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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tto Mar 11. 2021

잘못된 만남들(feat. 나쁜 여자)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결혼은 이랬다.


이상형(키는 180 이상, 균형 잡힌 신체 비율에 선한 인상을 가진 신앙 좋고 능력 있고 가정적인 남자.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나와 잘 어울리는 사람. 평생을 제일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는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백년해로 하는 것.

공을 들여 만들어 놓고 보니 나의 이상형은 결국 "날 외롭지 않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기원은 부모님의 결혼생활에 대한 반추였다. 엄마가 늘 외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였던 기억 속의  20대의 우리 엄마는 조금 우울했다. 가끔씩 그때 사진을 보면 엄마는 대부분 웃고 있긴 하지만 기억 속의 엄마는 힘들고 우울하고 가끔은 무섭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지금에야 엄마가 그때 얼마나 힘들고 우울하고 외로웠을까 충분히 상상하고 이해하고도 남지만 어렸을 적 나는 그런 엄마가 어렵고 불편했다. 지금까지도 엄마는 내가 애 셋을 혼자 다 키웠는데...라는 말을 달고 사시니 말이다.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가 그 말의 요지다. 즉, 시댁도 친정도 아빠도 아무도 엄마를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 약한 몸으로 애 셋을 혼자 키워냈다는 것. 그 뼈저린 노고를 알아달라는 엄마의 외침이다. 성장기가 지나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도 아니 지금도 가끔씩 그 말을 들으면 나는 엄마에게 그렇게 한 없이 미안하다. 나를, 내 동생들을 키우느라 그렇게 힘들게 해서 미안해.라는 마음에 "한 때는 태어난 게 죄다."라는 생각도 반복적으로 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내 외로움을 채워줄 반쪽을 찾고 있었다. 이상형 조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도 "가정적인" 남자였다. 언젠가 텔레비전에 출연한 심리 상담사 한 분이 "나는 주말이면 아무것도 안 하고 남편 다리 베고 소파에 누워만 있어요, 그 시간이 나의 가장 중요한 힐링의 시간이에요"라고 말했다. 이유는 어렸을 때 집에 아버지가 안 계셔서 늘 불안했었는데 집에서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남편이 옆에 하루 종일 있어주면 그 불안함이 해소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나도 저런 시간이 필요한데..."라고 생각했었다. 나의 외로움의 시간도 우리 엄마만큼 길었다.


만났던 대부분의 상대들이 나를 외롭게 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어느 정도 만나면 내 쪽에는 이내 끝이 보였고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하지만 쉽게 정을 주고 정을 떼지 못하다 보니 마음과는 달리 질질 끌게 되고 결국 좋지 않게 끝나버렸다. 내 딴에는 상대에게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는 것이라며 합리화했지만 사실은 나도 짐을 지기 싫은 "나쁜 여자"의 행태를 반복하며 상처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부질없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상처만 가득 남은 채 나이는 어느새 서른 중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결혼 앞에 초연해질 만도 한데(내 여동생은 20대 초반에 독신을 선언하여 지금도 독신이다) 나는 어째 그럴 용기도 없었다. 이제까지 이렇게 해놓고 갑자기 독신을 선언하면 왠지 "패배자"가 되는 기분이었다. 결국 주변에서 "시집을 안 간 게 아니라 못 간 여자" 소리를 듣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물론, 결혼을 하자는 사람들은 꽤 여럿 있었고 내 쪽에서 다 거절한 것은 맞다. 그런데 이쯤 되면 그런 사실관계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냥 노처녀가 된 것이고 성격적으로 좀 문제가 있어 보이고 무엇보다 장녀로서 부모님께 죄송했다. 안 그래도 죄송한데 더 죄송한...


엎친데 덮친 격으로 회사 일도 잘 안 풀리는 느낌. 아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까지 노력한 게 얼만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있을 수 있나. 일과 결혼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동기들은 하나 둘 떠나 애 낳고 잘들 사는 것 같은데 나만 혼자 루저가 되어 있었다. 진짜 열심히 살았는데 바보가 된 기분. 정말 똑똑한 척하다가 헛똑똑이가 된 건가. 아 자존심 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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