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주체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카카오 브런치스토리와 네이버 블로그. 업무시간이 아닐 때만 쓰기에 잠을 줄이며 쓰기 시작한 지 각 3년째와 128일째. 구내염 빈도와 피로도는 상승일로이지만 쓰고픈 글을 쓰지 못해 생기는 자괴감은 줄었다.
그럼에도, 무리를 해서라도 생업 플랫폼에 기사로 꼭 남기고 싶은 글은, 전략을 세운다. 6월 1일 자로 온라인 게재된 이 기사처럼. '파 드 캬트르 김지영 발레리나'로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기사. 김지영 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가 인스타 피드와 스토리에도 공유해 주신 덕에, 데이터 성적표도 나쁘지 않다. 감사하다.
종합일간지 기사라는 형식은 확장성만큼은 단연 압도적이다. 하지만 그만큼 특수성보다는 대중성이 담보돼야 한다. 좁고 깊으면 안 됨. 넓고 깊으면 베스트, 넓고 얕아도 나름의 효용은 있다. 여기에서 종합일간지 발레 기사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매니어 적인 전문성, 이를테면 용어(쁠리에, 파드되, 앙셰느망 등등) 등을 다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
여하튼, 발레 기사의 특징은 (나의 경우) 길어져 버린다는 것. 짧게 쓰고 싶어 용을 쓰는데도 그러하다. 이번 '파 드 캬트르(Pas de Quatre)' 기사는 모두 3600자였는데, 일반적 기사량의 1.5배~2배였다. 이렇게 되면 에디터나 편집자 볼 낯이 없어진다. 더 쓰고 싶은 내용이 1000자 이상 있었는데, 참았다. 어쩌랴. 세상에 쉬운 일은 없는 법.
뜬금없지만, 연희동 밤 장미. by Sujiney
결론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번 기사에 쓰지 못한 내용을, 아래에 쓰고 싶다는 것. 브런치스토리 글마저 길어져 버렸네. 독자께 송구하다.
1845년 초연된 '파 드 캬트르'는 당대 최고의 발레리나 4인을 모았다는 것만으로도 센세이션이었다. 2024년 6월 5~7일 예술의전당에 오를 '파 드 캬트르' 역시, 당대를 풍미한 최고의 발레리나 4인을 모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센세이션이다. 이 어려운 무대를 시간과 공을 들여 성사시킨 대한민국 발레축제의 임소영 국장, 김선자 실장께 박수를. '발레 레이어(Ballet Layer)'라는 갈라 형식 공연의 2막 중 첫 무대다. 두근두근.
1845년 당시 '파 드 캬트르'.
이 취재를 성사시킬 수 있어 행복했다. 출처 및 저작권 중앙일보
네 명의 발레리나의 공통점은 한국 양대 발레단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로 이름을 떨쳤던 인물이라는 점. 과거형에 주목하자. 각자 시기는 다르지만 퇴단을 했고 지금은 대학 또는 발레단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나이도 마흔을 훌쩍 넘긴 이들이, 다시 튀튀를 입고 무대에 서기로 했다는 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기사에 차마 못 담은 이야기를 여기에 녹인다.
네 분에게 이렇게 물었다. "'발레'라는 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답변의 요지를 그대로 전한다.
김지영 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옛날엔 미처 못 느꼈던 때도 많은데요, 이젠 발레가 예전보다 더 좋아요. 어찌 보면 저에게 발레는 치료제이자, 친구 같아요. 저 어렸을 때 외로움을 타는 아이였는데, 발레 덕에 건강도 찾고 평생의 친구도 생겼죠."
김세연 전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했던 걸 이젠 못 한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죠. 저희가 다시 '백조의 호수' 같은 전막의 주역을 할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이번 무대를 하면서 다시 토슈즈를 신으니, 다리에 힘이 딱 들어가면서 짜릿함이 느껴져요. 예전에도 차마 느끼지 못했던 건데 말이죠(웃음)."
황혜민 전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오랜 기간, 삶 자체가 발레로 가득찼었어요. 그래서 제게 발레는 '숨' 같은 존재인 듯해요. 발레를 하면 숨을 쉬는 것 같거든요. 없으면 안 되는 존재인 거죠. 힘들 긴 하지만요(웃음). 다시는 안 하리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하게 되는 거 보니, 한 번 발레리나는 영원한 발레리나라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해요."
김지영 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그런 말 있잖아요, '발레의 신이 너를 선택했다'라는 말. 선생님들, 지도자분들이 가끔 하시는 말씀인데요. 저희도 그렇게 선택을 당했던 거 같아요. 저희들이 스스로 선택을 한 것 같지는 않아요."
신승원 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지금 저에게 발레는 커피 같아요. 단맛과 쓴맛이 공존하고, 매일 마시게 되고, 음미하고 싶은 그런 존재요."
이런 질문도 했다. "발레의 매력을 보다 많은 이들이 알게 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신승원 전 수석="발레가 대사가 없으니 어렵지 않을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오히려 반대예요! 음악도 풍부하고 대사가 없어도 동작의 느낌만으로도 이해하실 수 있어요. 일단 극장에 오셔서 한 번 보세요."
황혜민 전 수석="발레는 동화 속의 이야기들이 많잖아요? 힘든 일상을 벗어나 잠시라도 공연을 보시면서 우아함에 빠지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발레는 '눈으로 읽고 귀로 보라(See the music, hear the dance, 미국 발레의 아버지 조지 발란신이 남긴 말)'는 말도 있는데, 직접 느껴보시면 매력을 아실 수 있을 거예요."
김세연 전 수석="우선은 취미로, 운동으로라도 발레를 경험해 보셨으면 어떨까 싶어요. 바(barre)를 잡아보시는 과정에서 몸으로 전달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한 번 발레의 매력에 빠지면 출구는 없을 거라고 자신해요(웃음)."
김지영 전 수석="사실, 발레의 저변이 넓어지려면 저희 무용수들이 더 잘해야겠죠. 그게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무용수들의 실력도 좋아졌고, 작품도 다양해지고 있으니 관객분들도 더 와주시면 좋겠어요."
기사에 더 많은 주옥같은 이야기들이 있으니, 일독을 자신 있게 권한다. 링크 주소는 아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3456
발레학원 가는 길, 마주친 석양. by Sujiney
글을 마무리하며 생각한다. 발레학원 거울을 보며 매일 절감한다. 발레의 신에게 이번 생은 선택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다음 생, 아니 그다음 생에 선택당하면 되는 거라고. 거울 속 나의 못함에 좌절하지 말자. 좌절을 할 시간과 에너지를 성장을 위해 써나가는 거야. 발레의 신이 선택한 이들이 선사하는 절대적 아름다움을 무대에서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