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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ey Jun 17. 2024

지속가능한 멋짐, 발레리노 이현준 "매순간 마지막처럼"

Sujiney의 발레로운 매거진 19회

로미오부터 카라보스, 나쁜 남자 오네긴부터 일편단심 이몽룡까지. 이현준 발레 무용수의 스펙트럼은 넓고도 깊다. 발레로 가득했던 2024년 5~6월. 다채로웠던 무대 중에서도 파란만장한 캐릭터로 유독 종횡무진한 이현준 발레리노.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인 그는 올해 2월 '코리아 이모션 정(情)'으로 시작해 '백조의 호수' 지역 투어, 5월엔 '로미오와 줄리엣'에 이어 6월엔 대한민국 발레축제의 '더 발레리나'(유니버설 발레단)와 '발레 레이어(Ballet Layer, 대한민국 발레축제 기획 공연)' 중 '산책'에 이어 '라이프 오브 발레리노'(유회웅 리버티홀)까지 강행군을 했다. 이현준 무용수는 한 명인데, 각 무대에서의 이현준은 달랐다. 영락없는 10대 소년 로미오였다가, 여자 마음을 애태우는 '산책'의 남자였다가, 비발디의 음악에 불타오르는 발레리노였다.


카라보스(오른쪽) 역의 이현준 무용수. 출처 및 저작권 유니버설발레단


올해만 그런 것도 아니지. 이현준 수석의 무대는 항상 그랬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서의 카라보스, '춘향'에서의 몽룡, '오네긴'에서의 타이틀 롤까지, 이현준 수석은 자신의 역할에 자신을 녹여냈다. 한두해가 아니라, 이렇게 지속가능한 멋짐을 보여준다는 건, 말은 쉽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땀과 눈물이 있기에 가능할 터.   

무대 위 아닌 곳에서도 이현준 무용수를 자주 볼 수 있는 곳. 객석이다. 그는 '라이프 오브 발레리노' 이후 시작한 꿀맛같은 휴가의 시작에도 그는 윤별 컴퍼니의 '갓'을 관람했다. 지난 4월엔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그와 우연히 마주쳤으니, 경기도 하남시의 하남문화회관에서였다.


그의 배우자이자, 역시 무용수인 손유희 발레리나의 '돈키호테' 객원 주역 출연을 보러 왔던 것. 손유희 무용수 역시 유니버설발레단 수석으로 부부가 함께 찰떡 호흡을 선사했지만 지난 겨울, 발레단에선 은퇴를 했다.       



이현준 손유희 부부 무용수. 잉꼬부부로 유명하다. 쌍둥이 남매를 키우는 중. 사진 출처 및 저작권 두 무용수 인스타그램



하남에서 이현준 수석을 마주쳤을 때, 솔직히 놀랐다. 당시 유니버설발레단에선 '로미오와 줄리엣' 리허설이 한창이었으므로. 당시 리허설과 연습의 강도과 밀도는 대단했다.


우선 캐스팅부터가 쉽지 않다. 케네스 맥밀란 재단이 직접 관여를 하기 때문. 캐스팅을 받은 뒤에도 맥밀란 재단에서 나온 레페티퇴르(répétiteur, 원작의 형태를 보존하기 위해 해당 안무가 또는 그 안무가의 재단이 보내는 지도자)의 엄격하고 까다로운 리허설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덕에 관객은 행복했지만, 무용수들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을 것. 그러한 리허설 강행군 와중에도, 그는 하남까지 발걸음을 한 거였다.

"멀리까지 오셨네요" 인사를 건네자 이현준 수석은 "당연히 와야죠"라고 답했다.
자신의 배우자에게 박수를 보내기 위해서. 이토록 스윗한 남편에게 박수를.


리허설 중인 로미오, 아니, 이현준 수석. 출처 이현준 수석 인스타그램



하남에서의 조우 뒤 약 20일 후. 예술의전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만난 그는 영락 없는 10대 소년이었다. 철없지만 사랑스러운 소년의 로미오에 감탄하며 다짐했다. 무용수 이현준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무대는 찰나이고, 그래서 아름답지만, 글이라는 영원성으로 그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싶었다.



'더 발레리나'에서 발레 마스터로 열연하는 이현준 수석. 출처 및 저작권 유니버설발레단 인스타그램



그리하여 지난 15일, 그에게 질문을 보냈다. 토요일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내온 답변은 정성스럽고 열정이 가득했다. 그의 춤처럼. 아래 일문일답을 옮긴다.

Q=배우자이신 손유희 발레리나가 올해 은퇴를 하셨는데요. 남편 입장에서 어떠셨나요.
"올해 초 '코리아 이모션 정(情)'으로 와이프 손유희 발레리나가 은회를 한 이후에 홀로서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지난해 겨울 '호두까기 인형' 때부터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겪고 보니 오히려 은퇴를 한 당사자보다 제가 더 힘들어하고 있더라고요. 이상한 현상이었죠."

Q=그런데도 그 이후 거의 매주 다양한 역을 소화하는 강행군을 하셨는데요.  
"우여곡절 속에 '백조의 호수' 지방 투어를 무사히 마치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로미오를 다시 연기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요. (캐스팅이 될 지도) 반신반의 했었어요. 그런데 공연 포스터를 촬영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캐스팅이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바로 이 포스터. 출처 및 저작권 유니버설발레단

Q=연습과정은 어떠셨나요.
"상대역이었던 (강)미선 선배가 워낙 노련하시기 때문에 저는 그냥 저에게 부족한 것들을 채우는데 최대한 집중할 수 있었어요. 저희가 맡은 로미오와 줄리엣 커플의 최대 과제는 첫사랑의 풋풋함이었어요. 풋풋함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무대에 (세팅 없이) 덮머리로 나가서 공연을 한 것도 그런 풋풋함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는데요,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께서 좋아해주셨어요. 다른 부분들도 좋아해주셨던 것 같고요. 다행히 세월의 흔적을 어느 정도는 가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리허설 증인 로미오. 출처 이현준 수석 인스타그램, 저작권 dancekorea Instagram


Q='더 발레리나'와 '발레 레이어' 등에선 또 다른 역을 맡으셨죠.
"네, '더 발레리나'에선 발레 마스터(지도자) 역할을 맡았는데요, 다름 아닌 저희 발레단 선생님들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고 역할이어서, 단원들과 재미있게 작업했어요. '발레 레이어'에선 '산책'으로 무대에 올랐는데요, 사실 이 작품은 2017년에 짧은 버전으로 공연을 올린 적이 있었어요. 그때 '반드시 솔로까지 풀 버전으로 공연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바램을 드디어 이룰 수 있었던 순간이었죠. 음악과 안무에 푹 빠져서 행복하게 춤을 추었습니다."    

Q=힘든 순간도 분명 있었을 텐데요.
"있었죠. 하루는 ('산책' 연습 중) 동작이 너무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손유희 리나에게 모니터를 부탁하며 고민을 토로했더니,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잘하려고 추는 게 아니라, 좋아서 추는 작품 아니었어? 즐기면서 해야지'라고요. 크게 현타가 왔죠. 그리고 덕분에 행복하게, 춤에 집중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올해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싶어요."  


Q: '라이프 오브 발레리노'는 남자 발레 무용수로서 또 굉장히 의미가 컸을 것 같아요.
"사실, 전체 리허설 시간이 부족해서 유회웅 안무가가 고생을 많이 했어요. 학생들과는 달리 저희 프로 무용수들은 주인공인데도 아무래도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정말 적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유회웅 안무가가 컨셉을 크게 바꾸는 결단을 빠르게 내렸고, 그게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앞날이 창창한 멋진 어린 무용수들을 보고, 함께 작업하면서 좋은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그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라이프 오브 발레리노' 저작권 유회웅리버티홀


Q: 이제 상반기 공연 일정이 드디어 마무리 되셨네요.
"저희 유니버설발레단의 '더 발레리나'부터 '대한민국 발레축제'의 여러 공연으로 3주 동안 정말 행복했어요.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많은 관객분들을 만나고, 다른 무용수들과 스탭 분들과 함께 무대를 만들 수 있었던 건 참 행복한 기억이었습니다. 이젠 진짜 휴가가 시작되었네요!"

열과 성을 다해 무대에서 맹활약한 이현준 무용수에게 박수를. 이밖에도 이현준 수석은 힘들 때 견디는 노하우, 체력 관리법, 취미발레인에게 전하는 응원메시지 등을 전해줬다. 그러나 이미 필자의 욕심으로 글이 길어졌기에, 못다쓴 내용은 네이버 블로그 '연희동 기자리나'에 게재할 예정. 검색창에 '연희동 기자리나 이현준'으로 검색해보시면 2024년 6월 18일 0시쯤부터 보실 수 있다.

이현준 수석 무용수의 2024년 하반기, 그리고 앞으로의 모든 날을 응원하고, 또 그의 배우자인 손유희 무용수와 쌍둥이 아들딸에게도 따스한 인사를 전한다.

By Suji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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