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tto Apr 11. 2021

나의 존버&자뻑

세돌 반이 지난 우리 아들이 요즘 종종 하는 말,

"엄마, ㅇㅇ이 이거 잘 몰랐어 그래서 그랬어." 요즘엔 제법 똑 부러지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주장한다. 그런 아들을 보면 어렸을 적의 내가 생각 나 아들에게 대답한다. 

"맞아 엄마도 그랬어. 그땐 잘 몰랐었어."

나도 그때는 잘 몰랐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할딱 고개를 넘어보면 안다. 인생이 얼마나 고된지. 그리고 그때는 잘 모른다. 이 고단하고 지난한 싸움을 얼마나 더 해야 하는지. 우리 엄마는 늘 내게 "호강에 빠져 요강에 X 싸는 소리 하고 있네" 라며 나의 힘듦을 고뇌를 가벼이 넘겨버렸지만 나에게는 또 이 패역한 시대에 사는 젊은이들에게는 취업도 결혼도 혹은 당연시되는 인생의 가치관들 조차도 뛰어넘어야 할 큰 산이었다. 당장 배가 곯아 아사하고 전쟁 중에 죽음을 맞이하는 절박함은 없지만 세계 1위의 자살률을 자랑하는 부끄러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젊은이라는 것이 나의 현실인걸.


한참 직장에 몸 바쳐 다니던 시절. 나는 부서 내 주필이었다. 예를 들어 스무 장 짜리 보고서를 써야 한다고 하면 담당들이 자기 분야를 네다섯 장씩 나누어 각자 작성한다. 전체 스토리와 템플릿을 짜고 각자의 작성분을 취합하고 교정하여 최종본을 만드는 것이 주필이 하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작업이 다 될 때까지 기다려 취합하고 수정하고 여러 차례 상사의 피드백을 받아 수정하고 오고 가기를 반복하다 보면 보통 열 시 열한 시는 훌쩍 넘겼다. 집에는 언제 가나... 부서의 특성상 임원이나 사장단 보고가 수시로 있었고 급한 이슈들이 잘 생겨 주말에도 갑자기 불려 나가는 일이 많았다. 오죽하면 집은 여관이라고들 했을까.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건강도 삶의 질도 회사 업무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수준 이하의 상태로 돌아갔고 대체 이 삶을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이 없었다. 그냥 버텼다. 존(나게) 버(텨보던) 시절. 덕분에 얻은 것은 맷집과 몇 가지 지병. 그리고 마침내 최종본에 오케이가 떨어지면 그 날은 조금 뿌듯했다. 이것이 십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의 '자뻑'이었다.


40년간 40만 독자를 위해 45권의 책을 쓰셨다는 이외수 작가님. 최소한 1년에 한 권 이상은 쓰신 건데 글을 써보면 그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알 수 있다. 그는 존버(존나게 버티고)하고 자뻑(내가 최고다) 하며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오늘도 새벽 5시 미라클 모닝을 하고 눈뜨자마자 글을 쓰고 빨래를 돌리고 밥을 지었다. 낮에는 곧 있을 영어발표를 위해 공부를 하고 또 노후를 준비하기 위한 공부를 위해 대학을 다니고 있다. 틈틈이 아이와 남편이 먹을 반찬을 만들어놓고 유치원이 마칠 시간이 되면 아이를 데리러 간다. 아무도 관리해주는 이가 없어 자칫하면 깜빡 하루를 놓쳐버린다. 마흔이 넘어 새로이 만들어가는 나의 루틴. 이것이 나의 존버다. 


그리고 잠시 여유가 날 때 커피 한잔과 함께 내가 써놓은 글을 곱씹고 또 곱씹으며 흐뭇해하는 것. 이것이 나의 자뻑이다. 





이외수 이 망할 자식아, 
세상이 썩어 문드러지더라도 
너만은 절대로 썩지 말고
영악하게 글을 쓰도록.
그러나 요절하지는 말도록.
마침내 나와 나의 언어들이
아름다운 비극으로 남아서
빛나는 순수,
그 누구도 잊을 수 없는
눈물이 되기를
빌며 살기를.

<훈장> 당선소감, 이외수 







이전 19화 어느 미스코리아의 눈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