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좀 낮춰, 네 입에 딱 맞는 떡이 어디 있니? 내려놔야 해... 모든 걸 내려놓고 맡겨...”
라는 욥의 세 친구들(성경의 욥기에 나오는)과도 같은 주위의 조롱 어린 충고를 들으며 자존감이 지하 50층을 뚫던 그 시절. 일과 결혼이라는 두 가지 숙제 앞에 나는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
육아와 살림에 치인 아줌마들과 가끔 한적한 카페에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소개팅이 하고 싶다, 화려한 싱글일 때가 그립다”는 등 젊고 예쁜 날에 누리던 짧은 자유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나는 그립지 않다 전혀. 점심 저녁 두 시간씩 쪼개어 하루에 두 번, 주말 이틀을 그렇게 보내고 가끔은 평일에도 시간을 쪼개어 소개팅을 하면 한 달에 족히 만나는 사람은 10명이 넘고 그 생활을 일 년이 넘도록 했으니 족히 백 번이 넘는 소개팅을 했을 거다. 영화 백 한 번째 프러포즈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의미 없는 질문들과 쓴 커피, 불편한 원피스... 덕분에 장착된 네이버 지도 저리 가라 정확한 내 머릿속 강남구 청담동 카페 맵.
나중에는 그냥 또 하나의 인생공부를 하러 나간다는 맘으로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나가 커피는 얻어마시고(우리나라 남자들은 좀 불리하다, 남자가 첫 만남에 보통 커피를 사게 되니 여자와 달리 남자들은 소개팅을 하기 전에 고심한다고 한다. 안 그러면 돈이 아까우니...) 한두 시간 얘기하고 헤어지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의미 없다고 여겼던 시간들 덕이었을까. 어느새 나에게도 사람 보는 눈이라는 것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다.
1년 반쯤 전에 툭 카카오톡으로 “나 너 좋아한다고!”라고 세상 어설프게 고백한 남자가 있었다.(미안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아무 일도 아니었던 시절) 회사 내의 학교 동문회에서 알게 된 사람이었다. 제대로 된 데이트 한번 없이 그런 진심인지도 모르겠는 미숙하고 촌스러운 태도로 뜬금 고백을 하니 임팩트는커녕 심기가 불편했었는데 (나중에 결혼 프러포즈할 때도 그랬다. 반지가 없어...) 잊을만하면 나타나고 잊을만하면 나타나서 자꾸 내 마음을 거슬리게 했다. 한 번쯤 가볍게 데이트라도 해볼 수 있었겠지만 같은 회사에서 맘에 안 들면 안 볼 수 있는 사이도 아닌지라 관두었다. 하지만 여느 회사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점심시간에 가끔 만나서 밥은 먹었다.
어느 날 그는 회사 메신저로 말을 걸어와 싱가포르로 발령이 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너무 잘 되었다며 여기서 힘겨웠던 모든 일들을 훌훌 털고 가서 새 삶을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고 진심이 가득한 축하를 해주었다. 그리고 그 사이 나는 직장을 관둘 결심을 했다. 이렇게 우리는 더 이상 볼 일이 없을 것 같았다.
퇴사를 준비하며 잠깐 휴가를 받아 머리를 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쉬지 않고 달려와 피곤했다. 삼 십년지기 나의 친구가 그 바쁜 와중에 휴가를 딱 삼일 받아 함께 여행을 가자고 했다. 여행지로 싱가포르를 제안해왔다. 나는 싱가포르에 취업하여 떠난 친구가 어찌 사는지도 볼 겸 이직도 알아볼 겸 휴가지로 좋겠다 싶었지만 너는 왠 싱가포르? 이냐고 물었다. 친구는 모든 걸 알고 있었던 건지 뭔지 그냥 가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서 어설프게 고백했던 그를 다시 만났다.
수개월만에 만난 그는 한층 편안해 보였다. 그 사이 체중도 감량하고 얼굴도 맑아진 느낌. 독서를 한 건지 수도를 한 건지 어쩐지 눈빛에선 전에 없는 총기도 보였다.
클라키의 밤이 아름다웠던 탓일까, 단 삼일이었던 짧은 데이트의 마지막 날 그는 강가 한 루프탑 바의 화려한 레이저쇼 아래 또 고백을 했다.(벌써 고백만 몇 번째...) 이제는 결정을 해줘야만 할 것 같다. 아... 무거운 마음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휴대폰에 도착한 그의 메시지들. 내심 기다렸던 건지 그의 문자가 반가웠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21세기에 폰팅 아닌 폰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사이 그는 싱가포르에서 혼자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너를 좀 더 알고 싶어서"라고 했는데 난 "드디어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군요"라고 대답했다. 그가 신앙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이 나에게는 손을 뻗는 한 영혼에 대한 책임감처럼 다가왔다. 학구적이고 성실한 편인 그는 매주 들은 목사님의 말씀을 나누며 끊임없이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는데 난 그것이 기특했다. 신약의 4 복음서를 시작으로 성경을 읽어나가며 그 간의 일을 토해내듯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었다.
그러다 불현듯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가정적이었고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으며 이만하면 능력도 있다. 나와 잘 어울린다고 하고(우린 예전부터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대화가 잘 통했다(당시에는). 게다가 이제 신앙생활까지 진지하게 시작했으며 무려 키는 딱 180이란다. 오 마이 갓. 당신이 나의 이. 상. 형????
그렇게 나는 긴 세월 돌고 돌아 마침내 그리고 바라던 "이상형"을 만나 비록 폰팅만 실컷 했지만 결국 결혼에 골인한다. 꿈꾸던 이상형과의 "완벽한 결혼"을 말이다(그런 줄 알았다 그때는).
오죽했으면 "당신의 아이를 낳고 싶어"라는 지금 들어도 오싹한 고백을 내가 먼저 했을까...;;;;(이불 뒤집어쓰고 하이킥 백만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