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는 ‘2. 우리가 걸어온 길’에서 우리 인류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축의 시대 성현들의 지혜와 교훈을 통하여 우리 인류의 삶을 성찰한 다음, ‘3. 사람, 가야할 길은?’에서 우리 스스로 우리의 자아상을 존엄하도록 재정립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첫째, 이 세상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둘째, 칸트의 존엄을 사르트르의 연대로 확장해야하며, 셋째, 마이클 센델의 공동선의 삶으로 프레이밍하자고 성찰하였다. 그리고 ‘4. 나뚜라’에서는 우리 뇌의 가소성을 믿고, 위 세 가지 성찰을 바탕으로 우리의 생각, 즉 세계관과 자아상을 변화시켜 우리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공동선의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실천 방안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마지막으로 다소 추상적일수도 있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인류에게 닥친 기후위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에너지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탄소 제로’를 위해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실천 방안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그레타 툰베리, 2018년 9월, 15세에 불과한 어린나이의 한 소녀가 환경운동을 시작한다. 이후 매주 금요일마다 지구 환경 파괴에 침묵하고 기후 변화 대응에 적극적이지 않은 주류 정치인들과 어른들에게 반항하는 의미에서 등교 거부운동을 주도하여 주목 받기 시작하였고, 툰베리가 주도하는 이 시위는 2019년 2월 15일을 기점으로 125개국 2천여 도시로 확산되었다. 2019년엔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어린 소녀가 당차게도 세계 주요국 정상들을 향해 “당신들은 우리(아이들)에게 깨끗한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라며 "How dare you!"라고 일갈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녀는 2019년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다.[참고 4.5] 15세 어린 소녀가 참 당차고 훌륭한 생각으로, 자기 일에만 빠져 사는 이 땅의 어른들에게 신선한 경종을 울려주었다. 그녀의 선한 영향력은 전 세계에 울려 퍼져 우리나라의 청년들도 지구를 위해 미래를 위해 행동을 개시하였다. 그림 4.9는 대학생을 주축으로 하는 청년기후 긴급행동의 청년들이 청와대 앞에서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을 비판하면서 완전한 탈 석탄 정책을 추진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기자회견 장면이다. 이는 KBS가 2020년 10월 방영한 “새로운 시작 – 빨간 지구위의 사람들” 프로그램 내용 중 한 장면을 캡쳐한 것이다.
그레타 툰베리, 그녀의 기후위기에 대한 환경운동은 이상과 같이 전 세계에 참 많은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2번에 걸쳐 노벨 평화상 후보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툰베리를 비롯한 수많은 환경운동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지구의 기온 상승을 기존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유지하자는 목표를 설정한 세계 주요국 정상들의 ‘파리기후변화협약’은 그 실천 과정에서 삐거덕거리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2017년 트럼프 미 대통령의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 선언으로 큰 위기를 맞았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미국의 기후변화협약 탈퇴가 우리 인류 재앙의 방아쇠가 될지도 모른다고 세계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는 눈앞의 편의와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의 탐욕을 더욱 부추기는 촉매가 되어 버렸다.
그림 4.9. 청년기후 긴급행동 [참고 4.6]
이와 관련하여 한겨레신문의 “인류는 기후변화를 막을 기회를 영원히 놓쳤을까”라는 기사를 중심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그간의 노력을 살펴보자.[참고 4.7] 사실 우리 인류는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기후변화를 이미 1950년대부터 인지하고, 그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미국은 1956년부터 탄소 방출량과 그 효과를 측정하는 ‘마누아 로아 이산화탄소 프로그램’을 실시하였으며, 1964년부터는 향후 기후변화로 인한 문제들이 야기하는 전 세계의 경제적, 정치적 충격은 상상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측하며, 기후변화를 국가의 사활이 걸린 안보위협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국제적으로는 1979년 제네바에서 열린 제1회 세계기후회의를 시작으로 국제사회는 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한 구속력 있는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하여, 1980년대 말 국제사회는 탄소 배출량을 2005년까지 20% 감축하고 동결하는 합의를 이루는데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미국의 ‘탄소방출 의무 조항 폐기’ 주장에 막혀 각국이 안정적인 탄소 방출을 지지하는 성명 발표 수준으로 후퇴해 버린 것이다. 아마도 이 합의가 그때 실천됐다면 지구온난화는 기온 상승이 섭씨 1.5도로 멈췄을 것이다. 미국은 1997년 교토의정서도 상원의 반대로 비준을 무산시키더니 2017년 트럼프의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 선언으로까지 이어지며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에 협조는커녕 오히려 저항을 촉발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비록 그 후임인 바이든 미 대통령이 2021년 취임 후 다시 가입하긴 했지만, 1.5도의 목표를 향한 세계 각국의 발걸음은 무겁고 더디기만 하다. 이대로 가면 기후위기로 6차 대멸종을 초래해 최상위 포식자인 우리 인류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눈감고 태평성대를 노래하고 있을까? 마치 가스불이 켜져 물이 점점 데워지고 있는 냄비 안에서 그저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개구리들처럼 말이다. 이것이 전적으로 미국의 비협조적인 태도만의 문제일까? 눈앞의 편의와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우리 모두의 이기심은 관계없는 것일까? 화성에도 가고 우리를 닮은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고 ChatGPT를 활용하는 이렇게 훌륭한 우리를 무엇이 도대체 이렇게 비합리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린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거야? 그리고 우리 인류는 기후위기를 막을 기회를 영원히 놓쳐버렸을까?
아마도 바로 지금이 기후위기를 막을 마지막 기회이고, 이 문제의 핵심은 경제가 아닐까? 우리의 행복이 “좋은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인데, 현대의 우리 사회가 “좋은 사람과 함께” 보다는 오로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즉 자율성을 기반으로 풍요만을 쫓는 신자유주의에 매달려 있기 때문인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주의의 규율권력이 우리의 주관적인 행복을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있겠어? 힘을 내. 더 좋은 것이 있잖아.”하면서 끊임없이 조작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타오르는 욕망을 절제하고 만족하기 어려운데 불쏘시개처럼 계속해서 부추기고 있다. 우리 인류는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두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국민총생산(GNP), 국내총생산(GDP) 등의 경제성장률을 희생해 가면서 까지 기후위기를 해결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세계 주요국 정상들이 합의한 ‘파리기후변화협약’도 우리가 지금껏 매달려온 경제적 생산 활동은 계속하면서 이에 필요한 에너지를 석유, 석탄과 같은 화석 연료에서 태양광, 풍력과 같은 그린에너지로 전환하여 탄소 배출을 감소시키자는 것이다. 물론 기존 화석 연료를 100% 그린에너지로 전환하면 탄소 제로를 쉽게 달성할 수 있지만, 각국 정부에서 당장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은 기술적・경제적 제약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툰베리는 탈 탄소를 지금 당장 하라고 각국 정부를 향해 "How dare you!"만을 외치고 있고, 각국 정부는 생상성과 경제성장률을 희생해 가면서 까지 탄소 배출 감소 정책을 펼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국민들은 언제나 지금 보다 더 나은 풍요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는 것인가? 나는 있다고 믿는다.
지금까지 “3. 우리가 가야할 길”에서 ‘공동선의 좋은 삶’을 이룩하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한발 더 나아가 이미 이를 실천하는 존엄한 사람들이라면 정답은 아닐지라도 해답은 찾아낼 수 있고 경제의 풍요 쯤 조금 희생하더라도 기꺼이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모두 존엄한 사람이라면 오로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즉 자신의 풍요만을 추구하기 보다는 “좋은 사람과 함께” 즉 소속감을 기반으로 한 가치와 함께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좋은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공동선의 좋은 삶”을 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공동선의 좋은 삶’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문제에 대응하는 ‘에너지 정의’에 동의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 노력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첫째, 인간이 자연의 에너지를 독점해서 사용하고 그 결과로 생태계를 파괴.
둘째, 인간 사이에서도 소득과 지역(국가) 편차에 따른 에너지 소비 양극화.
셋째, 현세대가 미래세대의 에너지까지 소비하여 에너지 고갈.
그러므로 세계 주요국 지도자들을 향해 “기후 위기 없는 깨끗한 세상을 위해 더 노력하라.”고 외치는 수많은 툰베리들이, 아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위의 ‘에너지 정의’에 공감하고 이를 기반으로 나 자신부터 탄소 제로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고 실천하며, 이를 위해서는 나 자신의 편리함과 풍요, 자기 나라의 경제가 조금 희생되더라도 감수하겠다는 결의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해져야 각국의 지도자들도 탄소 제로를 위한 진정한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 4.10. 우리가 가야할 길, 나뚜라(Natura)
정리하자면, 탄소 제로 실현으로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존엄성 실현으로 공동선의 좋은 삶을 이룩하는 것도 우리 모두가 지금부터 어떤 길을 어떻게 걸어가느냐에 달려있다. 결국 그림 4.8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는 우연하게 태어나 우연이라는 불확실성에 둘러싸인 삶을 살아야하지만 삶을 삶답게 나만의 창조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목적과 자유의지를 가진 니체의 ‘초인’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하자면 그림 4.10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자연이라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추구하는 ‘공동선의 좋은 삶’을 기후 위기 없이 이룩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자연과 조화 즉 천지인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살아야만 한다. 우리는 자연과의 조화와 균형이 무너졌을 때 무슨 일을 겪게 되는지 이미 “2.2 생각의 역사[그림 2.4]”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바로 우리가 600만년이라는 세월 동안 처음엔 서로 평등한 부족사회를 이루며 상부상조하는 소속감 기반의 삶을 살다가 ‘불과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부터 진화를 하면 할수록 계급사회를 만들고 무한경쟁의 적자생존과 유한계급(Leisure Class)의 무위도식을 위하여 서로 짓밟고 죽고 죽이며 결국엔 신자유주의의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고 우리를 닮은 인공지능을 만드는 창조주가 되었지만, 생태계 파괴로 인한 기후 위기와 일촉즉발의 3차 세계대전 등과 같은 제 6차 대멸종으로 최상위 포식자인 우리가 멸종될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 살고 있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바로 천지인의 ‘조화와 균형’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풍요만을 위하여 천지를 마음대로 개발하고 파괴한 우리 ‘인(人)’이 지금까지의 생각을 바꿔 탐욕을 덜어내고 위무위(爲無爲)하여 천지인의 ‘조화와 균형’을 복원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 모두가 나뚜라(Natura)를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나뚜라(Natura)는 자연(Nature)의 라틴어 어원으로 ‘태어난’이란 뜻을 가진 ‘natus’와 태어나서 가진 것이란 뜻을 가진 ‘ura’의 합성어로 ‘태어나면서 부터 있어지는 것’이란 의미이고, 이에 대비되어서 문화(Culture)의 어원으로 ‘인간의 손길로 경작하고 만들어지는 것’이란 Cultura가 있다.[참고 4.8] 한마디로 나뚜라(Natura)는 인간의 손길이 개입되지 않은 원래부터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이요, 우리말로 나뚜라는 ‘그냥 놓아 두어라’라는 의미의 경상도 사투리이다. 그러므로 나뚜라를 실천하자는 것은 가급적이면 우리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해서 자연을 자연의 질서대로, 세상의 진리대로 움직이도록 놓아두자는 것이다. 사실 나뚜라는 예수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붓다의 제법무아 제행무상, 노자의 상선약수를 실천하는 것이어서 그대로 따르면 성인의 경지에 다다르게 되겠지만, 우리 같은 일반 시민의 범인이 추구하기에는 너무 어렵다. 그래서 구체적 실천 방안으로 나뚜라를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의 나침판(표상)으로 설정하여 마음결과 마음씀의 방향성을 지향한 다음 이를 기반으로 니체의 초인이 추구하는 창의적인 목적과 자유의지로 우리의 삶을 살아가자는 것이고, 거기에서도 20% 정도의 욕망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삶을 즐기며 살자는 것이다.
나뚜라의 실천 방안을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하여, 이제부터는 실생활에서 기후 위기의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인 에너지를 얼마나 어떻게 사용하고 절약을 실천하여 탄소제로를 추구할 것인지를 ‘에너지 절약’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이를 위해 우리가 먼저 에너지가 도대체 무엇인지 기본적인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원유, 천연가스, 우라늄, 태양, 풍력 등 변환이나 가공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연으로부터 직접 얻을 수 있는 에너지를 ‘1차 에너지’라 하고, 이 1차 에너지를 소비자가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휘발유, 경유, 등유, 전기, 도시가스 등으로 변형・가공한 에너지를 ‘최종에너지’라 한다. 결국 1차 에너지가 있어야 휘발유, 전기 등의 우리가 원하는 최종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 4.11. 전 세계 1차 에너지 원별 공급 현황(2016년)[참고 4.9]
그림 4.12. 석유환산톤 [참고 4.9]
2016년 기준 전 세계에 공급되는 1차 에너지의 양은 그림 4.11에서 보는 바와 같이 137.6억 toe로 우리나라 공급량 282백만 toe의 약 50배 규모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소비하는 에너지 비중이 작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탄소배출에 대한 책임 또한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toe는 석유환산톤(ton of oil equivalent)으로 각각 다른 단위를 사용하는 각종 1차 에너지들을 원유 1톤이 연소할 때 발생하는 열량을 기준으로 표준화한 단위이다. 그림 4.12에 보인 것처럼 1toe는 발열량이 107 kcal이고, 휘발유로는 1,280ℓ(연비 14km/ℓ 자동차로 서울에서 부산을 약 22번 왕복할 수 있는 양), 전기로는 4,695kWh(일반 가정이 약 1년 3개월간 사용하는 전력량)에 해당한다. 다시 그림 4.11을 보면 석유, 석탄 등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1차 에너지원이 전체 공급량의 대부분(81.1%)을 차지하고 원자력까지 포함하면 86%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대기 중의 온실가스 농도이고, 이렇게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 메탄 등 6가지가 있는데, 이 중에 이산화탄소의 비중이 91.9%로 결국 ‘탄소제로’를 향한 우리의 노력이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지름길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림 4.13의 이산화탄소 배출비교를 보면 그림 4.13(a)에서 종이컵 286개, 비닐봉투 400개 만드는데 이산화탄소 1톤이 배출되고, 그림 4.13(b)에서 휘발유 1ℓ사용으로 이산화탄소가 2.2kg이나 배출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종이컵, 비닐봉투 등 1회용품 사용을 제한해야 되는 이유이고, 휘발유, 경유 등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야 하는 당위성인 것이다.
그림 4.13. 이산화탄소(CO2) 배출 비교 [참고 4.9]
그림 4.14. 그린란드의 지구 온난화 현상
그림 4.14는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우리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연합뉴스, 2006년]. 이 사진은 북극 근처에 있는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아 해빙되고 있는 지역(주황색)을 나타내고 있는데, 왼쪽이 1992년 모습이고 오른쪽이 2002년 모습으로 불과 10년 만에 빙하의 해빙지역이 눈에 띨 정도로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이 약 20년 전의 모습이니 현재의 모습은 이미 심각한 상황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라는 걸 예상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할 뿐 아니라 2014년 유엔의 ‘미래보고서 2040’의 미래 메가트랜드 TOP 10을 보면 유엔이 예상하는 우리의 미래 10가지 중 3가지가 에너지 관련 문제로 에너지 문제가 아주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이를 그림 4.15에 보였다.
그림 4.15. 미래 메가트랜드 TOP 10 [참고 4.10]
그림 4.15의 미래 메가트랜드 TOP 10에서 4번, 5번이 에너지 자원문제, 7번은 에너지 등으로 인한 기후위기문제이다. 보고서는 현대 산업사회의 핵심에너지인 석유가 2030년 이전에 고갈되고, 2050년에는 물 부족을 겪는 인구가 수십억 명으로 증가하는 등 자원고갈은 이미 예정된 미래이고, 이제 풍요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한다. 설상가상으로 더 심각한 것은 석유를 대체할 다른 금속 자원(은 2029년, 인 2033년, 주석 2035년 고갈)도 고갈된 다는 것이다. 이처럼 석유고갈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세계는 태양광, 풍력 등 대체에너지 기술의 상용화가 국가운명을 결정할 핵심이라 생각하며 총성 없는 에너지 전쟁이 한창이다. 이뿐만 아니라 세계는 지구온난화로 그림 4.14에서 보는 바와 같이 빙하가 녹아내려 해수면이 최대 59cm까지 상승해 방글라데시의 1/5이 물에 잠기고, 최대 2억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홍수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또한 기후변화로 해안에 인접한 담수 20%가 사라져 2030년 남아프리카는 옥수수 수확량이 30% 감소하고, 2032년 지독한 가뭄과 식량난으로 아시아 인구 20%가 사망할 수 있다고 발표하면서 기후위기의 예견된 미래는 1도C가 인류 생존을 결정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유엔의 이렇게 무시무시한 경고에도 현재 우리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 소비량은 과거에 비하여 오히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굳이 데이터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가정이나 회사, 학교를 포함한 공공건물 어디에서나 에어컨은 필수가 되었고, 청계천 루미나리에를 비롯한 전국방방곡곡의 밤이 화려하고 대낮처럼 밝고, 전기요금이 통신요금에 비하여 훨씬 저렴하다는 것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같은 에너지 소비량 증가는 당연히 첫째, 한정된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에너지 자원의 고갈(석유 50년, 석탄, 134년, 천연가스 53년 후 고갈 예정), 둘째, 탄소배출량 또한 어마어마하게 늘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여 되돌릴 수 없는 기후위기와 같은 심각한 문제를 우리에게 떠 안겨주고 있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효과적인 대책은 새롭고 획기적인 에너지를 개발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는 아직 기대 난망이기 때문에 첫째, 에너지 생산측면에서는 비록 아직 기술적, 경제적 한계와 제약이 있지만 이를 감수하고 과감하게 풍력, 태양광과 같은 그린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요, 둘째, 에너지 소비측면에서는 비록 불편하지만 실생활에서 과감하게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발표에 의하면 전 세계 에너지 소비량은 2030년까지 2007년 기준 4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어 점점 더 심각한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사실 에너지 생산과 소비는 서로 연계되어 있어서 우리가 아무리 획기적으로 생산을 늘린다 하더라도 소비가 그 이상 증가하면 백약이 무효가 되는 것이다. 마치 우리의 욕망이 채워져도 더 큰 욕망이 샘솟아 만족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그림 4.16.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
따라서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땅의 수많은 툰베리들이, 아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은 나(인간)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진리 안에 내(인간)가 존재한다.’는 세계관으로 우리의 존엄성을 회복하여 에너지 패러다임을 그림 4.16과 같이 전환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보다 더 풍요로운 문명 건설에만 매달려 에너지 생산 확대에만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파괴하는 에너지 소비를 획기적으로 감소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 모두 ‘에너지 정의’에 공감하고, 비록 불편하지만 ‘공동선의 좋은 삶’을 위한 나뚜라에 동참, 에너지 절약을 과감하게 실천하여 에너지 소비를 획기적으로 감소시켜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기술적 불편과 경제적 풍요의 희생을 감수할 수 있어야 기술적, 경제적 한계와 제약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그린에너지로의 대전환이 이루어 질 수 있고, 각국의 지도자를 움직여 국가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가야할 길이 ‘공동선의 좋은 삶’을 이루어 ‘좋은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이를 위해 우리 각자가 존엄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도, 나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도, 더 나아가 우리 인간만이 아닌 자연과의 조화와 균형이 매우 소중하다는 것도 알았다. 이제 존엄성을 회복하고 자연에 대한 ‘나뚜라’를 실천할 때 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알고 있고, 훌륭한 지혜를 갖고 있어도 현실 생활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꿀벌이 꿀을 얻기 위해서는 꽃을 찾아가야하고 나를 변화시키려면 자아상을 변화시키거나 습관을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니엘 캐너먼이 이야기한 것처럼 이미지적, 인지적 편안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변화 보다는 현재의 상태를 평안하게 유지하길 원하는 보수적 특성을 갖고 있다. 이는 우리가 ‘4.1 뇌의 가소성’에서 다루었던 뇌의 에너지 최소화 전략의 일환이다. 즉 우리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태도 등을 결정하는 단위 행동 프로그램들이 이들을 관장하는 최상위 프로그램인 자아상에 의해 일관성을 유지한다. 그리고 일부 반복적인 태도와 행동들은 자동화 프로그램으로 처리하는 단순화 전략을 취함으로서 습관으로 굳어진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뇌의 에너지 최소화를 위한 일관성 전략이 되었든 단순화 전략이 되었든 이들을 습관처럼 굳히는 데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한 번 굳힌 습관이나 자아상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좋은 습관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영국 런던 대학교에서 수행한 ‘습관 형성에 관한 실험’ 결과를 살펴보면 습관을 바꾸기 위해 새로운 행동을 시작할 경우, 이로 인한 거부감을 없애는 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21일 걸리고, 그 후 그 행동을 자동(습관)으로 하게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66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는 흡사 우리가 ‘4.1 뇌의 가소성’에서 다루었던 피터 올릭 체의 ‘3단계 신경 세포 모형(three-stage neuronal model)’에 의한 기준인과작용(criterial causation)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실패’나 ‘만남’과 같이 일상적이지 않고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되면, [1단계] 이에 대응하는 정신적 처리과정에 반응한 시냅스에 의해 신경 네트워크가 급속하게 재설정(resetting)되고, [2단계] 재설정된 네트워크에 따라 다양한 입력들을 처리하다가, [3단계] 일정 시간이 지나 네트워크가 안정화 되어 더 이상 이 기준에 따라 흥분하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어 새로운 자아상이나 습관(자동화 프로그램)을 형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우리는 우리의 습관을 바꾸어 새로운 습관으로 생활하는데 어색하지 않고 불편을 느끼지 않을 때까지 평균 21일 정도, 이를 습관으로 굳힐 때까지 평균 66일 정도가 걸린다고 하니까 개인차 등을 고려하면 적어도 100일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66일이니 100일이니 이런 정확한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원래의 습관을 만드는 데에도 알게 모르게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새로운 습관으로 바꾸는 데에 그 정도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가 원하는 습관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한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좋은 습관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시간과 노력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더하여 주변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환경도 매우 중요하다. 주변 환경에 의하여 습관의 질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가의 인연과(因緣果)의 법칙처럼 말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씨앗[인(因)]을 밭[연(緣)]에 심어 딸기[과(果)]를 거두어들이듯이 맛있는 딸기(결과)를 얻으려면 무엇보다도 씨앗의 품질이 좋아야하지만 씨앗이 아무리 좋아도 밭이 메마르거나 기후(온도, 습도 등)가 좋지 않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즉 인(因)은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내가 좋은 습관으로 바꾸기 위하여 들여야 할 시간과 노력이요, 연(緣)은 그(因)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조건으로 주변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환경이며, 이러한 인연(因緣)에 따라 양질의 좋은 습관의 결과(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긍정적인 것은 이렇게 어렵게 변화시킨 습관은 일단 형성되어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이를 유지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동선의 좋은 삶’이라는 목표를 이미 설정했으니 좌고우면 하지 말고 지금 당장 스스로 존엄성을 회복하고 자연에 대한 ‘나뚜라’를 실천하도록 하자. 나하나 변한다고 세상이 바뀔까? 혹시 세상 사람들은 제각각 풍요롭게 사는데 나만 뒤처지는 거 아니야? 하고 걱정할 것 없다. 마하트마 간디의 “세상이 변하는 것을 보고 싶다면, 너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아들이자. 노자의 속인소소 아독혼혼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존엄성을 회복하고 자연에 대한 ‘나뚜라’를 실천하는 우리 삶의 목적과 의지로 ‘공동선의 좋은 삶’을 위해 살아가게 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의 좋은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목적과 의지가 흔들리거나 오염되지 않았는지 방향이 잘못되는 않았는지 끊임 없는 성찰과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 금문교(Golden Gate Bridge)가 1930년대의 토목 기술로 건설되어 무려 86년이 넘게 아직도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사실 금문교는 전장 2,825m, 높이 227m, 주탑(主塔) 사이 거리가 1,280m나 되는 거대한 규모로 1933년 착공해서1937년 준공한 다리로 그 당시의 기술로는 세계 토목학계에서 불가사의한 공사 중의 하나로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대단한 현수교이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대단한 토목기술도 어마어마한 규모도 아니고 그 옛날에 건설된 다리가 86년이 지난 지금도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그 비결은 바로 유지 보수(maintenance)인 것이다. 제대로 된 유지보수를 통해 금문교가 지금까지 건재한 것처럼 우리도 삶의 여정 속에서 끊임없는 성찰과 보완이 요구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가 아름답고 지속가능한 "공동선의 좋은 삶"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가 우리의 존엄성을 회복하자고 동의했다. 그리고 이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다. 이제 실생활에서 각자 실천하면 된다. 그런데 너무 막연하다. 그래서 우리 앞에 닥친 기후위기의 대표적인 원인 중에 하나인 에너지를 구체적인 실천 대상으로 삼았다.[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다만, 이것이 글쓴이의 전공분야와 가깝기도 하지만 기후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그 효과가 크고 생활 속에서 쉽게 실천 가능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자 그럼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를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사실 생활하는데 불편하더라도 꾹 참고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에너지를 안 쓰면 된다. 사용하지 말라고? 그럼 생활은 어떻게 하고? 맞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의 100% 즉 욕망 자체를 싹둑 잘라버리는 금욕주의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여러분이 더 잘 안다. 생활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의 20% 정도만이라도 세상을 위해 우리를 위해 나를 위해 양보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우리가 무관심했던 그렇지만 효과는 작지 않은 생활 속의 에너지 절약부터 매일 실천 해보도록하자. 우리 모두가 에너지 절약을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실천하고 습관화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4.4 에너지 절약 실천’을 추가로 정리하였다. 이처럼 자연에 대한 ‘나뚜라’를 실천하는 것이 처음엔 불편하지만 이것이 습관화되면, 이 작은 실천 하나하나가 세상을 위한 그리고 우리를 위한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을 확신한다. 바로 이것이 ‘공동선의 좋은 삶’에 대한 선순환의 불씨가 되어 나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다.
4.1 배연국, “Humanities”, GOLD & WISE, April, 2023.
4.2 에릭 시노웨이(김명철 역), “하워드의 선물“, 위즈덤하우스, 2013.
4.3 권석만, "젊은이를 위한 인간관계의 심리학", 학지사, 2004.
4.4 배연국, “Humanities”, GOLD & WISE, Mar, 2023.
4.5 나무위키; "그레타 툰베리", https://namu.wiki/
4.6 CARE 10; “새로운 시작(New Beginning) - 빨간 지구위의 사람들”, KBS-ABU 국제공동제작,
2020. 10. 25. 방영.
4.7 정의길, “인류는 기후변화를 막을 기회를 영원히 놓쳤을까”, 한겨레신문, 2018. 08. 11.일자.
4.8 전희수, "서구어 어원산책", 동지사, 1962.
4.9 "2019 에너지 바로 알기", 에너지관리공단, 2019.
4.10 유엔 미래 보고서 2040, "메가트랜드 TOP 10“, 유엔, 2014.
4.11 환경목표관리 워킹그룹, “Act in the campus of Kyoto University”, 교토대학교,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