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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의 <하얼빈>을 읽고

읽을수록 숨이 가빴다. 서른한 살, 일본에 대항해 짧고도 강렬한 생을 마감한 안중근. 그의 치열한 삶이 김훈 작가의 간결한 문장을 통해 깊고도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백여 년 전, 죽음을 앞둔 그가 간절히 바랐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내와 아이들, 부모님을 뒤로하고 그가 목숨을 걸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국가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평온한 시대에 살며 한 번도 제대로 던져보지 않았던 질문 앞에서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그런 자식과 남편을 둔 어머니 조마리아와 아내 김아려의 삶은 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소설 속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깊이 다뤄지지 않았지만, 그가 떠난 뒤 남겨진 고통을 잠시나마 헤아려 본다.


역사적 사건으로만 알고 있던 안중근 의사의 내면을 마주할 수 있어 새로웠다. 재판 과정에서의 안중근의 진술, 그리고 신부님과의 대화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토를 죽인 일을 후회한다면, 그것은 내가 성공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패했다면, 이토를 죽이려 했던 마음을 후회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안중근은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말들을 느꼈다. 그 말들은 탄창 속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발사되듯, 총알처럼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말들은 긴 대열을 이루며 출렁거렸다.’

효창공원을 찾았다. 무심히 지나쳤던 안중근의 묘가 그 자리에 있었다. 비록 그의 실제 유해는 없지만, 묘 앞에 서니 그가 다시금 내 앞에 선 듯했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그의 마지막 숨결을 느끼며, 나는 그가 품었던 신념과 희생을 되새긴다.


김훈 작가의 간결한 문장을 통해 비로소 시대의 거인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이제야 그의 깊은 흔적을, 그 생의 무게를 더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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