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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ey Dec 31. 2023

파리 오페라 발레의 전설, 박세은을 ★로 만들다

발라레 인생 3막: 무용수 이야기 By Sujiney  

2021년, 프랑스를 대표하는 발레단, 파리 오페라 발레(l’Opéra National de Paris)는 새 역사를 썼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박세은 무용수를 발레단의 최고 등급인 에뚜왈(l'Étoile, '별'이라는 뜻)로 승급하면서다. 문턱 높고 콧대 높기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곳. 루이 14세가 1661년에 세운 발레 학교가 모태가 된 곳.


클래식 발레는 이탈리아에서 움트고, 프랑스에서 꽃을 피우고, 러시아에서 열매를 맺었다고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꽃을 피운 정원이 바로, 파리 오페라 발레다. 자신들만의 DNA에 확고한 자신감을 갖고, 순혈주의를 지켜야 할 대상으로 오랜 기간 삼아왔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 무대는 그 부속 발레학교에서 첫 쁠리에를 시작한 발레 엘리트의 전유물이라는 게 암묵적 룰이었다.


그러나 21세기하고도 20년 이상이 지난 지금. 전 세계의 키워드는 다양성과 포용성이다. 파리 오페라 발레 역시 문호 개방에 대한 안팎의 압력을 받아왔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문을 열 수는 없다. 수년 간의 혹독한 테스트를 거쳐 선발된 소수가 이곳의 무대를 밟을 수 있었고, 그렇게 자신을 증명해 낸 무용수가, 박세은이다.


오렐리 뒤퐁이 '잠자는 숲속의 미녀' 주역으로 열연 중이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공식 DVD. 저작권 Copyright Paris Opera Ballet


별은 그러나, 혼자 반짝이지 않는다. 태양이 있고, 하늘이 있기에 반짝인다. 박세은이라는 '에뚜왈'이 빛나기 위해서도 그러했다. 그를 '에뚜왈'로 지명해 준 든든한 지원군 중 한 명은 당시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예술감독, 오렐리 뒤퐁(Aurélie Dupont). 궁금했다. 뒤퐁 당시 감독의 마음이. 기자라는 업의 장점 중 하나는, 궁금한 점이 있으면 상대가 대통령이든 걸인이든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직접 묻기로 했다. 사방팔방을 뒤져 뒤퐁 감독에게 질문을 보낼 수 있는 언로를 뚫었다. 구체적 방법론은 영업 비밀이지만, 역시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었다.


하지만, 질문을 보내놓고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기자라는 업의 단점 중 하나는, 거절과 무시, '읽씹'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거다. 질문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는 해도, 답변을 항상 받을 수 있는 권리도 있는 건 아니니까.  


기다렸다.


메일을 보냈다는 것도 까먹었을 즈음, 발레학원에서 레오타드로 갈아입다가 스마트폰 액정에 뜬 알람에 화들짝.

뒤퐁의 답변이 와있었다. 한국 언론과의 직접 인터뷰는 처음이라며, "한국에도 파리 오페라 발레를 아껴주시는 분들이 많다니, 감사하다"는 인사로 시작했다.  


오렐리 뒤퐁 전 파리 오페라 발레단 예술감독. Copyright Paris Opera Ballet, photographed by Sophie Delaporte


관련 기사는 아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083928

그와 관련한 박세은 무용수와의 인터뷰 및 비화는 아래 글을 읽어주셔도 좋겠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086281


그의 답변은 그의 춤을 닮았다. 정확하며 시원스러우면서도 정갈했다. 링크 검색이 귀찮으신 분들을 위해 답변의 요지를 요약했다.


승급 배경은.

“세은을 수년간 지켜봤다. 세은이 무용수로서 엄청난 성장을 이뤄내는 걸 직접 봤고, (바가노바는 물론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스타일을 망라한) 모든 스타일의 춤을 소화할 수 있음을 봤다. 세은은 우리의 아카데미를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겐 재능이 있었고, 우리만의 ‘프랑스식 스타일’을 완벽하게 소화할 능력이 있었고, 실제로 소화를 해냈다.”


박세은 무용수의 장점은.

“항상 열심이고(travailleuse), 겸손하며(humble), 테크닉이 뛰어나며(technicienne), 예술성이 있다(artiste).”


더 자세한 내용은 기사를 읽어주시길.




뒤퐁 감독은 박세은 에뚜왈의 꿈이기도 했다. 박세은 무용수는 "뒤퐁 감독은 내가 파리 오페라 발레단을 꿈꾸게 했던 이유"라며 "학창 시절 그의 춤을 유튜브에서 보고 카리스마에 완전히 매료됐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월간 '객석' 인터뷰 2021년). 그런 뒤퐁 감독이 박세은 무용수를 에뚜왈로 승급한 건, 아름다운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뒤퐁은 박세은의 에뚜왈 승급 소식을 자신의 개인 인스타그램에도 자세히 전했다. 공연 뒤 깜짝 행사로 이뤄지는 에뚜왈 승급의 영상과 함께. 영상 속에서 뒤퐁 당시 감독은 감격한 박세은 무용수를 꼭 안아준다. "세은, 브라보"라는 메시지도 함께.


뒤퐁 당시 감독과 박세은 에뚜왈의 이야기는 발레를 넘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단 박세은 무용수처럼 도전을 할 용기를 내는 것의 중요함. 도전 과정이 쉽지 않고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집요함. 그리고 보석을 알아봐 주는 눈. 보석을 정교하게 세공해서, 별과 같은 반짝임을 부여해 주는 안목. 비단 발레 무대에서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닐 터.


우리 모두, 각자의 무대에서 넘어져도 좌절하지 않고 일어나고, 계속 이 길이 맞다고 판단된다면 뚜벅뚜벅 걸어가며, 아니라고 판단되면 용기 내어 새 길을 개척하는 새해가 되기를. 그리고 그 길에, 박세은 무용수의 뒤퐁 감독처럼, 애정을 갖고 바라봐주는 태양 같은 존재가 있기를.


박세은 무용수와의 인터뷰는 무용수의 사정 상, 2024년 새해로 넘긴다. 독자 여러분들, 기대 부탁드린다.


2024년 새해에도 다들 건(강히)발(레), 행(복하게)발(레), 즐(겁게)발(레) 하시길. Happy 2024!


By Suji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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