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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내음 Jun 07. 2024

어떤 안부

횡단보도에서 건네는 인사  

   

어둠이 깃드는 도심 네 거리,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쉼 없이 흘러가고 있다. 다들 어디를 향해 떠났다가 돌아오는 걸까. 우리는 매일매일 집으로부터, 일터로부터, 가족으로부터, 타인으로부터 떠나고 돌아옴을 반복한다.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등 앞에 서 있다. 습관적으로 그 사람을 찾는다. 그는 어디 있을까.  

 

그는 지하철역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자주 보게 되는 사람이다. 손질을 하지 않고 제멋대로 자란 머리, 나이를 알 수 없이 깊게 파인 주름, 여름이나 겨울이나 두툼한 빨간 패딩을 입고 있는 그 모습이 평범하지 않아 내 눈과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절대 무단 횡단 하는 법이 없다. 녹색불이 켜지면 길을 건너고 다시 녹색불이 켜지면 다른 편으로 길을 건넌다.  말할 상대가 필요한 것일까. 불안하고 외로운 눈망울은 늘 허공을 향해 있고 중얼중얼 끊임없이 혼잣말을 하고 있다.


왜 이 사거리를 맴돌고 있을까. 그리운 가족을 기다리는 걸까. 누구나 축복 속에 태어나서 더불어 살아가는 이 세상에, 그는 철저하게 혼자 인 것 같아 볼 때마다 마음이 숙연해졌다.


그를 자주 보게 되면서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그의 상태를 살피며 마음속으로 말을 건네는 일이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상태가 좋아 보이시네요.’

’아 혹시 어디 아프세요? 많이 야위셨어요’      

         

사거리가 아닌 다른 곳에서 그를 마주친 적도 두어 번 있었다. 은행 앞 문 앞에 앉아있다 은행 경비한테 쫓김을 당하는 그를 보기도 했고. 동네 편의점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그를 본 적도 있다.


한 번은 동네 어르신들 몇 명이 편의점 앞 테이블에서 지나가는 그를 불렀다.


'이리 와서 이것 먹고 가요'


과자와 빵을 주며 말을 거니 무표정하던 알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가 예의 바른 표정과 목소리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가까이서 보니 얼굴과 목소리는 생각보다 젊었고 표정도 정상이었다.


‘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구나’


무언가 정신 이 살짝 이상한 노숙자라고 그 사람을 단정 지었던 내가 까닭 없이 부끄러워졌다.     


      

추운 겨울도 지나가고 다시금 봄이다. 은은히 빛나는 햇살과 따스한 산들바람이 어두워 가는 거리를 잔잔히 비추고 있다.


오늘도 횡단보도에서 습관처럼 그를 찾는다. 그러고 보니 며칠이 지나도록 그가 보이지 않는다.  


‘많이 아픈 걸까. 혹시 기약 없는 먼 길을 조용히 떠난 걸까.’


신호등이 켜지자 멈췄던 사람들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한다. 지금 여기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의 빈자리를 오래오래 바라보며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잘 지내시나요?

그곳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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