)이니 애착, 집착할 것 없다. 한낱 거품(포:泡)이니 헛된 것에 속지마라. 한낱 그림자(영:影)이니 거짓에 속지마라. 삶이라는 것이 기껏해야 아침 이슬(로:露)이요 번개(전:電)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이다. 너무 욕심 부리지 마라. 그러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즉 마땅히 이렇게 살피고 헤아려서 관찰하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한여름 이슬 같은 삶을 거피취차(去彼取此)로 카르페디엠 하며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목표가 지혜롭고 실현가능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메멘토모리: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능력에 맞는 목표 설정→ 아모르파티: 주어진 능력과 목표 인정→ 카르페디엠: 능력에 맞는 목표를 성실하게 성취해 나가면서 여유 있는 삶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2) 실현 가능한 목표 :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대로 지혜롭고 실현가능한 목표(wish)를 설정했다고 할지라도 그 목표가 비록 우리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지는 않았지만, 능력의 최대치 또는 한계치로 설정했다면, 우리는 이를 성취하기 위하여 우리가 갖고 있는 능력 모두를 쏟아 부어야만 겨우 원하는 성과(outcome)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궁력거중(窮力擧重)의 최선을 다해야하기 때문에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없게 되어, 자아상 고갈로 합리적 이성을 유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진정한 삶을 즐길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갖고 있는 능력과 재능의 어디까지를 목표 설정에 반영해야 할까? 이에 대해 파레토 효과를 적용해보면 어떨까? 원래 파레토의 법칙은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가 발표한 소득분포의 불평등도에 관한 내용으로 전체 결과의 80%는 전체 원인 중 20%에서 비롯된다는 법칙이다. 예를 들면 국가 전체 소득의 80%를 국민의 상위 20%가 차지한다거나, 20%의 소비자가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코넬리아 마크는 이 법칙을 기본으로 파레토 효과를 발표하였다. 이는 우리가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그 임무를 완수하는데 필요한 전체시간 중 20% 시간으로 80%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고, 나머지 20% 결과를 위해 전체시간의 80% 투입해서 100%의 결과를 성취한다. 따라서 프로젝트 하나를 100% 완수하는 것 보다 두 가지 프로젝트를 80% 처리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를 세상의 자본주의적 경제 논리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제까지 논의해 온 진리의 가치주의적 세계관으로 바라본다면 어떨까? 즉 두 가지 프로젝트를 80% 처리해서 생산성을 끌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프로젝트의 80% 성과에 만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목표(wish)와 성과(outcome)를 100%가 아니라 80%에 만족할 수 있다면, 즉 20%의 욕심을 덜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이를 성취하기 위하여 20%의 시간만 투입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설정한 성과와 지혜로운 목표에서 그것의 20%를 비우면 무려 80% 정도의 시간 여유가 생겨 즉 삶의 여유를 가지고 합리적 이성으로 목표를 성취해 나아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좋은 사람과 함께’의 가치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공동선의 행복한 삶을 진정으로 즐기며 지호락(知好樂)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설정한 지혜로운 목표에서 20% 정도를 덜어내 실현 가능성을 최대화하도록 하자.
STEP 3: 방해 요소(Obstacle)들은 화이부동(和而不同)한 사회적 관계의 걸림돌이다.
우리는 아무리 훌륭하고 가치 있는 성과와 지혜롭고 실현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성실하게 실현해나갈지라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상황에 따라 우리의 삶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영향이 긍정적이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의 목표를 실현해 나아가는데 부정적으로 즉 방해요소(obstacle)로 작용한다. 이러한 방해요소는, 사르트르의 의견을 빌리자면, 크게 즉자(의식의 대상)적 요소와 대자(의식)적 요소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즉자적 요소는 우리가 과도한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의 지식과 상식선에서 자율성을 갖고 환경을 통제하면서 이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거나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대자적 요소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해 보도록 하자. 우리는 그림 4.6(a)에 보인 것처럼 TPO(Time, Place. Occasion)에 따라 변화하는 자아인 대자(자기 자신)가 수많은 또 다른 대자(타인)들과 관계를 맺고 사회를 이루어 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삶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샤를르 드 푸코의 시 한 구절 “삶이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 가가 아니라 누가 곁에 있는가에 달려있음을 나는 배웠다.”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미 알고 있다. 더구나 우리의 행복에 있어 관계의 중요성은 하버드대에서 장장 70년 연구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었다.[참고: 3.2.3 관계 그리고 소속감] 그러므로 자신의 주변에서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타인이라는 대자들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방해요소들을 제거하고 슬기롭게 극복하여 긍정적 관계를 형성(positive relation with others)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가 첫 번째로 생각해야 될 것이 공자의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마음이고, 존엄한 자아상의 확립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동굴의 비유로 지적한 것처럼,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인식주체를 점검해야 한다고 했던 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즉 자아상이 잘못되어있으면 세상을 또 다른 대자(타인)들을 제대로 보고 제대로 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축의 시대 성현 뿐 아니라 이 시대의 석학들의 가르침을 통해 깨달았고 나름의 자아상을 정립하였다고 믿는다. 그러니 이 존엄한 자아상으로 존엄한 자아상을 가진 또 다른 대자와 어떻게 관계를 형성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논의해보자. 이를 위해 이미 다루었던 그림 3.9의 삶의 경험에 따른 삶의 만족도를 다시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그림에서 사별, 실직, 이혼 등과 같이 당사자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것들은 불행한 일들로 인한 방해요소로 인하여 당시에는 삶의 만족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초점 착각의 오류에 의한 긍정의 힘과 함께 스트레스에 스스로 적응하며 삶의 만족도를 회복한다. 그러나 결혼의 경우는 반대로 행복한 일들로 삶의 만족도가 상승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삶의 만족도가 점차 감소하는 것이다. 전자는 당사자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에 초점 착각의 오류가 긍정의 힘으로 작용하면서 스스로 적응하고 감내하면 되지만, 후자의 경우는 나라는 대자와 또 다른 대자와의 관계이기 때문에 혼자 노력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닐 뿐 아니라 초점 착각의 오류가 긍정의 힘이 아닌 오히려 방해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 모두가 아래 푸코의 시 일부와 같은 자세로 살아간다면 충분히 공동선의 행복한 삶을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임을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린 일일 뿐임을 -샤를르 드 푸코 -
하지만 우리는 상대와 함께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단꿈에 빠지는 감정예측오류의 주목착각에 빠져 관계 자체에 대한 과잉 기대와 회상용이성편향에 의해 서로 내가 상대에게 잘해준 것 위주로 기억하는 것에서 오는 충돌 등이 방해요소(obstacle)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관계를 형성할 때 상대를 나처럼 존엄한 자아상을 가진 대자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점화효과, 후광효과 등 직관적 오류와 함께 보여 지는 즉자로 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존엄한 자아상을 가진 또 다른 우리들과 긍정적 관계를 형성(positive relation with others)하기 위해서는 합리적 이성으로 상대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고, 상대를 즉자가 아닌 대자로 대하여야 하며, 상대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도록 노력해서 상대와 공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STEP 4: 계획과 실천(Plan & Action)은 유위도식(有爲徒食)하는 충실한 삶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림 4.6(a)에 보인바와 같이 WOOP사고법을 적용한 우리의 존엄성을 회복하기 실현 방안을 논의해 왔다. 이를 위하여 풍요와 가치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성과(Outcome) 그리고 이를 성취하기 위한 지혜롭고 실현가능한 목표(Wish) 설정, 여기에 목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방해요소(Obstacle)들에 대한 극복 방안들까지 살펴보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원하는 목표대로 실현해서 공동선의 행복한 삶의 성과를 효율적으로 성취하기 위한 계획과 실천(Plan & Action) 방안에 대하여 논의하도록 하자.
이 계획과 실천의 기본자세는 유한계급(Leisure Class)의 무위도식(無爲徒食)이 아니라 유위도식(有爲徒食)의 충실한 삶이어야 한다. 한마디로 공자의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도록 하지 말라.)의 자세로 꾸준하고 성실하게 지호락(知好樂)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실한 자세를 바탕으로 조금만 어려워도 신 또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갈구하는 노예도덕이 아니라 니체의 초인 즉 본능과 의지 그리고 잠재능력을 건강하게 발휘하는 군주도덕으로 자신만의 삶의 가치를 창조하며 살아가야 한다. 여기에 이 WOOP사고법을 적용한 프로그램이 어떠한 방해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목표에 따라 존엄성을 회복하고 공동선의 행복한 삶이라는 성과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즉 이 제어 프로그램이 강인성(Robustness)을 갖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의 계획과 실천(Plan & Action)에 긍정적인 마인드의 자기 수용성(Self acceptance)과 합리적 이성으로 매순간 점검하고 보완하는 성찰이 필요하다.
자기 수용성(Self acceptance)은 한마디로 긍정의 힘을 믿고 실천하는 것이고, ‘삶이란 무슨 사건이 일어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 하느냐에 달린 것이다.’의 자세로 삶을 사는 것이다. 붓다가 이야기하는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마음 자세인 것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가치를 향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매순간 점검과 성찰을 통해 보완하는 것이다. 이 점검과 성찰이 제대로 실행되려면 우리의 합리적 이성이 필요하고 이는 우리의 직관적 오류, 인지 착각, 주목 착각 등과 같은 비합리적 요소를 최소화하도록 시스템 2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다음 합리적 이성에 의한 존엄성 실천에서 자세하게 다루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