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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ey Dec 17. 2023

높이와 깊이 사이, '서희' 라는 아름다움

발라레 인생 3막: 무용수 이야기 5회 By Sujiney

"'서희'는 꿈의 다른 이름이다."
라고, 나는 썼다. 지난해 11월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서희 수석무용수 인터뷰 기사 첫머리에.

지금은 이렇게 쓴다.
'서희'는 아름다움의 다른 이름이다.

ABT 서희 수석무용수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11월, 경기도의 한 극장 연습실이었다. 인터뷰를 할 때는 그분이 하는 일, 또는 애정을 가진 현장에서 만나는 게 최고다. 그 뜻을 전달했더니, OO연습실로 오라는 안내가 왔다. 서희 무용수가 2014년 시작한 HSF, 즉 그의 영어 이름 'Hee Seo'의 앞글자를 딴 재단(Foundation)의 마스터클래스 현장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서희 대표의 HSF 무료 마스터클래스 현장. Copyright HSF


서희 무용수, 아니, 서희 대표의 마스터 클래스 티칭을 받기 위한 전공생 꿈나무들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바(barre) 옆에 서있었다. 팬데믹이 마지막 기승을 부리고 있던 터라 서희 대표부터 학생들, 나와 사진기자 모두 마스크를 착용. 그래도 기분 좋은 긴장감은 감출 수 없었다. 서희 대표는 게다가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외워서 직접 불러주려는 노력을 했다. 나의 꿈이 나의 이름을 알고 불러준다니. 김춘수의 '꽃'을 빌려 적자면, "서희 대표가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학생들은 그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먼저, HSF에 대한 설명 한 조각. HSF가 진행하는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인,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YAGP) 코리아' 관련, 기사에 썼던 내용을 그대로 옮겨온다.

"발레는 재능이 기본이지만, 재력이 강력한 윤활유가 되는 예술이다. 해외 유수의 콩쿠르에 나가 입상을 하기 위해선 작품비부터 의상 등 부대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런 점을 잘 알고 있는 서희 HSF 대표가 또 도입한 게 있으니, 세계적 콩쿠르인 미국의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YAGP)의 한국 예선 격인 ‘YAGP 코리아’를 만든 것. 미국행 비행기를 타지 않고 한국에서 YAGP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콩쿠르뿐 아니라, YAGP 유관 무용수들과 지도자들의 마스터클래스도 한국학생들을 위해 열고 있다. 한국 발레의 해외 진출을 위한 중요한 물꼬를 터준 것이다. 해외 무대를 꿈꾸지만 여의치 않은 한국의 어린 무용수들에겐 가뭄에 단비 같은 기회다."            


Copyright HSF


재능을 갖기도 어려운데, 재능만으로도 안 되는 게 발레 전공이다. 좋은 지도자를 만나고 부모의 헌신이 있어야 되는 게 현재 대한민국 발레 전공의 현실이기에. 사실 재능이 있어도 다른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그 재능을 꽃피울 무대를 누리지 못하는 무용수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의미에서, 서희 무용수가 HSF라는 재단을 만들어 기회의 문을 열어주고, 재능을 펼칠 무대를 꾸며준 것은 일종의 기적이다.   

서희 무용수에게 이번 브런치스토리를 위해 다시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도, HSF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연말은 전 세계 모든 발레단이 제일 바쁜 때다. '호두까기 인형'부터 여러 연말 공연이 줄을 잇기 때문. 서희 무용수 역시, 무대에 서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 따스한 답변을 보내왔다.  

먼저, HSF에 대한 서희 무용수의 답변.
"내년이면 HSF가 10주년을 맞이합니다. 그간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많이 온 것 같네요. 지난해와 비교하면 올해는 많이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지만, 첫해와 비교하면 많이 발전하고 커졌어요. 그 과정에서도 재단 존재의 이유와 의미는 변치 않고 지킨 거 같아서, 스스로에게, 저희 팀에게, 그리고 함께해 준 학생들과 선생님 학부모님들께 감사한 마음이 커요."

내년 10주년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지 궁금했다. 서희 대표는 "내년에는 다른 non profit(비영리단체)들과의 협업들을 기대해보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느낌표까지 붙인 답에 자신감과 기대가 묻어났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HSF는 어떤 멋진 변신을 할까.          


중앙일보 우상조 기자의 멋진 사진. Copyright 중앙일보


다시, 마스터클래스 현장으로 돌아와서, 내가 참여하는 학생이라고 상상해 보자. 내가 되고픈 롤모델, 나의 꿈이 저 앞에 서있다. 한 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고,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가고 싶은 게 인지상정. 특히 바워크가 끝나고 센터워크에선 학생들의 그런 열망이 더 뜨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서희 대표는 좀처럼 순서를 내주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대신 그는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얘들아, 발레 클래스의 기본은 뭘까? 그래, 에티켓이야. 함께 춤추는 동료들을 위한 배려가 중요하지. 그런데 지금처럼 서있으면 뒤에 있는 친구들은 잘 안 보이겠지? 우리, 줄을 다시 한번 서보자."  

모든 학생들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졌다 싶을 때에서야, 서희 대표는 순서를 내줬다. 다시금 깨달았다. 발레란 자고로, 냉정과 열정 사이 그 어드메의 발란스인 것을. 발레 클래스란, 하나의 작은 사회인 것을. 서로를 배려하고, 열정을 불태우되 냉정도 갖추는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클래스가 끝나고, 학생들은 한층 더 성장한 듯했다. 테크닉뿐 아니라 마음도 한 뼘 더 자랐으므로.

서희 무용수가 지난해 인터뷰에서 들려준 이야기 중, 유독 자꾸 떠오르는 말이 있다.
"예전엔 울기도 많이 했어요. 더 높게 뛰고 싶은데, 현실 거울 속 나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요. 하지만 요즘은요, 높게 가기보다는 깊게 가고 싶어요. 더 깊이 있는 춤을 추고 싶어요. 쉽진 않지만요."

높이의 도약을 이룬 이가, 깊이 가는 파고듦까지 고민한다는 것. 서희 무용수의 사람됨이 묻어나는 답변이다.          

  

서희 ABay 수석 무용수의 멋진 무대. Copyright ABT


이런 서희 무용수의 서울 무대를 보고 싶은 건 나뿐이 아닐 터다. 그에게 혹시 내년 한국 공연 계획은 없는지 물었더니, 이런 수줍은 답변. "한국에서의 공연 기회를 만들려고 조금 더 노력하고 있어요."

2024년 서희 무용수/대표의 계획은 뭘까? 그의 답을 그대로 옮긴다.
"언제나처럼 열심히, 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는 게 계획이에요. 매일 열심히 산다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네요."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사는 게 심드렁하다면, 그건 열심히 살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열심히 사는 건 서희 대표의 말처럼 생각보다 어렵고 도전적인 과제이므로. 계획을 물었을 때, "언제나처럼 열심히 살아내는 것"이라고 답하는 사람은,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고 빛나는 존재다.

그런 그에게, 조심스러운 공통 질문을 던졌다. 취미발레에 대한 생각. 그는 아래와 같이 어여쁜 답변을 들려줬다.

"취미로 발레를 배우신다니, 축하드려요! 취미를 갖는다는 게 굉장한 럭셔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발레는 그 자체로만으로도 아름답죠. 그리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발레를 통해 스스로의 가치와 깊이를 경험하시길 바라요. 제가 매일 스튜디오에서 느끼는 것처럼요^^"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해. 여기에서 이만 글을 줄인다. 발레를 통해 우리 스스로의 가치와 깊이를 경험하는 내일을 위해.

By Suji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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