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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ey Dec 24. 2023

부드럽고 강인한 그 이름, 발레리나 박슬기

발라레 인생 3막: 무용수 이야기 By Sujiney

재능이 있는 무용수는 적지 않다. 그러나 재능의 싹을 틔우고 무대에서 꽃을 피우는 무용수는, 많지 않다.


재능을 열매로 맺어내는 것 역시 재능인 것일까. 국립발레단 박슬기 수석무용수를 보면 드는 생각이다.


지난 5월 25일 서울 국립극장. 백색 발레의 진수, '지젤' 공연의 막이 올랐다. 주역을 맡은 박슬기 무용수는 독일과 스위스 공연을 마치고 막 귀국한 참이었다.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한 뒤엔 걷는 것조차 힘들거늘, 그는 100여분 간 무대에서 뛰고 돌고 날았다.


역시, 박슬기.   


'지젤' 박슬기. 사진 저작권 국립발레단, 촬영 손자일


많은 이들이 올해 박슬기 걸작 무대로 꼽는 작품은 또 있으니, 강효형 무용수가 안무한 '활'이다. 인간의 몸이 어디까지 늘어나고 당겨질 수 있는지를, 강렬한 비트에 찰지게 표현해야 하는 난이도 극강의 작품. 안무가로서도 착실한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는 강효형 무용수가 택한 주역은?


역시, 박슬기.  


'활' 무대를 보며 마음을 굳혔다. 박슬기 무용수를 연내 인터뷰하겠다고. 계기는 곧 찾아왔다. 그가 처음으로 안무한 작품, '콰르텟 오브 더 소울'이 지난 7월 중순 일본 도쿄 시티발레단 55주년 기념공연에 초청받은 것.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이 안무가 육성을 위해 만든 프로젝트, 'KNB 무브먼트'에 2016년 출품했던 작품이다. 인터뷰를 위해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무대 위와는 또 달랐다. 다소 낮은 저음의 목소리와 단아하면서도 단호한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그의 춤이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건, 그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박슬기 무용수의 인스타그램. 강효형(왼쪽) 무용수 겸 안무가와 함께. 저작권 박슬기



기사를 위해 강효형 안무가 겸 무용수에게도 코멘트를 청했더니, 같은 결의 답변이 왔다. "유연성과 강인함을 모두 갖춘 박슬기 무용수의 카리스마 덕에 활시위를 당기는 긴장감과 팽팽함의 이미지가 잘 표현됐다"는 메시지를 전해온 것(기사 전문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77301).



올 여름 인터뷰 기사 캡쳐. 저작권 중앙일보





그런 그에게 지난주, 브런치 스토리만을 위한 추가 인터뷰를 청하며 2023년을 보내는 소감을 물었다. '호두까기 인형' 주역으로 무대를 한창 누비는 터라 바빴을 터인데, 답변이 거의 빛의 속도로 왔다. 그대로 옮긴다.


"올 한 해도 정신없이 앞만 보며 달려왔던 것 같습니다. 앞에 놓인 것들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어느덧 일 년이 다 갔네요~ 작품을 준비하고 올릴 때에는 너무 힘들고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곤 했었는데요, 이렇게 한 해의 끝에서 되돌아보니 무대 위에 있는 때, 무대를 준비할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역시, 박슬기.


위의 말에서 유독 눈이 가는 구절이 있다. "무대 위에 있는 때, 무대를 준비할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부분. 무대 위에서 빛이 날 때 행복하다는 건 새삼스럽지 않다. 중요한 건, 무대를 준비할 때도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박슬기 무용수가 언급했다는 점. 사실 준비 과정은 피 땀 눈물로 점철된 고난의 행군일 때가 많다.


기사화는 못했지만 박슬기 무용수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 중엔 이런 것도 있었다.


"새로운 작품을 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아요.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죠. 언제 한 번은 연습 후 귀가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안무를 팔로 마킹하고 있었나 봐요. 그때 마침 지나가시던 (발레 마스터, 즉 지도자) 선생님께서 툭 치시며 웃으시더라고요."


안무를 체화하기 위해 매 순간을 쏟아붓는 셈이다. 결국 그렇게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내고야 마는 능력, 끝까지 묵묵히 해내는 투지가, 박슬기에겐 있다.


그에게 장거리 비행 후 주역을 믿고 맡기는 발레단, 그의 이름이 올라 있으면 왠지 안심하게 되는 관객이 생기는 건, 모두 이런 박슬기만의, 좋은 의미의 '깡' 덕일 터다.


그가 내년, 2024년을 맞는 각오는 어떨까. 그는 지난주 이렇게 답해왔다.


"2024년에도 같아요. 지치지 않고 새로운, 아니, 초심자의 마음으로 더 멋진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수석 무용수, 그중에서도 특히 발레리나 중에선 언니 격인 박슬기 무용수가 '초심자의 마음'을 이야기한다. 박슬기라는 무용수, 아니, 인간의 훌륭함이 묻어난다.



인스타그램을 게시물과 댓글에도 후배들에 대한 애정이 듬뿍. 사진 저작궏 국립발레단 발레리노 배민순, 출처 박슬기 무용수 인스타그램



박슬기 무용수의 '깡'을 대표하는 이야기는 그가 여름 인터뷰에서 들려준 부상 이야기였다. 기사에 자세히 썼으니 링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77301 또는 '중앙일보 박슬기 부상'으로 검색해 보시길.


요지만 전하자면, 둘째 발가락에 염증이 생겨서 통증이 발목까지 타고 올라왔지만 기어이 무대에 올랐다는 것. 포앵트 슈즈(일명 토슈즈)의 둘째 발가락 부분을 파냈다고 했다. 마찰을 줄여 통증을 덜 느끼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요,라는 나의 우문에 그는 이런 현답을 들려줬다.

"둘째 발가락 빼고는 멀쩡하잖아요. 그럼 무대에 올라야죠."


그 부상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는 남편을 만났다고 한다. 남편은 "무용수는 설거지 이런 거 하는 거 아니다"라며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고. 멋진 커플이 아닐 수 없다.




내년 국립발레단 라인업은 유난히 화제다. 슬기리나의 오데뜨/오딜('백조의 호수', 3월), 인어공주(5월), 키트리('돈키호테', 6월), 니키아('라 바야데르', 10~11월)와 마리('호두까기 인형', 12월)가 기대되는 건 나뿐만이 아닐 터.    


그런 박슬기 무용수에게 용기 내어 물었다. 성인이 취미로 발레를 배우는 것에 대하여. 그의 답을 그대로 옮긴다.


"발레는 정말 좋은 운동이 될 수 있는 예술인 것 같습니다. 발레를 하면 몸도 마음도 순수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젊어지는 걸 느끼죠! 앞으로도 꾸준히 발레 하시고, 건강도 챙기시길 바라요."


그리고 그가 덧붙인 마지막 한 마디.

"앞으로도 발레 많이 많이 사랑해 주세요^^"


아무렴요. 2024년에도 발레를 사랑하는 마음 변치 말자. 작은 희망이 있다면, 발레도 나를 사랑해주었으면 하는 것. 어쨌거나 저쨌거나, 여러분~ 2024년에도 발레, 많이 보고 많이 배웁시다 ;-) Happy 2024!


By Suji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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