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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ey Nov 05. 2023

로베르토 볼레, 거장의 진화

발라레 인생 3막 무용수 이야기 1

지난달 10일 이탈리아 밀라노의 두오모 광장. 순백의 레오타드를 차려입은 약 2300명의 소녀소년이 모여들었다. 중세 1368년에 건립의 첫 삽을 뜬 두오모 성당의 135개 뾰족한 첨탑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광장을 가득 채운 소녀소년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 행사를 기획한 주인공이자, 현존하는 최고 발레 남자 무용수 중 한 명인 로베르토 볼레가 나타나면서다. 볼레는 환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 뒤 말했다. "자, 시작합시다, 오늘의 발레 클래스."


2300명의 어린 무용수들은 바로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바(barre)에 손을 올리고, 다리는 발레 1번 포지션을 잡았다. 로베르토 볼레는 이들에게 꿈 그 자체다. 그런 존재가 발레 클래스를 열어준 것. 볼레가 지난해 처음 기획해 성공시킨 뒤 2023년 두 번째로 연 이 발레 클래스는 그를 진화시켰다. 누군가의 꿈을 상징하는 존재에서, 그 누군가의 꿈을 이룰 수 있게 안내해 주는 등대로. 볼레는 이날 본인의 소셜 미디어 계정에 이렇게 적었다. "내가 영원히 기억할 날."  


밀라노에서 로베르토 볼레가 마련한 발레 클래스. Copyright Corriere dello Sport


그 로베르토 볼레를 육안으로 처음 본 건 9년 전, 2014년 일본 도쿄. '보다'라는 단순 동사로는 부족하다. '영접' 정도는 돼야 마땅하다. 로베르토 볼레 여섯 글자는 신(神)의 다른 이름이다.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 발레리노가 일본 도쿄의 공연 명소, 분카가이칸 무대에 선다는 소식을 들었던 그해 봄. 나는 좌천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겪는 일이거늘,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 미숙했던 나는 마치 내게만 주어진 불행인 듯 슬픔에 몸부림치는 중이었다. 당시 내게 해독제 같은 존재는, 말해 뭐 해, 발레였다. 그 발레의 신적인 존재가 비행 1시간이면 닿는 일본에 온다니. 표를 사야 하는 건 선택 아닌 필수. 이미 손가락은 결제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볼레가 누군가. 이탈리아 출신으로 어린 시절 무려 루돌프 누레예프에 의해 픽업된 천재인 데다, 노력가이기까지 하다. 그의 무대를 육안으로 본다는 건, 대대손손 자랑으로 삼을만한 일.


욕심은 끝이 없지. 정신 차리고 캐스트를 살펴보니, 무려 줄리 켄트와 공연(共演). 켄트는 미국을 대표하는 발레리나 중 하나로, 무대 은퇴 후엔 워싱턴발레단 예술감독을 거쳐 현재는 휴스턴발레단의 수장이다. 내가 구매한 표는 '마농' 전막과 '올 스타즈 발레 갈라'. 그냥 관람만 하긴 아까웠다. 월차를 내고, 자비로 티켓과 항공권, 숙박을 해결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정이었지만, 인터뷰를 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문득. 마침 문화부장 정형모 선배가 로베르토 볼레에 대해 글을 여럿 썼던 참이었다.


'촉'이 오면 일단 행동으로 옮기고 봐야 뭐라도 된다. 정 선배에게 볼레 인터뷰를 해보겠다고 호기롭게 발제를 했더니, "되면 오케이"라는 답이. 그때부터 나는 갖은 수단을 써서 로베르토 볼레의 에이전시와, 일본 내 공연 기획사를 접촉했다. (인터뷰 설득 방법론은 영업비밀. 브런치북 '토종 영어로 날자, 날자꾸나'에 이미 털어놓은 비밀이긴 하지만.)


비행기가 뜨기 바로 전날, 이런 요지의 답이 왔다. "원래 이렇게 급작스러운 인터뷰는 받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무용수(볼레!)가 한국 관객을 위해서도 기사가 나오면 좋겠다는 의견을 보였다. 공연 당일 리허설 중에 시간을 잡아보겠다. 웰컴 투 도쿄."

앗싸. 출장 같은 휴가가 돼버렸지만, 그래서 더 행복했다.


아라베스크의 정석. [Roberto Bolle official website]

 

각설하고, 다시 볼레 얘기. 몇 번의 조율을 거쳐, 인터뷰는 2014년 2월 28일 도쿄 분카가이칸 연습실 옆 간이 회의실에서 공연 4시간 전으로 정해졌다. 콩닥콩닥.


도착 공항이 나리타였는지 하네다였는지 기억은 희미하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읽고 정리하고, 질문을 뽑느라 몰두했기에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다. 인터뷰 당일, 약속 장소.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 볼레가 왔다. "안녕, 난 로베르토야."

오 마이 갓. 알죠, 알다마다요.


그의 착장을 잠시 설명해야겠다. 사진은 볼레 측에서 제공한 컷들을 쓴다고 사전 협의가 있었기에, 그는 평소 연습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검은색 트레이닝 복에 네이비색 웜업부츠, 땀을 닦는 수건과 커다란 물통. 아침부터 이어진 클래스와 리허설로 땀투성이. 찬 기운이 완연한 2월의 도쿄 날씨가 무색했다. 평범한 옷차림 속에서도 기량이 절정에 오른 무용수 특유의 선과 모종의 에너지가 빛났다. 당시 나는 기사에 그의 허벅지는 보통 성인 여성의 허리 정도였다고 썼다. 왠지 부끄럽지만.


인터뷰 시작 전부터 나는 주문을 외고 있었다. 이건 인터뷰야, 팬 미팅이 아니라고. 쿨하고 하드한 질문을 던지며 한국 기자의 자존심을 세우자고. 악수를 한 뒤 자리에 앉았는데, 대통령 기자회견 때보다 더 떨렸다고 이제야 고백한다.


그러다 카카오톡 메신저 알람음이 울리고 말았다. 끄는 걸 깜빡해서다. 프로답지 못한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울상이 돼버린 나. 알람음은 유행하던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의 목소리였는데, 볼레는 싱긋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오바마 대통령이라고 해도 우리 인터뷰를 방해할 순 없지. 오바마더러 기다리라고 하자."

웃음을 터뜨린 그 순간, 평생 팬이 됐다.  


당시 썼던 기사의 지면 일부. [Copyright JoongAng Sunday]


그렇게 시작한 인터뷰. 한국 공연이 구체적으로 잡혀있는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특정 무대보다는 '무용수 볼레'에 초점을 맞췄다. 당시 볼레의 나이는 만 38세. 마흔을 앞둔 무용수의 심정과 미래 설계가 궁금했다. 실례일 수도 있지만,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곧 마흔이다"라고. 질문이 맘에 안 들면 어쩌나 속으로 솔찬히 두려웠다고, 이제사 고백한다. 하지만 그는 싱긋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게. 진짜 곧 마흔이네. 그런데 말이지, 20세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절대 안 갈 거야."

그럼 이렇게 물어볼 수밖에. "에이 거짓말 아니야? 왜?"


이어진 그의 답. "지금 나에겐 그때 없었던 성숙함이 있으니까. 물론 그때 체력은 더 좋았지. 하지만 지금의 성숙함과 그때의 체력을 바꾸기는 싫어. 나이를 먹는 걸 즐기기로 결심했어. 어차피 그렇잖아? 시간을 멈출 수는 없잖아."


볼레의 이 말, "나이 먹는 걸 즐기기로 했"다는 건 기사 제목이 됐다. 내친 김에 더 물어봤다. "신 포도(sour grapes) 식으로 어쩔 수 없는 자기 합리화하는 건 아니냐"고. 볼레는 여유롭게 답했다. "아니, 진짜로 그래. 나이가 들어가면서 경험이 여러 가지 쌓이잖아. 감성 역시 풍성하고 깊어져."


중력뿐 아니라 시간의 힘까지 거스르기 위해선 대가를 치러야 한다. 볼레에겐 매일의 연습 8시간이 그중 하나. 연습에 대해 물어봤더니 그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이렇게 답했다.


"몸은 정직해. 연습을 열심히 해두면 몸에 테크닉은 물론 감성도 입력되지. 무의식에 새겨놓는 것과 같아. 연습을 해둬야 하는 이유야. 이젠 안 하면 이상해."


그래도 8시간이나 할 필요가 있을까. 이어진 그의 답.

"무대에선 돌발상황이 항상 일어나거든. 이번처럼 해외에서 공연을 하게 되면 비행도 오래 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비행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고. 무대장치가 갑자기 고장이 나거나 해서 내려앉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래도 어떤 상황에서라도 무용수는 춤을 춰야 해. 그냥 추는 게 아니라, 잘 춰야 하지. 그러니 더더욱 동요하지 않을 수 있게 몸에 동작을 새겨두는 거야. 그게 연습이 중요한 이유지. 연습은 나의 가장 큰 무기야."


로베르토 볼레와의 공연은 꿈의 무대다. [Roberto Bolle official website]


제아무리 볼레라고 해도, 마음에 드는 무대는 있지 않았을까. 이런 짓궂은 질문도 해봤다.

"최악의 무대로 기억하는 건 뭔가"라고. 그는 약 3초 정도 침묵하며 생각을 하더니 이런 명답을 내놨다.

"없는데."

브라보.


인터뷰가 끝난 뒤, 몇 시간 뒤 객석에서 만난 볼레는, 볼레가 아니었다. '마농'의 주인공 데 그리외 그 자체였으므로. 객석에서 갈채를 보낸 이 중엔 당시 주일미국대사였던 캐럴라인 케네디도 있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딸도 완벽히 매료시킨 무대 위에서 볼레는 수 차례의 커튼콜을 받았다. 공연 후, 2층 VIP룸에서 열린 리셉션. 볼레는 홀가분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남색 니트에 청바지 차림으로, 동료 무용수들과 악수와 포옹을 나누고, 어깨동무를 하며 공연 뒤의 홀가분함을 만끽하는 모습이었다. 그에겐 동료 무용수들의 존재가 각별한 듯했다. 그와 함께 무대에 섰던 무용수들 모두 "아름사람들과의 잊지 못할 무대"(영국 로열발레단 야스민 나그디 무용수) "이런 무대를 설 수 있다는 건 행운"(멜리사 해밀턴 무용수) 등의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볼레와 인연이 있는 한국 무용수들도 여럿이다. 그는 "희와 춤춘 무대는 진심 즐거웠다"라고 했고, "수진의 조용한 카리스마가 인상적이었다"라고 했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서희 수석 무용수, 강수진 국립발레단장 이야기였다. 그를 만났던 때는 강수진 단장이 막 임기를 시작했던 무렵이었다. 그 소식을 전하자 그는 반색하며 "몰랐다! 정말 잘 됐다"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아래의 말을 덧붙이면서. "수진의 리더십 역시 그의 춤처럼, 강함과 부드러움을 겸비할 거라 믿어. 그가 춤을 추듯 발레단을 이끈다면 한국 발레는 더 크게 도약할 거야. 박수를 보내!"


[Roberto Bolle official website]


볼레는 발레리나 등 동료 무용수들과의 호흡도 강조했다. 기사에 썼던 답변을 그대로 옮겨온다. "내가 무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나와 춤을 추는 발레리나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해주는 거다. 발레리나가 빛나면 나도 빛난다. 그 화학작용(chemistry)은 무엇과도 못 바꾸지. 발레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공유한 이와 춤을 추면 무대는 천국이다."  


볼레에게 "한국도 그 천국을 기다린다"라고 물었고, 그도 "곧 가고 싶다"라고 답하긴 했지만, 팬데믹 등 저간의 여러 사정으로 성사는 못 됐다. 기다림은 계속된다.




그사이, 볼레의 발레는 계속 진화 중이다. 그가 매년 개최하는 '로베르토 볼레 앤드 프렌즈'라는 갈라 공연은 해가 갈수록 다양한 시도를 보인다. 서두에 적었던 꿈나무 무용수를 위한 야외 클래스 같은 행사는 그가 무용수를 넘어, 하나의 거장으로 우뚝 서는 과정의 대표적 단면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재능과 연습으로 일가를 이룬 이가, 동료들을 위한 무대를 마련하고 후배들을 위한 기회를 꾸려주는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완벽 그 자체. [Roberto Bolle official website]

 

그런 볼레에게, 발레란 뭘까. 그의 답을 그대로 옮긴다.

"몸의 한계에 도전하며 스스로를 단련하는 예술. 엄격한 틀이 있지만, 그 안에서 춤을 추며 자신의 한계를 깨는 희열을 맛본다. (서)희가 얘기한 것처럼, 발레는 '잔인한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움을 지탱하는 건, 사랑이다."  


이제 곧 오십 세. 그러나 볼레에게 나이란 이미 의미가 없어 보인다. 볼레라는 거장은 나이라는 단순한 숫자를 초월해, 그 자체가 발레로 승화하는 중이다.


By Sujiney    


* 위의 내용은 당시 메모와 기사를 근거로 했습니다. 지면 인터뷰 링크는 아래에.

https://www.joongang.co.kr/article/14101172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감이나 이런 내용이 더 궁금하다, 저런 내용도 다뤄달라, 등이 있으시면 댓글 또는 '작가에게 제안하기'를 통해 자유롭게 알려주세요. 좋은 의견 주신 분 중 선착순으로 2분께 발레 관련 작은 선물 보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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